'사피엔스' 1,2장을 읽고 / 1회차 후기
1월 어느 날, 다인과 보담은 밤 11시를 넘어갈 무렵 독서모임 하나를 결성한다.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다는 다인의 욕망과 코로나 탓에 회사-집 생활에 이골이 난 보담의 동의가 합쳐진 결과였다. 이름은 '사색하는 여자 둘'. 평소 읽고 싶었지만 혼자라면 읽지 못했을 책을 선정해 4회 차까지 운영해보기로 한다. 첫 책은 보담의 추천으로 '사피엔스'로 결정했다.
1월 31일 밤 9시. 코로나 탓에 실물 만남이 불가능하여 줌으로 온라인 모임을 가졌다. '사피엔스'는 손에 얼마나 잡히지 않는 책인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읽으면 빠져들어 읽지만 읽으려는 시도 자체가 어려운 책. 회사 서류의 늪에서 겨우 벗어난 밤, 역사학자가 써내려간 책을 힘주어 심오하게 읽어 내려가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장까지 완독 한 책의 내용은 자주 팬과 포스트잇을 들게 했다. 다인과 보담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모임 전 발제문을 준비하기로 한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허구에 대한 믿음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세상이 별거 아닌데 내가 너무 그 속에서 쩔쩔거리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 (보담 발제문 중 일부)
... "우리가 믿고 있었던 것들이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걸까. 확실한 건 네 말대로 "쩔쩔거리면서 힘들게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별 거 아닌 세상" 너무 틀에 갇혀 서로를 괴롭히지 말자는 거야.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는 일은 결코 '과학적'이거나 당연한 게 아님을 이미 알아버렸으니까." (다인 발제문 중 일부)
다인과 보담이 공통으로 주목한 내용은 '허상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형성된 사회'를 지적한 대목이다. 인류가 속한 사피엔스 종은 다른 종과 다르게 '언어'를 사용했고 언어는 상상을 발전시켰다. 상상은 사피엔스에게 공통의 목적을 가지게 만든다. 이를테면 교회는 종교적 신화에, 국가는 국가적 신화에, 사법체계는 법적 신화에 기반을 두어 개개인의 욕망을 넘어선 사회를 협력하여 이룰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신화는 상상이자 허구에 속한다. 결국 인류가 협력하게 만든 토대는 허상에 대한 믿음이다.
공통의 믿음은 체계적인 사회를 만들지만 동시에 '사회적 차별'의 뿌리가 된다. 힘의 논리로 정당화하려던 성별에 따른 사회적 직위 차이*, '한 만큼 받는다' 시장원리를 기초로 둔 능력주의, 오랜시간 금기시된 동성애, 착취가 반복되는 동물 소비 방식 등. 당연하게 여겼던 질서 속에서 적당한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습만 달리하며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회적 차별의 토대는 허무하게도 제대로 된 근거가 없다. "상상의 위계질서"에 속한 사람들의 오래된 믿음이 유일한 근거라면, 지금 우리가 질서를 당연시하고 따라야 할 이유는 사라진다.
"모든 상상의 질서는 스스로가 허구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387쪽, ‘역사에 정의는 없다’)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사회 질서는 없다. 허상에 대한 굳은 믿음과 합의만 있을 뿐이다. 허상은 허상임을 아는 순간 금이가기 마련이다. 사회 곳곳에서 '정상의 질서'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의문을 던지는 이들은 주로 생의 한가운데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보통이지 않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회의 체계에서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이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보담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본다면, '승리자'의 맥락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세상엔 승리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다인은 "인류 진화의 성공은 누군가의 고통을 동반한다는 작가의 말이 서늘하다**"고 말한다. 고통의 화살이 나를 빗나가리란 보장은 없다. 다인과 보담은 각자 놓인 위치를 가늠한다. 당장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다.
불편해질 준비를 하기로 한다
다인과 보담은 기존 질서가 주는 편리함이나 안락함을 버리고 불편해질 준비를 하기로 한다. 불편한 감정은 가볍지 않다. 누군가에겐 생을 다 바친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으니까. 대화 내내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르포르타주나 동물권, 페미니즘에 관한 책 이름이 오르내린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별 거 아닌 일에 쩔쩔매지 말자"
보담이 던진 화두로 생활을 다시 돌아보기로 한다. 허상에 너무 쩔쩔매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서로에게 물었다. 컴퓨터 화면에 눈을 꽂으며 책상에 코 닿을 듯 숙여가며 사는 동안 주위를 돌아볼 줄 몰랐다. 누가(나 조차도) 고통에 소리치고 있는지 알려하지 않았다.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무지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보담의 말에 괜히 숙연해진다. 사피언스가 우리에게 남긴 건 '허상에 대한 감각'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질서가 정답이 아니란 걸 알아차린 순간, 시야는 넓어진다. 허무하게 모든 걸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한다. 세상에 숨겨진 '너'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듣기로 한다. 미시적으로 사회생활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지나치게 나, 너, 우리를 깎아내리지 않기로 한다. 고속도로처럼 놓인 질서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매 순간 시간 내어 살펴보기로 한다.
"가끔은 '수렵채집인'의 상태로 돌아가자. 자기 삶에서 지나친 욕심을 부르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보담) "깨어 있고 싶다. 그동안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의심하려 하지 않았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데 무지했다."
(다인) "겸손해지려 한다. 남의 고통 앞에서 내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모른척 하면 안 된다. 고통을 모른 체 하지 않는 태도와 겸손이 필요하다."
'사피언스' 2장까지 읽고 나눈 대화 일부를 글로 옮긴다. 다인과 보담에겐 아직 읽지 않은 3,4장이 남아 있다. 사피엔스가 던져줄 또 다른 화두를 기대하며 잠시 다른 책을 읽으며 쉬어가기로 한다. 다음 책은 다인이 제안한 한나 아렌트의 '세 번째 탈출'이다.
*3회차 모임('사피엔스' 3,4장) 후 다음 '사피언스' 후기도 이어서 올립니다.
* 본문에 따르면 힘의 논리로 성별에 따른 사회적 직위를 단정지어 설명하긴 어렵다고 한다. "만일 오늘날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듯이 가부장제가 생물학적 사실보다 근거 없는 신화들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이 제도가 이토록 보편적이고 안정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458쪽, '역사에 정의는 없다')
**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우리가 밀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의 이야기를 조사할 때는 순수한 진화적 관점이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나 양 사피엔스처럼 각자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동물의 경우 진화적 성공이라는 것이 개체의 경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289쪽, '역사상 최대의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