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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May 26. 2021

응원가를 내게 불러

황규영-나는 문제 없어


마라톤을 뛰고 있는데 결승선이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끝없는 계단을 오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9n년생들에게 취업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인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만, 직접 그 전선에 뛰어들어 함께 달리다 보니 이 마라톤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터널의 끝에 내리쬐는 햇빛이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다들 걷길래 함께 걷는 중이기는 하다.


몇 주 전 갑자기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었다. 누구의 생일도 아니었고, 축하할 일도 없었지만 그냥 투박한 원형의 파리바게트 초콜릿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었다. 초도 꽂고 싶고 소원도 빌고 싶었다.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하루였으나 그냥 그렇게 보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녁 9시가 다되어서 배달 앱을 통해 케이크를 주문했다. 집에 도착한 케이크를 본 엄마의 표정은 다소 황당해 보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초도 꽂고 소원도 빌었다. 축하할 거리야 만들면 그만이고, 그렇게 하니 스스로도 웃겼지만 썩 재미가 있기는 했다. 케이크로 아무 의미 있는 날을 축하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 그렇게 하면 기분이 좀 좋아지는구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한 하루였다.


같은 맥락에서 별 일 아닌 날에도 응원가를 부르고 싶어 졌다. 스포츠 문외한인 내가 응원할 팀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유명한 응원가들을 흥얼거렸다. 별 뜻 없이 흥얼댔는데, 부르다 보니 또 진심이 더해졌다. 나에게 내가 응원가를 불러주고 싶었다. 별 일 없이 살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매일 같이 관련 게시판을 뒤지고, 인터넷과 지인을 수없이 들여다봐 긁어모은 자료들로 나름의 플랜을 세웠다. 언론사의 줄어드는 티오에 곡소리가 난무했지만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담담히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별로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혼자 나름의 노력을 다하려 애썼고 지난달부터는 몰아치는 채용공고에 정신없이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 처음 하는 취업 준비가 술술 풀릴 거라는 기대는 안 하지만 (그럼에도 그래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살고 있다. 작게나마 그에 따른 결과도 만났다. 아주 작은 성과지만 그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걸 보면 초시생의 티를 떨쳐내기는 글렀다.


열심히 살고 싶다. 아니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내 얘기가 들릴 때, 그 어떤 말보다도, 아 쟤 참 열심히 살았지, 늘 노력하는 사람이었어, 라는 말이 더해졌으면 좋겠다. 성과까지 따라주면 좋겠지만. 그건 운이 더해져야 가능한 부분이니 맹목적으로 매달리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이의 인생을 응원해주고 싶다. 지금이야 조급한 마음이 덜해 시기 어린 질투 따위는 가지고 있을 생각도 없다만, 훗날 내 마음이 좁아지더라도 다른 이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헤쳐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응원가를 언제 불러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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