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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Jun 09. 2021

사라진 마을

김민기 - 그 사이


오늘은 노을이 아주 예뻤다. 최근 본 하늘의 색 중 가장 예뻤다. 붉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고, 핑크빛이 도는 게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어도 될 만큼 아름다웠다. 노을이 예쁘게 지는 날엔 길을 걸으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휴대폰에 고개를 처박고 오가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하늘을 더 보려 고개를 들어서 그런 건지. 북적이는 신촌 오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그렇게 동교동 방향의 하늘을 한참 동안이나 보고 있었다. 


귀에 꽂은 에어팟에서 김민기의 <그 사이>가 흘러나왔다. 이전에 <아침 이슬>을 들으려 앨범 전체를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었던 게 아직도 남아있었나 보다. 잔잔하니 들려오는 게 꼭 가사를 들려주는 것만 같아서 꽤 집중하려 애썼다. 하늘과 바람과 갈댓잎을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어린날의 할머니 댁을 떠올렸다. 무슨 벼슬이라도 되듯, 재개발을 한다며 흔적도 없이 들어내버린 그 마을이 생각났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골목길을 오가는 순서 하나는 또렷이 기억나는 바로 그 마을 말이다. 


경기도 변두리의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수도권이었지만 발전하는 시대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깡시골은 아니었다만 할머니 댁의 뒤편은 산이었고 앞은 허허벌판이었다. 도심으로부터 한참을 달리다, 터널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작은 굴다리를 건너면 할머니 댁이 있는 마을이 나왔다. 골목이 아주 좁았는데, 골목의 시작부터 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익숙한 것들이 있었다. 줄에 목이 묶인 채 아주 좁은 우리 안에 갇혀있는 큰 진돗개를 한참 쳐다보다, 왼편으로 꺾으면 작은 슈퍼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또 오른쪽으로 돌면, 옹기종기 집이 몇 채 있었고, 그렇게 쭉 직진하면, 비로소 할머니 댁 대문이 나왔다.


대문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구석이 있지만, 아무튼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좌우로 길게 방문이 늘어서있었다. 내가 태어난 이래로 사람이 산 적은 없지만, 그곳엔 항상 사람들이 살았다고 했다. 세를 내고 사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시절에는 집 마당이 얼마나 붐볐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기역 자였던 할머니 댁에는 작은 부엌이 딸려 있었다. 우리는 늘 기역자로 꺾인 복도에 상을 펴고 앉아 밥을 먹었다. 할머니는 투박한 손길로 밥을 지으셨다. 나는 밥 먹을 때가 아니면 대문을 열고 나가 골목을 오갔다.


시간이 나면 작은 슈퍼에 들려 껌 같은 것들을 사 왔고, 언젠가 아빠가 골목의 다른 집에 나를 데려가기도 했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골목의 친구들과 하루 종일 놀았다. 끝말잇기부터 땅따먹기까지. 어렴풋이 수박을 들고 나눠먹었던 것도 기억난다. 헐렁한 나시를 입고 땀을 흘리고 있으면 노을이 졌고, 밥을 먹으러 할머니 댁으로 다시 향했다. 그 골목의 다른 집에서 밥도 얻어먹었던가. 그거까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할머니 댁 마당에는 개가 있었다가, 없었다가 했다. 있던 개가 어디로 갔는지 커서야 알게 되었지만, 시골 마을에서 그런 일은 특별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생신, 설날, 추석, 제사, 새해 등 큼지막한 일거리가 있는 날마다 찾았던 시흥동은 별거 없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곳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마을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숨이 답답하게 쉬어질 때 종종 찾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각조각 추억하는 지난날은 연결되진 않지만 꽤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당에 널린 빨랫줄에 빨래들이 매달려 바람을 따라 살랑이던 때, 친척들이 많이 벗어놓은 신발을 문 앞에 누워서 뚫어져라 쳐다보던 때, 골목대장과도 같았던 큰 진돗개가 놓여있던 철창 앞에서 하염없이 서있던 때, 할머니 댁 뒤쪽으로 아주 크고 고풍스럽게 지어져 있던 집을 보며 감탄하던 때. 밤이 되면 구몬 학습지를 펴고 5+5 같은 문제를 풀다 잠들던 때까지. 


그 마을은 통째로 없어졌고 들리는 바에 의하면 꽤 높은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기억 속에는 남아 있는데 흔적은 없다니. 어딘가 아린 기분이지만 잊지 않는다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꼭 슬퍼할 필요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빠 차를 타고 작은 굴다리를 지날 때부터 신나 있던 어린 내가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언니 손을 잡고 오가던 그 골목은 왜 사라져야 했을까. 많은 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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