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19세만이 할 수 있는 복수
단막극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영화보다는 길지만, 드라마보다는 짧은. 한 회에 70분씩, 총 4부작이니 보는데 걸린 시간은 총 4시간 40분쯤 된다. 마음만 먹으면 아침에 일어나 점심 먹고 다시 침대에 누울 때까지의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분량이다. 그만큼 가볍게 보기 좋은 드라마. MBC의 <목표가 생겼다>를 보았다.
보는 내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인간수업>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분위기는 전혀 상극이지만, 주가 되는 인물들이 청소년이라는 점과 범죄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물론 <인간수업>은 원조교제라는, 지상파에서는 다룰 수 없는, 다뤄서는 안 되는 소재지만 <목표가 생겼다>는 그보다는 가볍다. 휴대폰 소매치기는 분명 범죄지만 주인공의 배경 설명에 잠시 등장하는 정도로, 내용의 주가 되지는 않는다.
매일같이 집에서 도박판을 벌리는, 알코올 중독 엄마와 사는 19세 소녀 소현(김환희 분)은 인생이 너무 고달프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 여느 또래처럼 해맑은 나날을 보내기에는 현실이 너무 무겁다. 그래서 소현의 삶은 약간의 삐딱선을 탄다. 학교는 자퇴하고, 사람들의 휴대폰을 훔쳐 돈을 벌며 사는 그런 삶 말이다. 소현은 강인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죽었다던 아빠 재영(류수영 분)을 두 눈으로 본 후부터는 내면의 결핍이 분노와 원망으로 이어진다. 아빠는 삶을 떠났다고 했지만, 실은 자신과 엄마를 떠났다는 생각으로부터 그 원망의 씨앗은 점점 커진다.
'아빠에게 복수를 해야겠다!'
소현은 그렇게 가출 청소년이 되어 아빠가 일하는 치킨집 아르바이트생이 된다. 멋모르는 순진한 동갑내기 윤호(김도훈 분)를 남자 친구로 삼아 이득을 보기도 하고, 대담하게 몰래 열쇠를 슬쩍 훔쳐 아빠의 집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자신은 이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아빠는 새 여자 친구에, 단란한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니. 소현의 원망은 이상하게도 아빠의 여자 친구인 요양사 진희를 향하기 시작한다. 곁가지의 자잘한 복수들을 하려다 실패한 소현은 결국 진희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소현은 어리다. '발칙하다'라는 표현이 제격인, 톡톡 튀는 발랄함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어리고 불완전한 작은 존재이다. 인생을 무지막지하게 개척해나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표면의 강인함은 방어막에 불과하고, 부모로부터 결핍된 사랑을 채우고 싶어 하는 여린 존재다. 그래서 결국 소현은 진희를 죽이는데 실패한다. 수면제를 먹이고, 번개탄을 피우지만 결국은 제 손으로 진희를 차에서 끌어내 살린다. 그럼에도 범죄자 신분을 피할 수 없게 된 소현은 이제 갈 곳이 없다.
기억나버린 어릴 적 트라우마를 안고 다시 알코올 중독인 엄마 곁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그러나 갈 곳 없는 소현이 돌아간 곳은 다시 옥탑방이다. 이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곁에 재영과 윤호가 여전히 함께한다는 점도 똑같다.
주인공은 소현이었지만, 보는 내내 윤호에게 눈길이 갔다.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래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그러한 와중에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까지 한 고달픈 인생. 소현과 윤호는 불우한 가정사가 있다는 점에서 비슷했지만, 분명히 다른 건 윤호는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고,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소현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빠가 아니라, 윤호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재영은 소현의 친아빠가 아니다. 그 착각은 단순한 해프닝이었고, 소현의 성급함이 부른 엇나감이기도 했다. 그 엇나감이 비뚤어진 원망을 키우는 데 일조하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건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왔고 소현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고 사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소현은 성장한다.
경쾌한 분위기의 팝송들이 흘러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청소년의 일탈을 다루기는 하지만 어두운 드라마는 아니다. 4부작이라는 빠른 호흡에 풋풋한 소현과 윤호의 로맨스가 얹어져, 오히려 통통 튀고 가볍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기에 자살 시도나 살인 미수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데 더 색다름을 가졌던 듯하다. 미운 19살 소현이 잘못은 했지만, 그럼에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다.
청소년이 나오는 드라마에는 거의 클리셰처럼 따라붙는 학교폭력 에피소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 부분에서 살짝 아쉬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드라마는 현실의 거울이라고 결국 학교폭력이 현실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잔재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현실의 소현과 윤호는 드라마 속 시행착오를 굳이 겪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