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는 재미없다. 아니 재미없어야 한다.
<D.P.>는 재밌다. 책 한 권을 읽어내리듯, 6부작을 보기 시작한 그 자리에서 끝낼 만큼 재미있다. 흡입력이 강하고, 캐릭터가 강하고, 에피소드가 다양하고, 그러면서 배우들의 연기가 끝내준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마치 어딘가 실재하는 인물들처럼, 극 속을 걸어 나와 보는 우리 곁에 걸터앉는 느낌이다. 이런 사람 언제 한번 본 적 있지 않냐고, 스쳐간 많은 사람들 중 이런 사람 없었겠냐고, 그렇게 묻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나는 <D.P.>가 재밌냐는 친구의 물음에 차마 '재밌다'라고 흔쾌히 말하지 못했다. 과연 이 드라마를 재밌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D.P.>는 감정으로 표현하자면 처연함과 씁쓸함이었다. 색깔로 표현하면 회색빛이었고, 맛으로 표현하면 떫은맛과 같았다. 쉽게 잊히는 그런 류의 드라마가 아니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해도, 여전히 나는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만큼의 안타까움과 슬픔이 잔재하는 그런 드라마였다. 재밌다고 말하는 건 이 드라마를 표현하기에는 한없이 가벼운 소감이었다.
나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고, 여자이고, 그래서 사실할 말이 별로 없었다. 군대 계급 조차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내가 헌병에 대해서, 디피에 대해서, 탈영병에 대해서, 군대에 대해서, 그 모든 부조리에 대해서 뭐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사실 어불성설이라 생각되어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여기 나오는 모든 이가 사람이라는 점에서, 내 가족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애인이 될 수도, 그 외의 어떤 연유로든 연이 닿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할 말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누구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할 이유는 없다고, 그 어느 누구도 폭력과 희생의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은 없다고 말이다.
나는 결국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조석봉 일병(조현철 분)이라고 생각했다. 군대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가 당한 모든 폭력과 희생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들이었다. 그저 평범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펜을 쥐고 만화를 그리고, 사람들과 섞인 듯 아닌 듯하며 살아갔을 거였다. 마치 괴물과도 같았던 황장수 병장(신승호 분)이 전역 후 편의점에서 사장에게 타박을 당하던 장면에서 어느 누구도 애처로움을 느끼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었다고, 사회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작은 존재라는 사실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가 군대에서만 괴물이 되었던 건 어쩌면 군대라는 시스템 자체에서 비롯되는 괴현상뿐일지 모른다는 걸, 실수로라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황 병장은 그냥 그렇게 될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군대에 가서 황 병장이 되는 건 아니다. 그 속에서 그가 괴물이 된 건 그냥 그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악한 존재인 황 병장의 희생양으로 조일병이 희생된 것이니, 조일병이 칼과 총을 들고 황 병장을 납치하고 죽이려 시도한 걸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일병은 마지막 회에서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쐈다.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갈팡질팡 하는 발걸음으로 쏜살같이 디피조를 피해 도망 다니고,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으로 쓰러지는 조일병을 보며,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바로 이거였다.
조일병은 그렇게 될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 황 병장이 괴물이었던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몰라도, 조일병이 괴물(사실 괴물이라는 표현도 맞지 않다. 그 비슷한 무언가로 하자)이 되는 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명백한 타의로 만들어진 괴생물체에게 손가락질하는 건 옳지 않다. 누가 만들어냈느냐가 중요한 거다. 조일병을 그렇게 만들어 낸 황 병장에게 우리는 손가락질해야 한다. '그렇다고 탈영을 해서 납치에, 살인미수를? 저거도 제정신 아니네'라고 말할 자격이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소리다.
군대는 마치 작은 사회와도 같았다. 폐쇄적인 집단이라 알음알음 아는 이만 알고 있을 뿐, 약육강식의 생리가 어쩌면 훨씬 더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는 곳이었다. 자본이 계급으로 치환되었을 뿐, 정치질이 오가는 것도 엇비슷했다. 그 작은 사회가 누군가를 미치게 만들고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거다. 2014년을 넘어서, 어쩌면 지금도, 바로 이 순간에도 그 악습의 굴레가 계속되고 있을지 모른다.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반복되고, 귀를 씻고 싶은 류의 말들이 쏟아짐에도 매 회 오프닝은 더없이 차분하다. 차분한 음악 아래서 안준호 이병(정해인 분)의 생애를 따라간다. 아이였던 존재가 자라서 소년이 되고, 남자가 되고, 그래서 군인이 되는 그런 생애. 그러니까 이건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안준호 이병의 얘기인 거다. 누군가는 안준호 이병이 되고, 누군가는 한호열 상병이 되고, 누군가는 황장수 병장이 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조석봉 일병이 될지도 모른다.
조석봉 일병에게 결국 총을 쥐어준 건 과연 누구였을까. 그를 괴롭혔던 황 병장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방관한 부대의 모든 이들이라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내내 헷갈렸던 질문의 답을, 두 번째 정주행을 하는 와중에 깨달았다. 조일병의 손에 총을 쥐어준 건, 다름 아닌 조일병이었다. 그는 스스로 총을 쥐었다. 그 총이 파멸을 가져올 것을 알았으면서도, 총을 쥐고 그 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 끝은 황 병장이 아닌 자신의 머리였고, 조일병은 결국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선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애처로운 상황에 놓여있었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총이 자기 방어가 아닌 자기 파멸을 불러왔다는 것, 우리는 그 지점에서 디피가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