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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랑 Aug 21. 2021

사이좋은 모녀라는 평생 숙제

모든 것에 그리 잘 공감하면서, 왜 엄마의 마음은 공감하기 어려웠을까.


작년 말 결혼을 했다. 남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하고 따분했는데, 함께 있을 때 지루할 새 없는 평소엔 어린아이같이 별 거 아닌 것에도 하하호호헤헤 즐겁다가, 싸울 땐 전쟁을 치르는 군인처럼 치열하게 임하고, 사랑을 주고받을 땐 여느 로맨스 영화처럼 달콤한, 행복하고 평안하고 슬프고 화나서 복장 터지다가 결국은 다시 행복하게 되는, 오감을 충족시키며 예민하고 감성 충만한 나에게 가끔은 버겁지만 나의 세포, 신경 하나하나, 뼛속까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남자와.


분명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았는데 필자가 워낙 특이한지 대화가 된다 느껴지고 영혼이 통한다고 느껴지는 여러모로 결이 비슷한, 코드가 통하는 남자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남편은 연애를 시작하던 순간부터 대화하면 즐겁고, 함께 길게 수다 떨 수 있는 또 내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깨닫게 한 함께 많이 웃고, 날 웃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마치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남편도 그랬던 걸까.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나에게 프로포즈했다. 겁많고 두려움이 많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 남자, 만나면 만날수록 이상하고 묘하게, 정말 아주 아주 특이하게 우리 엄마와 많이 닮았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머리가 복잡해져왔다.




하필, 내 평생을 바쳐 이해하고 공감하려 노력해도 그토록 힘들었던 우리 엄마라니.

( 필자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이해되고 공감되지 않아 마음 깊은 곳 서랍 한 공간에 쳐박아둔 부분이 많았다.) 내가 어떤 기분이 들었는 줄 아는가. 아주 잠깐은 이 결혼이 과연 맞는 것인가, 내가 버틸 수 있을까.라는 극단적인 질문까지 던질 정도로 패닉 상태였다. 물론 결국 받아들였지만.


꼭 신이 나에게 그동안 엄마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백 프로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물으시며,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내 평생 숙제로부터 도망치지 못했다. OMG.


물론 엄마와 어릴 때부터 많이 부딪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다르기에 서로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학창 시절 내내 엄마는 공부를 하라거나, 나중에 성공해야 한다거나,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등의 잔소리는 애초 하지 않았다. 나 또한 공부도 곧 잘하고 ( 물론 전교 1등만 했던 엄마 성에는 안찼겠지만, 우등생까지는 아니어도 속 한번 썩인 적 없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것이 유일한 단점인(부모님 피셜) 동네에서 제일 예쁜,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부모님의 친구분들이 한 번 보면 몇 년이 지나도록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랑스러운 착하고 예쁜 딸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기 몇 년 전부터, 엄마 집에 얹혀살며 ( 엄마 집 - 이건 필자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 엄마의 표현이다;) 우리는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아닌 나만 틀어졌을지도.


매일 같이 들었던 결혼 하면 어차피 너 마음대로 살 텐데 내 집에 있을 동안은 엄마 말 들어를 밥 먹듯 들어서 그랬을까. 언젠가부터 나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20대 중반까지는 온순하고 착했던 딸이 날이 갈수록 짜증스럽고 예민한 딸이 되어갔다.


나이가 들어가며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자랑스러운 딸에서 엄마가 보기에 부족함이 많은 딸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른이 넘어가며 주변 친구들이 다들 결혼을 하고 애까지 낳자, 엄마의 잔소리는 몇 배가 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습관처럼 우리 딸도 얼른 시집가야 할 텐데, 좋은 사람이 생겨야 할 텐데, 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어느 순간에는 그 흔하고 유치한 나이 공격도 시작되었다.


엄마 + 아빠의 그럴싸한(?) 유전자 조합으로 늘 인기가 흘러넘치도록 많았는데.. 서른이 넘어서도 밖에만 나가면 남자들이 쫓아오는, 낯선 이의 명함을 밥 먹듯 받아 오는 딸이 대체 뭐가 그리 걱정이었던 건지. 나중에는 급기야 부모님 친구의 아들이나 부모님 친구 지인의 아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물론 공범인 아빠와 함께)  


이외에도 남자 친구도 아직 없는 나에게, 결혼해서 그렇게 행동하면 ( 하도 많아서 무슨 행동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안된다. 애들을 키우려면 네가 밥을 제때 먹어야 한다. 애를 학교 보내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등등. 가뜩이나 원하는 대로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그게 제일 갑갑한 나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부담을 얹어주며 잔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크게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열렬히 반대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어릴 적부터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스물아홉의 마지막과 서른을 맞이하는 시작점. 그때를 유럽에서 맞이하는 거였고 그걸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 저축을 했다. 중학생 때부터 몇 년을 기다려온 건데, 그러니 당연히 어떠한 일이 있어도 29살의 난 유럽으로 떠나야 했다. 사실 엄마가 허락 안 해주는 시나리오는 진작 예상했던지라, 20대 중반 무렵부터 베프와 함께 가기로 했는데 친구가 사정으로 돈을 못 모았다. 결국 사정상 혼자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딱 한 달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총 4개월을 갔다.) 엄마는 나중에 결혼할 남자랑 가라며 절대 허락을 안 해주어서, 허락을 받는데만 몇 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아무튼 언제부터인지. 엄마의 반대 주 공격의 끝은 결혼, 결혼할 남자랑 해라. 결혼하고 해라 등이었다. (사실 그때 유럽에서 테러가 잦아서 사람들이 꽤 많이 죽었다. 쓰다 보니 이 부분은 엄마 마음이 갑자기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해가 가지만..) 나의 스물아홉의 마지막과 서른의 시작은 단 한 번이기에 그때의 나는 꼭 가야만 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와 잘 지내기 위해선 눈에 안 보이는 게 상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깨를 들들 볶듯 언젠가부터 나만 보면 들들 볶아대는 엄마와 그리고 그 말에 기 빨리는 나, 서로 얼마나 에너지와 시간, 감정 낭비인가. 난 마음을 굳게 먹고 자취를 하겠다. 설득도, 집을 나가겠다 난리도 쳐봤지만 엄마의 고집을 누가 꺾겠는가. 당연히 그 토론의 패배자는 늘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결혼하면 나갈 텐데(남자 친구도 없는데 계속되는 결혼 공격.) 뭘 그리 빨리 나가려고 하냐며 결혼할 땐 고이 보내줄 테니 그동안 좀 참고 살아라. 시간 금방 간다 엄마 아빠랑 살 날 얼마 없다. 는 엄마의 말에, 외동딸인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괜히 씁쓸해지고 마음이 약해져버리고 말았다.울며 겨자 먹기로 패배를 인정하고는 엄마 집의 내 것 같지 않은 내 방에 들어와 글을 쓰거나 기도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풀었다. 가끔 내 기분은 서른이 넘어서도 사춘기 소녀처럼 엄마만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겠는데, 유독 엄마만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모녀가 객관적으로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우리는 몇 시간 내내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다. 게다가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친구보다 엄마에게 모든 걸 다 말하며 자랐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연애 상담이나 인간관계 고민까지도. 엄마 또한 가정주부인 데다가 고향에서 쭉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은 이사를 몇 번 했기 때문에 엄마도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오래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 또한 집순이에 프리랜서로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일까. 우리 모녀는 시간을 함께 많이 보냈다. 어느 순간 나도 서른이 넘었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처지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가끔 엄마가 외로워 보였다. 엄마와의 관계에 고민이 많던 나는 어느 날 용기 내어 엄마에게 나도 이제 나이도 먹어가는데 이젠 엄마에게 친구 같은 딸, 가끔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는 모녀 사이에 무슨 친구냐며 질색했다.


역시나 엄마와 나는 정말 다르구나. 또 한 번 깨닫던 순간이었다. 나는 딸을 낳으면 친구같이 지내고 싶었는데. 무엇이 잘못된 걸까. 모녀관계에 대한 엄마의 마음은 어떤 걸까.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상상이 전혀 안되었다. 몇 시간 내내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지만, 주관적으로 사이가 좋다고 느껴지지 않던 우리 모녀 사이가 과연 좋아질 수나 있는 건지. 냄비에 담긴 내용물이 갑자기 끓어 넘치는 것처럼 엄마에 대한 나의 인내심과 사랑이 한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고 느낄 때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결혼을 하자고 했다. 이제 엄마에게서 해방이다. 엄마의 마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우리의 관계에 대해 스트레스받으며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엄마 집에서 탈출해 나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는 생각도 잠시, 동시에 엄마가 마음에 자꾸 맴돌았다. 왜인지 큰 숙제 하나를 못 끝낸 것처럼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였을까. 이게 웬일 이 남자가 하필 우리 엄마와 닮았다.


" 엄마, 지금 만나는 친구가 만나다 보니까 엄마랑 너무 비슷해. 하. 결혼 생활이 걱정돼. 하필 내가 엄마한테서 힘들다고 생각한 그런 부분들이 비슷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하나님이 내가 엄마의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하니까,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신 걸까. 너무 혼란스럽다. "


고민하다 엄마에게 털어놓고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런 고민을 또 엄마에게 털어놓는 꼴이라니. 그런 나의 고민을 듣고는 엄마가 빵 터졌다.


" 우리 딸 어떡해. 왜 하필 그 친구는 그런 부분을 엄마를 닮았대? "


해맑게 빵 터져서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황당했지만 왜인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둘이서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한동안 웃음이 빵 터져 소리 내어 한참을 웃었다. 그래서일까. 한참을 웃고 난 뒤 그 고민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볼 겨를 없이 내 운명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드디어 마음을 먹고 엄마에게 말했다.


" 엄마, 지금 만나는 친구가 결혼하재."


난 그때 엄마가 묵은 때 씻겨내듯 엄청 후련해하며 행복해할 줄 알았는데, 엄마의 반응이 묘했다. 엄마는 기뻐서 소리를 지른다거나 우리 딸이 드디어 결혼해서 행복하고 너무 좋다고 잘됐다고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엔 그냥 조용했고, 복잡해 보였다. 엄마의 마음은 대체 뭐였을까.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웠고, 추측이 안되었다. 그런데 왜인지 내 마음이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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