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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물기가 인도한 내면

부악문원 통신 4

by 몽상가


부악문원 입주작가들과 함께한 문학기행(2025년 10월 28일)

봉평, 이효석 문학관-- 홍천, 은행나무 숲/칡소폭포/ 내면


산세와 어우러진 이효석 문학관은 넓은 부지와 조형물로 인해 이효석이 부티 나게 살았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약간 삐딱하게 들릴 수 있는 뉘앙스를 풍기는 나의 심기를 밝힌다면 일재 식민지하에 살았던 여타의 작가들과는 다른 이효석의 행적 때문이다. 서구문화를 동경하여 집안에 피아노며 전축이 있었고 커피를 즐기던 모던보이의 전형, 그러나 당시 모던 보이들은 가난한 외피적 모던보이였던 반면 이효석은 자신이 추구하는 서구식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었다. 후에 친일 행적은 논외로 하고, 식민지하에서 편하게 글 쓰면서 서구문화를 향유하다 간 그에게 괜한 심술이 났던 오래전 나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봉평은 이효석을 봤으면 다 본 거라고 외치며 번역가, 시인, 소설가, 동화작가는 오늘의 가이드인 국장님의 고향인 홍천으로 향했다. 일행 중에 홍천, 은행나무 숲에 가본 사람이 없어서 국장님이 방향을 바꾼 것이다. 우리가 은행나무 숲 입구에 도착해서 차밖으로 나왔을 때는 세찬 바람으로 머리는 산발이 되어 앞을 보기 힘들 지경이었고 지난주까지 노란 잎이 화려했던 은행나무에 잎이 달려있는 나무는 하나도 없었다. 폭신하게 떨어져 쌓인 노란 은행잎이 우리를 맞이했다. 심지어 급격하게 떨어진 온도에 물이 다 얼었다고 한다.


은행나무에 은행잎이 없으면 어때! 은행나무는 잎이 있으나 없으나 은행나무인 걸! 게다가 노랗게 깔린 은행잎 위를 걷는 운치가 더해지니 세상이 온통 노랑~노랑~ 노랗게 굴러간다!


노랑세상에 반해 숲을 거닐다 보니 화장실 가는 것도 잊어버렸다. 다음 장소인 칡소폭포에 도착하자마자 간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으악~토할 것 같은 변기 상태를 보고 뛰쳐나왔다. 다음 장소까지 참기로 하고 칡소폭포의 풍부하고 맑은 물에 마음이 팔리는 와중에 물을 보니... 그래서 던진 내 말에 일행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내면의 물기가 가득 찼어요"


나의 속사정을 아는 일행들이 카페든 어디든 들어가자고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가 출발하고 몇 분 되지 않았는데 국장님이 도로변에 있는 집 마당에 주차를 하는 게 아닌가? 여기는 어디? 갑자기?

'내면의 물기'가 가득 찬 나를 위해 근처에 있는 국장님 형님댁에 갑자기 들이닥쳤던 거였다. 형님내외와 정신없이 인사를 하고 염치 불고하고 형수님이 안내하는 집안으로 들어가 내면의 물기를 빼냈다. 국장님은 홍천이 고향이었고 나고 자란 동네가 내면이었다. 내면에 와서 내면의 물기를 제거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급한 일을 치르고 나가보니 일행들은 뒷마당에 몇 그루 심어놓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고 있었다. 맘껏 따가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사과 한 개씩 손에 쥐고 누구는 그 자리에서 베어 먹으며 말했다.


"와, 내면 사과 기가 막히네.'


국장님이 연락도 없이 외지인들을 대동하고 형님댁에 들이닥쳤는데 다음에 또 놀러 오라며 감자 20킬로 상자를 안겨주셨다. 내면 정말 좋다!


부악문원으로 돌아오기 전에 국장님이 눈여겨보았던 카페에서 차를 나누며 내면의 이야기를 한바탕 나누었다. 내면의 물기가 인도한 내면에서 맛본 내면사과와 기똥찬 내면 인연들에 대해서...

빠블로 네루다가 말한 "내면의 불길 속"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내면으로 하나가 된 날로 기억될, 딱 하루뿐일 오늘, 내면이 꽉 찬 작가들과 가을과 겨울을 날 수 있음에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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