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차마고도를 갈 생각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파고다와 연어를 보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런데 어쩌랴! 차마고도에는 파고다와 연어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길은 길벗 두 명과 같이 걷게 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도솔암,
길을 떠돌다가 자신의 취향을 뒤늦게 발견하게도 되는데 나의 경우에는 높은 곳에 있는 사원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남 달마산 정상 암벽 위에 있는 도솔암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당연했고 길벗까지 대동하여 햇살 좋은 아침 공기를 가르며 미황사에 도착했다. 미황사 일주문 왼쪽 등산로를 따라 도솔암을 향해 고고~
미쳤다. 길이!
평평한 흙길이 이어지고 그 흔한 데크 계단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나무와 새들이 소리를 내고 꽃들이 향기를 내뿜었다. 폭신한 흙길은 데크 계단을 오르거나 시멘트 바닥을 걸을 때의 딱딱한 피로감이 전혀 없었다. 이런 길이 계속 이어질까 싶은데 진짜 순정한 흙길만 있었다. 오르막이 있음 직도 한데 너덜바위 몇 군데를 제외하고 완만한 흙길이 이어졌다. 잠시 쉬면서 땀을 고르고 물을 마시기로 했다. 길벗 중 P가 나지막이 말했다.
“차마고도 너~무 좋다.”
길벗 J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P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J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차마고도 너~무 좋다.”
내가 P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P는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하고 빵 터졌다. 달마고도가 차마고도로 바뀐 순간, 달마의 그림자가 다가와 미소를 짓는다. 달마고도가 차마고도로 치환된 시간부터 우리는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새로운 길 위에 서 있었다.
달마차마고도!
그 느낌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도솔암은 다음으로 미루고 달마고도 종주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 해남 달마산에 조성된 달마고도는 17.74km로 미황사에서 시작해서 달마산 주능선 전체를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다. 달마산에 전해 내려오는 옛 13개 암자를 잇는 순례 코스답게 암자 터가 많은 곳이며 자연 훼손 없이 낫, 곡괭이, 지게 등 순수 인력으로만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달마고도 둘레길을 걸으면서 흙길의 순정함을 발바닥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발끝에서 시작된 포실한 흙의 감촉은 심장까지 이어지고 말을 할 때마다 달큰한 흙냄새가 나는 듯했다. 흙의 숨결에 도취된 우리의 대화는 문학, 영화, 음악을 넘나들었다. 흙의 향연이 오케스트라처럼 울려 퍼지는 와중에 갑자기 멈춤, 일순 동작 정지.
“파고다에 물어봐.”
이번에도 P가 말했다. J와 나는 또 눈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파고다? 파파고가 아니고?”
우리는 배가 아플 지경으로 웃어댔다. 파고다에 가서 일본어로 ‘보고 싶어’가 뭔지 물어봐야겠다는 내 말에 P와 J는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댔다. 파파고가 언제 파고다로 바뀌었는지. 우리가 잠시 쉬고 있던 돌 자리까지 들썩거렸고 새들이 날아올랐다.
일본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일본 영화로 이어졌고 영화에서 번역된 ‘보고 싶어’가 실제 일본어 사전이나 구글에서는 다르게 나온다는 말끝에 나온 말이었다.
달마고도에서 차마고도를 지나 파고다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길은 이어지고 우리는 걸었다. 한 걸음에 차마고도를, 두 걸음에 파고다를 순정하게 찍어냈다. 길 위에서 풍경이 말을 건네면 귀에 닿는 말은 파고다, 파고다로 바뀐다. 풀썩 웃음이 삐져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는 글벗이자 길벗이기에 단어의 효용성과 의미에 천착하며 살아왔는데 세월이 뇌세포를 죽이는 데는 속수무책이다. 더 막을 수 없는 말이 J의 입에서 나왔다.
“연어 낚시 가시죠?”
“연어?”
길벗 3인방은 길 위에 주저앉았다. 마음껏 웃어재꼈다. J가 요즘 민어가 제철이라면서 민어 낚시 가자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민어가 갑자기 연어로 뒤바뀐 것이다. 배를 잡고 웃고 있는 우리에게 달마의 그림자가 내려앉으며 가지가지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달마고도에서 차마고도와 파고다, 연어를 외치는 우리, 뭐, 길 위에서는 뭐든 가능하니까. 나이를 먹어서 서글플 일도 아니고 사실, 좀 서글프긴 하지만 머리가 안 되면 발바닥으로 쓰면 되지. 발바닥으로 쓰는 글, 길 위에서는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