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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아 Oct 28. 2020

마지막일지도 모를 순간에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는 것도 안 된대?"

 " 응. 지금 코로나라서 안 된대. 수술실 앞에 대기하는 공간에 의자를 아예 다 치웠어."

 "보호자 한 명도 안 되는 거야?"

 " 그렇대. 1층 로비에서 기다리면 수술 끝나고 전화 준대. "


 하필 이런 시국에 긴급 수술이라니!


 엄마는 며칠 전부터 고열에 시달렸다. 허리가 아프시다며 늘 다니던 집 앞에 통증의학과에서 주사를 맞고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열까지 오르니 통증의학과 의사도 긴장했다. 때가 때인지라 의사도 환자도 열에 민감했다. 코로나 19 검사를 받고 병원에 통보해 달라는 말과 함께 응급실행을 권했다.

 허리 통증은 점점 심각해져서 하반신까지 번져왔다. 걷는 게 힘들 정도였다. 통증의 원인도 열의 원인도 찾지 못했는데 종합병원의 응급실 출입절차는 까다롭기만 했다. 환자뿐만이 아니라 보호자까지 코로나 19  검사를 하고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야만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국이 혼란할 때이니만큼 절차는 이해하지만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일 분 일 초가 급박했다.


 결과가 통보되는 데까지는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음성이라는 결과를 통보받고 힘겹게 입성한 응급실에서 기본적인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했다. 열이 내리지 않고 통증이 심해지니 추가적인 검사들까지 긴급히 마치고 진단을 기다리는데 엄마는 죽을 것 같다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렇게 나온 검사 결과는 급성 신우신염!

 몇 년 전에 급성 신우신염을 앓아본 경험이 있었던 터라 한시름 놨다며 입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의료법이 바뀌었다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대학 병원의 입원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으면 2차 병원으로 요청하여 입원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엄마는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 한 2차 병원으로 옮겨 입원을 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록 열은 잡히지 않았다. 통증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통증은 더 심해지고 혼자 걷는 것조차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약을 바꿔가며 통증을 잡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장내과 의사는 신장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척추과 의사를 호출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2차 병원이라 정밀 검사를 할 장비가 없다며 다시 대학병원으로 이관하라는 말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학병원 응급실은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해야 했다. 이 정도 되면 환자나 보호자나 화딱지가 안 날 수가 없다. 통증의 원인을 찾지 못해서 불안도는 높아만 가고 최고의 의술을 가진 대학병원의 문턱을 넘는 것은 코로나로 인해 지연되니 이러다가 멀쩡한 사람도 죽겠구나 싶었다. 처음부터 2차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시간을 버리지는 않았을텐데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만 쪼글아들었다. 원인을 모르고 통증이 심해지니 엄마는 아파서 울고 불안해서 울었다.

 그렇게 24시간이 흐르고 "음성이래요!"하는 응급실 간호사의 말과 함께 긴급 검사를 시작했다. 그 사이 아빠는 아는 인맥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학병원에서 다시는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자식 된 입장에서 아는 의사 한 명 없어 아무 도움도 못 되었다는 것이 괜스레 죄스러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다.

 검사 결과는 '척추 골수염'으로 좀 더 정확히는 '척추 내 농양 및 육아종'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병명이었다. 척추 안 쪽으로 고름이 가득 찼고 염증이 혈액을 타고 온 몸을 돌기 시작했다고 했다. 긴급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마저도 치사율이 50%라고 했다. 척추에 들러붙은 염증을 모두 긁어내고 씻어내고 척추 내까지 퍼진 염증을 신경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제거해야 하는 어려운 수술이라고 했다. 가족들 모두 만약의 상황을 생각하라고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때는 때인지라 수술실로 들어가는 엄마와 인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입원실, 수술실 등 병원 외래를 제외한 곳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다. 허가받은 보호자 1명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에 갈 수 있었다. 이제 곧 수술은 시작된다고 하는데 애가 탔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데 인사조차 할 수 없다니.

 그렇게 1층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보호자 팻말을 목에 건 아빠가 내려왔다.


 "이제 곧 수술 들어간대."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는 것도 안 된대?"

 " 응. 지금 코로나라서 안 된대. 수술실 앞에 대기하는 공간에 의자를 아예 다 치웠어."

 "보호자 한 명도 안 되는 거야?"

 " 그렇대. 1층 로비에서 기다리면 수술 끝나고 전화 준대. "

 "난 안 되겠어. 아빠, 목걸이 줘."


 민정이는 아빠 목에서 보호자 목걸이를 낚아채 엘리베이터를 탔다. 로비에 남은 아빠와 나, 병준이는 민정이가 내려오기만을 동동거리며 기다렸다. 하필이면 왜 이럴 때 수술을 해서 애간장을 더 타게 하는지 속이 타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입원조차 힘들었던 이 여정이 어떻게 끝나려고 이 시국에 긴급수술이란 말인지!


 30여분이 지났을까. 민정이가 펑펑 울면서 나타났다.


 "엄마 이제 수술실 들어간대. 어떻게 해. 언니, 엄마 괜찮겠지? 엄마가 잘못될 수도 있다 하니 시집 안 간 내가 마음에 걸린다고 살아 나오면 나 꼭 시집보낼 거래. 엉엉엉. 언니 엄마 어떡해."


 민정이는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가슴이 답답해왔다. 로비에 아빠, 나, 민정이, 병준이는 나란히 앉았다.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수조차 없는 코로나 사태에 로비에서의 시간은 너무 더딜 것만 같았다. 그때 갑자기 아빠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였다.  인사를 못하고 온 나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엄마!"

 "응. 민아야. 병준이 좀 바꿔줘. "


 그랬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그 순간에 엄마는 장녀인 나도, 남편인 아빠도 아닌 아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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