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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빈 Dec 31. 2023

2023년을 마무리하며

영화 시장의 현재와 미래

2023년 5월, 코로나19의 팬데믹이 끝나며 팬데믹 전 수준으로 살아날 줄 알았던 영화 시장은 기대만큼은 호황을 누리지 못했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 10억 달러 흥행 돌파 영화가 3편이 있었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바비><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편밖에 10억 달러를 넘지 못했다. <오펜하이머>가 9억 5천만 달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가 8억 5천만 달러 가까이 벌어들이긴 했지만, 기대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10억 달러 돌파 영화가 9편이 나왔던 2019년과 5편이 나왔던 2018년에 비해서는 확실히 영화 시장의 규모가 작아졌다. 올해 영화 시장에 있었던 일들을 몇몇 개 짚어보며 영화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마블의 몰락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영화 시장이 줄어든 이유 중의 하나는 흥행 보증 수표였던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의 몰락이다. 마블은 올해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그리고 <더 마블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제임스 건 감독이 연출을 맡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를 빼고서는 국내와 해외 모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마블 영화들이 지금까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설정과 캐릭터들을 공유하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냈다는 점보다는, 그 세계관을 만든 영화들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 영화가 MCU라는 큰 틀에 갇혀있어도, 각각의 영화들은 자기 할 말을 하면서 수준 높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마블 영화는 국내던 해외던 흥행 보증 수표가 될 수 있었다. 사실 이 점은 2019년에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 뒤로 개봉한 모든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에서 나왔던 문제점이기도 하다.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들도 <완다비전>, <문나이트>, <로키>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마블을 보면 궁극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잘 보이지는 않고, 앞에서 마블이라는 딱지만 가지고 작품을 찍어낸다는 생각이 든다. 엉성한 연계성과 수준 낮은 작품을 계속해서 낸다고 하면 예전의 마블의 위상을 다시 되찾을 수는 없다. 지금 마블은 페이즈 5에서의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 정복자 캉 역을 맡은 조나단 메이저스의 폭행죄 유죄 판결로 인한 하차로 이루어질 대대적인 각본과 스토리 수정에 집중을 하고 있을 것인데, 여기에서 완성도 있고 매력 있는 작품들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관객들이 마블에 등을 돌리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할리우드 시리즈물의 한계

사실 시리즈물은 양날의 검이다. 전에 개봉했던 영화와 이어진다는, 오리지널 영화가 가질 수 없는 큰 매력을 가졌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계점을 잘 살리지 못하고 전과 변화한 부분이나 발전한  부분이 없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관객으로서도 시리즈물 영화는 관람하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캐릭터와 설정 설명을 영화에서 해주기는 하지만, 전작들을 보지 않았다면 영화를 완전히 즐기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당장 유튜브만 봐도 시리즈물 영화가 개봉하기 전 시리즈 총정리나 시리즈 복습 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올해 유난히 할리우드에서 시리즈물 영화가 많이 나왔다고 말하지는 어렵지만, 그래도 꽤 많이 개봉한 편에 속한다. 위에서 언급한 마블 영화들 말고도, <존 윅 4>, <스크림 6>,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인시디어스: 빨간 문>, <메가로돈 2>,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엑소시스트: 믿는 자>,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쏘우 X>, DC 스튜디오의 <샤잠! 신들의 분노><블루비틀><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았지만 <더 이퀄라이저 3><익스펜더블 4>가 있다. 전체 박스오피스 순위를 봤을 때 이 시리즈물 영화들이 상위권에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각자의 완성도가 뛰어났는지는 의문이다. 이렇게까지 많이 시리즈물 영화가 많이 개봉했지만, 좋은 평을 받은 영화나 전작과 비교했을 때 더 흥행한 영화는 많이 없다. 시리즈의 이름값과 가지고 있는 IP에 비해서는 확실히 영화의 수준이 떨어진다. 코로나19 이후로 전보다 더 보수적이게 된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의 영향, 좀 더 선택적이게 된 관객들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 같다. 또한 올해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이 파업을 하며, 사실상 할리우드가 몇 달 동안 올스탑 상태였고 굉장히 많은 영화들의 제작과 개봉이 미뤄진 상태다. 당연히 올해 개봉하는 영화에도 영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시리즈물 영화를 포기할 수도 없는 할리우드다. 분명히 시리즈물이라서, 시리즈물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은 존재한다. 그걸 잘 살리면서, 관객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 영화, 위기일까 기회일까

영화를 잘 만들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돼있다. 당연한 소리다. 영화를 잘 만들면 입소문이 나게 되어있고, 입소문이 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간다. 자명한 논리이다.

<밀수>

작년부터 계속 나온 이야기지만, 올해 특히 '한국 영화 위기론'이 많이 화두에 떠오른 것 같다. 설날 시즌 영화로 나온 <교섭><유령>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고, 여름 시즌 영화 4편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관객수들을 합치면 천만이 갓 넘는다. 특히 <더 문>은 280억 원에 다다르는 할리우드급 제작비를 투입하고 51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겼다. 9월 말에 개봉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1947 보스톤>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그렇다고 올해 한국 영화 시장이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다. <잠>, <거미집>이나 <화란> 같이 좋은 평을 받았던 영화들도 있었고, <범죄도시 3>는 작년의 <범죄도시 2>에 이어 천만관객을 넘겼다. 또 아직도 상영 중인 <서울의 봄>은 천만관객을 넘으며 2023년 최대 흥행 영화가 되었다.


그럼 문제점은 과연 무엇일까. 가장 표면적으로 보이는 건 영화 티켓값이다. 2022년 코로나19를 이유로 올랐던 티켓값은 현재 성인 기준으로 주말 기준 15000원까지 치솟았다. 영화 관람이 이제 부담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이 아니게 되었고, 위에서 말했다시피 사람들은 영화를 고를 때 더 신중하고 선택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한 영화관들의 대답은 영화관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바로 특별관이다.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가지고 가는 경험을 특별관으로 극대화하여, 관객들을 모으겠다는 전략이다. 이해가 되는 전략이다. 작년에 <탑건: 매버릭><아바타: 물의 길>로 특별관에도 꽤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을 영화관들이 알았기도 했고 말이다. CGV는 전국에 주력 특별관인 IMAX, 4DX와 ScreenX를 공격적으로 늘려나갔고, 롯데시네마는 새로운 특별관인 MX4D를 도입했고, 메가박스는 기존 MX관을 Dolby Atmos관으로 리브랜딩 하며 Dolby Cinema와 함께 '돌비' 특별관을 밀고 나가고 있다. 분명히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드릴 매력 하나가 추가된 거는 맞지만, 이게 과연 한국 영화 위기론을 잠재울 해법이 될지는 큰 의문이다.

<서울의 봄>

한국 영화들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정우성 배우가 한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정우성 배우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관에 가서 개봉하는 모든 한국 영화를 다 관람한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현장 예매가 쉬워졌고, 극장 로비에 있는 소파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점점 극장에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때 정우성 배우는 "내가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배우니까 그걸 아는 거지, 이걸 느끼는 배우들이 몇 명이나 있지?"라고 말한다 (전체 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한국 영화 위기다 위기다 하는데, 이걸 실제로 느끼는 배우들이나 영화 업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 위기론의 본질은 영화의 퀄리티와 완성도에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를 잘 만들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돼있고, 관객들이 모이면 입소문이 나며 영화는 흥행한다. 티켓 가격이 올라간 건 사실이지만, 영화를 볼 사람은 본다. 더욱더 선택적이게 된 만큼, 한 번 선택한 영화는 무조건 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와 평가가 영화의 흥행과 항상 비례하는 건 아니다. 필자가 생각할 때 완성도가 정말 떨어지는 영화들도 코로나19전에는 손익분익점은 거의 모두 넘었고, 천만 관객을 넘는 영화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영화들이 나오기에는 쉽지가 않은 상황이다. 영화관에 사람들 끌어들이는 것이 영화관의 시설이 아닌 영화 그 자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이게 맞다.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는 거지, 특별관 때문에 가는 게 아니지 않은가. 특별관은 영화를 보는 옵션 하나로 남아야 하지, 특별관이 영화관의 주인공이 되는 주객전도가 되면 안 된다.


필자는 오히려 이게 기회라고 본다. 다시 영화의 퀄리티와 기본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 영화를 아끼고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 시장이 살아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영화 시장이 살아나고 투자가 일어나야지, 더 많은 영화에게 기회가 갈 수 있고 더 좋은 영화들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지 않는가.


필자는 올해 48편의 영화를 관람했다. 작년보다 적게 봤는데, 내년에는 영화 보는 시간을 좀 내려고 노력해야겠다. 가장 좋게 봤던 영화는 제작 시작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기대했던 <오펜하이머>였고, <바빌론>,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에어>,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기억에 남는 영화다. 2024년은 영화 시장이 좀 더 살아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새해 복 다들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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