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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나 May 20. 2021

학교가 없는 학교

교육 : 2071년 5월 14일 13살 J 관찰기

“일어나, 이제 학교 가야지?”

“쫌만 더자공.. 오늘 오후 수업이거든요?”

“그래? 그럼 너가 알아서 가렴. 엄마 나간다!” 


햇살이 창틀 유리 무늬 사이사이로 들어온다. J는 눈부신 햇살을 손바닥에 담으며 다시 잠에 빠진다. 10시, 11시, 12시. ♪

알람소리가 울리고 눈썹을 치켜올리는 힘으로 눈꺼풀을 올린 J는 팔다리를 쭈욱 뻗는다. 


“으~” 


벌떡 일어난 그는 세수를 하고, 집 베란다에서 토마토를 한주먹 정도 뜯어와 냉장고에 있는 오이 등 야채와 함께 그릇에 부어 ‘자체제작달달소스’라고 적힌 소스를 뿌려 포크로 찍어 먹는다. 방으로 왔다갔다 하며 헌법책을 가방에 넣고, 옷을 갈아입으며 밥을 먹고, 맹물로 설거지를 한 뒤 모자를 쓰고 나가는 J. 


103동 305호에서 나온 J는 폰으로 스케쥴표를 확인 한 후 104동 507호로 가서 벨을 누른다. 


띵동.

“저 J에요!”

K가 문을 열어준다.

“아깝다, 벌금 거둘 수 있었는데!” 


K는 16살, 104동 507호에 사는 사람이다. 그 집에 16살 A, 15살 B, 14살 C가 먼저 와있었다. J는 13살이다. 


J “그건 안되지.”

K “진행자가 늦나 했는데 안 늦었네?”

J “자, 시작해볼까? 오늘은 51조에서 55조까지 같이 읽는 날이죠?”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헌법 51조, 52조, 53조, 54조, 55조를 설명했다. A가 51조를 설명하면 B가 보충 설명을 했고, B가 52조를 설명하면 K가 자신이 본책 이야기를 통해 판례를 설명했다. 각자는 서로 다른 책을 가지고 있었고,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도 있었다.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가지고 자료를 조사해서 바로 이야기를 나누고, 학습한 내용을 온라인 창구에 게시하며 정리하였다. 


1시에 시작한 학습모임은 3시에 끝이 났고, J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K 집에서 나온다. 


C “요리 수업 요새 뭐해?”

J “요리? 요새 비건요리 개발하고 있지. 나중에 우리집에 와. 해줄게.”

C “채소만 먹으라고?”

J “깜짝 놀랄거다. 비밀 소스가 있거든.”

B “나도 다음 기수에 거기 들어가봐야겠다. 언제 다음 기수 모으냐?”

J “음.. 다음 달이면 요 수업은 끝나. 다음달 초에 다음기수 모집글 올라갈거니까 연결학교사이트 들어가봐.”

B “오케이.”

A “야 나는 저리로 간다. 오늘 버스킹 올꺼지?”

J, B, C “오케이!” 


기타를 매고 온 A는 다른 일행들과 다른 방향으로 달려간다. 


J “A 기타스터디 오래하네? 몇 번째 공연이지?”

B “지금이 아마...5섯번째?”

C “1년 반은 된 것 같은데?” 


J가 폰으로 스케쥴표를 본다. 


J “동촌유원지 8시네. 요리 갔다가 가면 되겠다. 야 밥 조금씩 먹고와. 내가 만든거 싸갈게!” 


B, C ‘예스’라는 입모양을 하며 손주먹을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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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1년. 2021년에 존재하던 학교라는 건물은 이제 더 이상 ‘학교’로 불리지 않는다. 대부분 주민커뮤니티센터로 운영되고 있거나 공공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8세부터 19세까지 사람들도 들르지만 그 외 7세 이하, 20세 이상의 사람도 누구나 들르는 그런 공간이 되었다. 


그럼 학교는 어디있느냐고? 학교를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면 2071년의 학교는 ‘여기저기에 있다’고 하겠다. 말 그대로 여기저기다. J의 집에 운영되는 교육이 있고, K의 집에서 운영되는 교육이 있고, S의 작업실에서 운영되는 교육이 있으며, 길거리, 공원, 박물관, 공연장 등에서 진행되는 교육도 있다. 


앞서 살펴본 J와 친구들의 스터디를 예시로 살펴보면 2021년과 큰 차이 몇가지가 있다. 첫째는 ‘교사’라고 지칭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인즉, 누구나 가르치고 누구나 배우는 구조라는 말이다. 교사 대신 ‘진행자’라는 이름의 운영자가 있어 모임이 운영된다. 진행자는 고정될 수도 있지만 순환하며 돌아가도 된다. 


둘째, 학년제가 아니다. 여러 연령의 사람들이 섞여서 함께 공부를 한다. 형, 누나, 언니, 오빠 등으로 나이 많은 이를 지칭하기도 하고, 이름으로 통일해서 부르고 존대를 하기도 하며, 호칭에 대한 것은 그 스터디마다 참여자들이 의견을 나누어 결정하기 때문에 딱히 하나로 소개하기는 뭣하다. 


셋째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축이지 않을까 싶은데 바로 ‘원하는 교육을 선택하여 만들고, 교육 내용과 방식 모두를 서로가 의논하여 결정한다는 것’이다. ‘자치’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도 있으나 이제는 이게 너무나 당연한 무언가가 되어 굳이 ‘자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교육의 주인공이 원하는 교육을 직접 선택하고, 홍보하여 진행한다. 교육청은 사람들의 이런 욕구를 공유해주고, 연결해주며, 공간 안내, 스터디 기록물 보관 공유 등의 역할을 한다. 결론은 공통된 의무교육이 없다. 추천되는 수업주제 몇가지가 있지만 선택은 아이들 자율이다. 


그럼 대학은 어떻게 하고 취업은 어떻게 하느냐고?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취업 준비를 위해서 존재하던 대학은 2030년즈음 대거 사라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순수연구를 위해서가 아니면 대학의 효용가치가 없다는 데 다들 동의한 분위기이다. 그러니까 대학은 거의 가지 않는다. 이 부분은 대학 이야기할 때 더 하도록 하자. 


그럼 취업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지금은 2071년이다. 요즘 필요한 능력은 거의 대부분 없던 것을 만들어내거나, 감정을 다루는 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사회변화에 적응하고 예측하는 능력같은 건데 그건 어느 교과를 배운다고 해서 만들어지고, 어느 교과를 배우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배우고, 스스로의 생활과 삶을 책임져가는 이 과정 하나하나가 현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기반이 될 것이다. 


2030년즈음 대학이 대거 사라지고, 그때부터 2040년까지 공교육체제가 서서히 해체되면서 사교육도 붕괴되어 갔다. 대규모 국민 토론회가 몇십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결국 ‘의무’와 ‘교육’의 연결을 끊기로 하고, 30여년 간 지금의 체제를 준비, 진행해왔다. 정부 뿐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준비하고 경험해가면서 만들어온 방식이다. 


‘수업’이라는 예전 용어 대신 ‘오픈스페이스’ ‘열린공간’이라는 단어를 쓴다. 동네마다 공간을 오픈하고 자체 공부를 하게 하면서 생기는 많은 문제점들을 겪으며 최악의 문제, 정부가 책임지고 관리해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을 정리해 나갔다. 예를 들면, 열린 공간으로 신청하는 곳에 시찰을 가서 공간이 안전장비를 갖추고 있는 공간인지, 공간 운영자 혹은 집에 거주하는 이들이 범죄이력은 없는지 등을 점검하고 규제하는 것이 있겠다. 활동 내용 중 안전상의 위험이 있어 보이는 것은 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함께 동행하며 사전조사와 문제 예방을 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2071년의 교육은 ‘서로에게 배움’이라는 의미로 가고 있고, 익숙해지고 있다. 익숙해지면서 새삼 서로가 느끼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생각할 기회와 이끌어갈 권리와 책임이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무언가를 고민하고 생각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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