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다시 돌아오다.
나는 처음부터 프랑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인턴을 하던 당시에 파리에 4박 5일 정도 여행을 갔었는데 그때 받은 인상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파리 Bercy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났던 쾨쾨한 냄새와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정류장은 출발지였던 헤이그의 밝고 정돈된 터미널과 대비되어 더 음침해 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은 불운하게도 5일 내내 흐린 날씨와 비와 함께 했고 나는 결국 푸른 하늘 아래 아름다운 파리를 보지 못한 채로 여행을 마쳐야 했다.
함께 했던 사람 덕분에 그 여행 자체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파리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별로였다. 그때 당시 나는 파리가 '여행하기 좋은 도시, 그러나 살고 싶지는 않은 도시'라고 정의 내렸다. 프랑스의 다른 도시를 여행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파리에서의 기억은 곧 프랑스에서의 기억이었고 그렇게 나는 프랑스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어쩌다 다시 프랑스에 오게 됐다. 그것도 여행이 아니라 장장 3년짜리 석사 코스를 밟으러 이곳에 돌아왔다. 처음부터 꼭 프랑스에 오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정말 '어쩌다'보니 다시 프랑스에 와있었다. 석사를 지원할 당시 국가의 경제와 산업구조, 사용하는 언어의 국제적 지위, 졸업 후 전망, 대학 등록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지원할 국가를 추려보니 프랑스와 독일이 나왔다. 그렇게 두 나라에 위치한 여러 학교에 지원서를 냈고, 두 나라 중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는 나라는 미뤄두고 학교와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보고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석사 프로그램 첫 해에는 정말 캠퍼스 안에서만 살았다. 장 보러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마트에 가거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친구들과 파리에 놀러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캠퍼스를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때의 경험을 프랑스에서의 경험이라기보다는 학교에서의 경험이라고 본다. 그러던 도중 프랑스에서도 코로나 유행이 심각해졌고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국에서 석 달 동안 온라인 유학(?)을 마치고 이번에는 갭이어 인턴십을 위해 다시 프랑스에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나의 두 번째 프랑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학교는 내가 떠날 때의 모습보다 훨씬 푸르렀다. 시들어 있던 풀들은 소생했고 그와 함께 각양각색의 꽃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이렇게 예쁜 캠퍼스의 봄을 보니 이 계절을 친구들과 함께 즐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괜히 더 아쉽게 느껴졌다. 그렇게 싱숭생숭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쯤 언제나처럼 현실적인 문제들이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게 아쉬움은 잠시 뒤로하고 곧바로 비자 신청과 이사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처리하면서 지난 한 해를 정리하고 프랑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채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