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z Jan 09. 2020

재생 건축과의 첫 만남

내가 처음 만난 네덜란드의 재생건축


대학교 2학년, 한창 건축 거장들의 이름을 외우고 건축디자인을 보며 그들의 비범함을 이해하고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그때.

교수님께서 한 전시회를 방문하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주신 적이 있었다.

전시 주제는 'RE'였고 전시의 이름은 New Message from NL, 네덜란드에서 온 새로운 메시지. 

RE: USE, RE: MIND, RE: SEARCH, RE: NEW, RE: MARK - 5가지 주제의 다양한 디자인들

re에서 얻은 힌트로 추리하며 '뭔가를 재생산하고 되짚어본다는 의미인가?', 'NEW에 열광하는 지금인데 네덜란드는 왜 무언가를 되돌아보는 전시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자마자 강렬한 빨간색, 파란색의 타이포그래피 알파벳 엽서가 내 시선을 확 끌었다. 조심스레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알파벳 엽서를 이용해 관람객들이 자신만의 '메시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귀여운 관람객들은 너도 나도 자신만의 메시지를 표현하느라 손이 바빠 보였다.

여태까지 수동적인 전시만을 봐왔던 나에겐 이런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전시는 시작부터 흥미로움을 주었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단어를 조합하고 있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생각지도 못한 전시의 방향이었다. 어떤 디자인을 보고는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가 이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네덜란드에서 온 메시지'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5가지 주제들이 주는 메시지들은 아주 분명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단연코 'RE:USE' or SUSTAINABLE!!


REUSE 섹션에 들어서자마자 언젠가 건축잡지에서 읽었던 지속 가능한 건축에 대한 내용이 스쳐 지나갔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며 고갈되어가는 자원과 망가지는 자연들로 피해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모든 건 인간이 자초했고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 아슬아슬한 상황 위에서 우리는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거기에서 도출된 방법 중 하나가 지속가능(sustainable)이다. 건축도 역시나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더 건강한 미래를 약속하며 건축계는 지속 가능한 건축, 친환경 건축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와 자료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섹션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원낭비를 억제하고 재활용을 하자 기존에 있던걸 새롭게 바꿔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치는 덤!



기존의 오래된 건축물을 다양한 디자인으로 증축해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를 결합하여 만든 작품들을 보여준다.


1. 벙커 599 (BUNKER 599)

photo copyright: Rietveld Landscape & Atelier de Lyon

과거 1800년대부터 1900년도 초까지 전략적 방어선의 군사시설물로 이용되었던 벙커.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는 벙커를 산책로로 REUSE 해 네덜란드의 아름다운 자연과 과거 군사물의 강한 이미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벙커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와 상이하게 반으로 쪼개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산책로는 벙커를 진입해 통과하며 호수까지 이어져있다. 사람들은 이 산책로를 걸으며 벙커 안을 지나갈 수 있고 벙커가 지닌 전쟁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작은 쪼갬 하나로 건축물은 과거를 살다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2.크래머르 박물관 (cremer museum)

photo copyright: Fred van Assendelft

기존의 건물은 목화 창고다.

목화 창고라.. 우선 건물의 쓰임새부터 과거의 향기가 물씬 난다. 역시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목화 창고를 전시 박물관으로 재사용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향의 건축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화력발전소였던 건물을 박물관으로 재사용한 TATE MODERN) 기존의 건물은 목화 창고에 적합했던, 낮은 4층 건물이었는데 이 낮은 높이가 공공기능으로 충분하지 않았고 채광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높낮이를 변화시켰다. 그 사이에는 상설전시를 위한 충분한 공간을 만들었고 새로운 재료를 이용해(유리 부분) 3층의 파사드와 천장을 높였다. 다채로운 파사드 구성, 세월을 가지고 있는 낡은 벽돌과 새로운 기능 실현을 위한 구조적 변화에서 오는 조화로움이 눈길을 끄는 건물이다.



3. 암스테르담 시립 근대미술관 (Stedelijk Museum Amsterdam)


이 건물을 보면 우리나라 서울 시청이 생각난다. 외형적인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과거와의 조화는 어디 있을까, 기존의 건축물과 함께라는 조화로움은 꼭 필요한 걸까. 이 건물을 보면서 나는 굳이 조화로움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암스테르담 시립 근대미술관은 반 고흐 뮤지엄 뒤쪽에 위치해있다. 실제로 작년에 암스테르담에 여행 갔을 때 반 고흐 뮤지엄을 보고 시립 근대미술관을 보러 갔었는데 그저 멋있다...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ㅎㅎㅎ 이렇게 물 흐르듯이 사람을 잡아끌다니!!라는 게 두 번째 생각이었다.

나에게 암스테르담 시립 근대미술관은 지속 가능한 건축은 굳이 과거의 한 부분을 차용하지 않아도, 현대의 해석 그대로라도 정말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었다. 

내부는 아주 자연스럽게 기존의 건물에 스며들어있다. 새로운 건물에서 오래된 건물로 들어가는 건가 라고 인지할 수 없을 만큼. 외관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면 내부는 전혀 그렇지 않다.

기존의 건축물이 가지고 있던 기능적인 불편함을 수정하고 관람객의 편리성을 도모하기 위해 입구를 바꾸어 다양한 동선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했다. 당연히 이 동선들로 기존의 건물로도 출입이 가능하다.

건축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언가가 외형적인 부분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어떤 기능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앞으로의 가능성으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네덜란드 디자인의 진정한 가치는 결과물에 있지 않다.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통해 개념을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있다”


그렇게 그 전시에서 나는 재생건축을 처음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