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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Jan 08. 2023

호주 시드니 한복판에서 인종차별 폭행을 겪었다

영어 유창한 호주 이민 1.5세대가 바라보는 호주의 인종차별

내 인생의 반절을 호주에서 살아온 25살 이민자로서 난 항상 "호주에서 전 인종차별 거의 겪어본 적 없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항상 그렇게 생각해 왔다. 호주 멜버른은 나에게 안락함과 포근함을 선사한 좋은 도시일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시드니에서 겪은 인종차별자의 폭행은 내 작은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우리를 폭행한 범인. 경찰 말로는 마약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막내 이모께서 호주에 여행 오셔서, 앤디와 나, 이모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시드니 도심을 걷는 중이었다.

내가 살짝 앞서 걷던 와중, 내 뒤편에서 이모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어떤 백인 남자가 앤디를 차도에 밀쳤다. 빨간 불이어서 망정이지...  난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서있었고, 이모는 우산을 움켜쥐었다. 그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개처럼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고, 난 그의 충혈된 눈을 보고 한번 더 굳었다.


 "Get out of my country." 그는 으르렁 거렸다. (으르렁이라는 표현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는 정말로 사냥개처럼 으르렁 growl거렸다).


"GET OUT OF MY COUNTRY!" 갑작스레 그는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달려오기 시작했고, 난 이모가 "민지야 뛰어!"라고 소리치는 말소리에 그때서야 무의식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가 내 팔꿈치를 움켜쥐었고, 나는 뿌리치고 계속 뛰었다. 나와 함께 뛰던 이모는 장우산을 쥐고 그에게서 우리를 방어했다.


그는 뒤돌아서서 앤디를 향했고, 앤디를 향해 주먹질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길 반대편의 디올매장을 쳐다보더니 그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우리 쪽은 많이 한산했고, 반대편은 많은 동양인들이 디올매장에 줄을 서 있어서 주의를 빼앗긴 것 같다.)


참 바보 같지만 난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앤디가 000 (응급) 전화를 하고, 경찰과 통화를 하는 걸 듣기 직전까지. 이모는 옆에서 앤디를 지혈하면서 "저기 저 사람 반대편에서 다른 사람을 때리고 있어. 민지야 빨리 찍어."


이모의 재빠른 상황판단으로 난 핸드폰을 꺼내 녹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을 때렸다. 주먹질을 하고, 옷을 찢고, 욕을 하다 경찰에 잡혔다. 마약을 했는지, 다섯 명의 덩치 큰 남자들이 제압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위로 돌아갔고, 그는 경찰이 오기 전까지 계속 시민들을 폭행했다.


우리를 때린 사람이 반대쪽 디올 매장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을 폭행하는 모습


누가 과거의 나에게 물어봤다면 난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에이,  백호주의는 정말 옛말이야. 없지 않진 않겠지만, 나는 겪어본 적 없어. 약간 영어를 못 하면 답답해하고 언어를 못하는 것에 대한 차별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건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오늘 생각해보면 난 내가 항상 마음속으로 정당화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인종차별을 항상 겪진 않았지만, 아예 없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둔한 척, 못 느낀 척, 하하 웃어넘겼다. 아님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못 배워서 그래 (맞는 말이긴 하다)"라고 하면서 쿨한 척 넘겨버렸다.

예를 들자면, 지나가는 청소년 무리가 소리를 지르거나 툭툭 치고, 눈을 찢고 웃는 것? 버스 운전사 아저씨가 "헬로 차이나."라고 부르고, 중국인이 아니라고 하니 "그래도 비슷하니까 잘 알겠지. 나 중국어 요즘 배우고 있는데 너랑 연습해도 돼?"라고 묻거나. 백인들이 많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칭총이나 니하오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 아니면 엄마랑 밤에 산책 도중에 갑작스레 지나가는 차가 창문을 내리고 와ㅏㅣ하고 소리를 지르며 겁을 주는 것 등등.


그런 일을 겪으면 "아 저 사람들이 못 배우고 이상해서 그래"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학교나 내가 일하는 사회에서는 겪지 못한 군상이니까. 그냥 그냥 무시하면 사라질 거야.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난 호주에 인종차별이 있다는 말을 부정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흔하게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의 두려움들 없애주고, 호주는 좋은 나라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없다고 말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swept under the rug). 더 불편하고 힘들 순 있어도 문제를 직면한다면 결과적으론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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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겪고 나서 이 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멜버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우리 가족은 빅토리아 방방 곡곡을 여행했다. 그리고 어제, 이모는 다사다난했던 호주 여행을 잘 마치시고 한국에 도착하셨다. 난 평소처럼 집에서 방학을 만끽하고 있다.

그렇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이모께선 가끔 멜버른 시내를 걸으며 비슷한 외모의 백인 남자를 만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시곤 했다. 앤디는 큰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또 표정이 빨리 굳어지더라.  


최근 들어 인종차별과 무차별적인 폭력을 내심 두려워하게 되었다. 시내에서 친구들과 놀 때 이제 항상 운동화를 신는다. 혹시나 빨리 달려야 할까 봐. 원래는 길거리에 노숙자를 보게 되면 커피도 사드리고 대화도 나누곤 했는데 이젠 더 빨리 걷게 되고, 내 심장은 그에 맞춰 더 빨리 뛰더라. 레스토랑에 가서도 서버가 불친절하면 괜히 또 지금 인종차별을 겪고 있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마음이 계속 불안하다.


한 사람만 인종차별적인 생각이 있어도 이번 겪은 것처럼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데... "인종차별 하는 사람들이 못 배워서 그래." 이렇게 머릿속에서 정당화한 것은 옳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예전에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칭총, 니하오, 눈 찢는 동작 등은 인종차별주의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 그리고 그것들이 발화해서 폭력으로 변화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하나하나의 사소하다 느낄 수 있는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자리에서 Victim report 경찰 조사를 받은 후 주신 카드. 그 후에 메세지로 이벤트 넘버를 받았다.

혹시 가능하다면 여러분이 인종차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견을 듣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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