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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Jul 17. 2023

호주 정치인 만나고 온 후기

환경오염에 대해

"떨지 마, 결국 다 사람이야." 

내가 들어가기 전에 까마득한 선배(?)이시자 나이 지긋하신 의대교수님이 나에게 충고해 주신 말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웬걸. 8명 딱 앉을 수 있는 미팅 테이블에서 내 바로 왼쪽에 오늘 만나 뵙게 된 서호주 부총리님께서 앉은 것이다! 


정말 이렇게 부담일 수가 없었다. 

자리 선정을 정말 못했다... 


나는 이미 자리에 노트북이랑 아이패드 등등 잡다한 것들을 정리해 둔 상태여서 (다른 의사분들은 다들 간단하게 노란 노트와 펜 하나를 들고 스몰토크를 하고 계셨다. 이것도 나의 패착이었다), 옮기기에도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저 신이시여... 부르짖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방긋 웃으며 그분께 인사를 했다. 다행히도 정말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해 주셔서 나름 다행이었다. 



조금 설명을 곁들이자면 나는 현재 의과대학원 2학년으로, 현재 Health and Human Rights Group (인권과 건강)이라는 학생회의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그 임무 중의 하나는 바로 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정말 뜻깊은 기회가 생겨 Doctors for Environment Australia라는 의사 단체와 함께 환경 보호에 대해서 의사들의 입장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부총리님을 뵙고 최근 환경 문제에 관해서 Parliament House (국회의사당?)에서 의사들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설득하는 자리라 소수 정예(?)만 뽑아서 가는 자리였는데, 의사 분들께서 말하시길 학생들의 목소리를 정치인들이 좋아한 다시면서... 시간 되면 한번 자리에 함께 해달라고 부탁받았다. 



나는 멋도 모르고 캐주얼한 하얀 니트에 검은 바지와 빨간 목도리를 하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 


일단 가 보니 모두 다 정장을 입고 있어서 일차 당황. 


게다가 나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바로 갔기 때문에 한 손엔 바리바리 두꺼운 노트, 내 등에는 교과서랑 무거운 노트북이랑 아이패드까지 다 들어간 엄청나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갔다. 너무 다른 옷차림에 이차 당황. 


아, 누가 말 좀 해주지.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차림이 더 플러스가 된 것 같았다. 다른 의사분들이 얘기할 땐 어쩐지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내가 말을 할 때 조금 풀린 느낌? 난 별 말 안 했는데 웃음꽃이 피었다. 



내게 허락된 발언 시간은 2분 정도였는데, 내가 맡은 분야는 우리 서호주에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총량 (탄소발자국)이 어떻게 시민들의 건강과 연관성이 있는지에 관해서였다. 


하필이면 부총리님께서 내가 적어간 노트를 볼 수 있는 거리라서 최대한 노트를 보지 않고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그분께서 미팅 도중 내가 빠르게 타이핑해 나가는 노트를 흘쩍 보시는 시선을 느끼고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하지만 내게 주어진 발언 시간 외에도 나와 눈을 마주치시고 계속 나의 의견을 여쭤보셔서 내가 준비한 말 외에도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어서 더 보람 있는 대화였다. 


"의대생들은 이런 문제에 얼마나 관심 있는 것 같아요?"라고 여쭤보셔서, "직접적인 환경보호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4-5명이지만 올해 우리 동아리에서 주최한 환경보호에 관한 워크숍은 한 80명의 의대생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했고, 아마 의대생들은 만성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관심은 많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 하는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다. 


우린 대학교에서 환경오염이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금씩 배워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행동을 옮기기엔 시간과 지식의 제약이 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대화에 진척이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정치란 건 복잡한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의회의 발언권을 허락받지 못했고, 다만 다른 정치인 분들과 환경 단체에 말을 넣어주신다고 얘기해 보라고 하셨다. 여러 단체의 힘이 모인다면 자신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셨다. 


들어가기 전에 난 우리의 대화 주제에 자신이 있었다. 


환경 보호는 정말 중요한 문제고,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게 가시적으로 보이기에 (예: 2020년 호주 산불. 코로나로 잊혔지만 도시인 멜버른과 시드니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큰 사건이었다) 대처를 한다는 건 정말 당연한 거라고 느껴졌다. 


또한 부총리분께서도 대학교 시절 과거 환경보호에 관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신 경력이 있기에 (미팅 전에 난 위키피디아를 보고 공부하고 갔다...ㅋㅋ) 우리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하고 갔다. 

실제로 부총리분께선 우리의 얘기에 대체적으로 공감하셨고 아는 것도 정말 많으셨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가로막는다고 하셨다. 지구 온난화를 막는 방법은 비싸고,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분야라 정책 변화에 반영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한, 환경보호와 산업의 효율성은 반비례관계를 가지고 있어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담스러운 면도 있는 것 같다. 친환경은 일반적으로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이 비효율적인 면이 많으니... 


만약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환경이 오염되는 걸 예방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모르고 넘어갈 거라는 단점이 있다. 예방을 한다면 "에이, 거 봐,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말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세계적인 문제니까, 호주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좀 더 디테일한 정책에 관해 많이 다루었지만, 혹시나 여러분이 지루할까 봐 (또는 혹시 이게 문제시될 여지가 있을까 봐) 더 말을 삼가겠다. 


하나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건 환경오염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자연이 아름답고 환경오염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지난 2020년 산불로 큰 영향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환경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까? 정말 좋은 답이 없는 문제다. 


우리는 더 멋있고 편리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데, 어느 순간 우리에게 "핸드폰을 쓰지 마세요, 결국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킬 겁니다"라고 하면 누가 "네" 하고 바로 그 편리함을 포기할까?


만약 우리에게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포기하면 지구 온난화가 느려진다고 하면, 암을 가진 환자와 그 가족은 당연히 연구를 포기하지 말라고 하겠지. 당연히 눈앞에 닥친 죽음이 먼 미래의 지구 온난화보다 더 두려울 테니. 


모두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캔을 매번 씻어서 버리기엔 시간이 없어요."
"환경보호는 아직 대중들이 원하는 게 아니에요.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막는 게 일 순위예요." 
(현재 호주는 큰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환경오염보단, 일단 일회용 라텍스 장갑을 껴서 혹시 모를 감염을 막는 게 더 중요해요. "
(감염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니, 일리가 매우 있다.)


이 모든 이유는 들어봐도 다 말이 된다. 우린 멀리 있는 미래보단 눈앞에 당장 닥친 위험을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조금씩 쌓여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황폐한 지구가 되겠지. 




이렇게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그냥 내가 아이를 놓고, 손자 손녀를 보면, 그 아이들은 내가 사는 것처럼 좋은 삶을 살까? 

이런 마음은 문득 들면서도, 어떻게 하면 정말 현실적으로 환경 보호를 할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저 환경보호에 관해 뉴스 한번 읽는 거에 정말 조금의 시간을 투자하고, 내 머릿속의 뇌에 좁쌀만큼의 자리를 내어주고, 구제 옷을 입고, 열심히 재활용을 하고, 차 대신 대중교통을 타는 것 외엔... 



대학생 때 그렇게 열심히 환경운동을 하시던 대학생이셨던 분이, 이젠 정치인이 되어 경제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 등등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들었다. 

옛날 어디서 들은 얘기가, 젊을 땐 열정과 패기로 뒷일 생각 안 하고 밀어붙일 수 있는데 나이가 들면 이것 걱정, 저것 걱정 때문에 안정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래서 열정으로 살 수 있을 때, 최대한 뜨겁게 살라고. 


난 왜 이렇게 미지근하게 살까. ㅋㅋ 


하지만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고 검토하는 모습이 한편으론 정말 멋있기도 했다. 이젠 높은 자리에 올라서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니, 그 말에 책임을 지려고 한 마디를 서투르게 말하지 않는 것이니. 


그 분의 말의 무게가 참 멋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 다른 의사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말. 우리의 말에 이렇게 귀 기울여 주는 정치인들이 흔하지 않다고 했다. 특히 의대생들 말에 이렇게 진심으로 눈을 마주치고 듣는 건 별로 없는 일이라, 운이 좋은 거 같다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정말 떨렸는데, 마법처럼 편안해졌다. 다음번이 있다면 무섭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의 경험을 토대로 다음엔 더 조리있게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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