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39분], 8장
<8>
“아, 그래.”
어제 나는 그 남자를 소개하는 친구의 말에, 아, 그래, 라고 했다. 내가 말이다. 마치 당신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아, 그래, 라고 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나는 그 남자를 알고 있고, 그렇기에 어쩌면 당연스러운 대답이었을지 모른다. 그 상황에서 나는 그 남자를 몰랐어야만 했던 것처럼, 그렇다고 거짓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기에, 내 입은 마지못해 가장 최선의 대답을 건넸다. 아, 그래.
오늘 출근길은 어제 그 남자가 뱉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는 일로 채웠다. 그리고 오늘만은, 아니 더 이상은 그 남자와 같은 전철을 타고 싶지 않아,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나왔다. 그 남자가 싫어졌다기보다는, 그 남자와 다소 민망한 사이가 되었다는 편이 맞겠다. 그 남자와 단 둘이 아니라, 내 친구가 함께 있었던 자리였기에, 괜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 남자는 서슴없이 우리의 지난 '일주일'을 수면 위에 꺼내 놓았다.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혹시 어디서 우리 만난 적 있어요?"
예상대로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당신은 그 좁아터진 '츄러스 집'에서 매니저급으로 일하는 그 츄러스라는 빵을 굽는 꽤 괜찮은 남자였다. 내가 그렇게 존재감이 없었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가 존재감이 뛰어났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렇게나 제대로 인지하니까 괜히 서운하기도 한 것 같다. 그러더니 나에게 오늘 왜 늦잠을 잤냐고 물었고, 내 친구는 내가 늦잠을 잔 사실을 왜 주임님이 알고 있냐며 따져 물었고, 나는 그것을 해명해야 할 일도 아닌데 해명해야 했다.
"아니, 그런 거 있잖아. 내 친구 중에 한 명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매일 같이 출근할 때마다 같은 시간에 전철을 타다 보니까, 어디서 내리는 사람인지 알고, 언제 이 자리가 비는지 알고, 그런 걸 다 알게 된다고 하더라고. 우리도 그런 거 같은데, 아닌가? 매번 같은 시간에 전철 타시는 것 같더라고. 맞죠? 8시 39분?"
꽤나 자연스러우면서도, 꽤나 내가 당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그렇다고 꽤나 아무 상관도 없는 느낌은 아니라고 잘 말했다고 생각하면서, 안도했다. 친구도 '아-' 하면서 '와 그게 주임님이라니 신기하네요.' 하면서 잘 넘길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러던 찰나에 그 강렬했던 아침을 구체적으로 꺼내는 그 남자의 말에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긴 하죠. 근데 아침에 창문으로 저 엄청 보던데, 저 본 거 맞아요?"
"아, 아.. 그랬었나..?"
아, 아, 그랬었나, 라는 말은 내가 그랬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나에게는 별로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일이었다고 말하는 건지, 나의 당황한 기색을 그대로 내비치는 애매모호한 말 뭉치였다. 그리고 내 친구는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고, 그 남자도 반 이상이 남았던 맥주를 꿀꺽 모두 마셨다.
그렇기에, 나는 그 남자에게 선을 긋고 싶어진 것이다. 어차피 그 남자는 내가 그 츄러스 집의 그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것도 알지 못하고, 이렇게 출근 열차를 맞춰서 타지 않는다면 나와 엮일 일도 없고, 그리고 내 친구는 내가 무심하게 그 남자를 쳐내고 있다며 이야기를 건넨다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일이다. 가끔이야 가깝기도 하니 마주할 일도 있을 것이고, 내 친구의 직장 동료라는 연결고리도 있어 건너 건너 이야기도 듣게 되겠지만은, 그건 지금 매일 같이 마주하는 이 상황보다야 훨씬 이상적일 것이다.
'그와 나를 잠시 떨어뜨릴 '선' 같은 것이 있다면,
그의 발끝에 두어 나의 구역을 침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남자와 선을 두고 싶다.'
이건 뭐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이 애매한 관계 같은 것은 현대인의 고민거리에 부담만 줄 뿐,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