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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조문객이 적다 보니 장례식장에는 대부분 고인의 직계가족들만 있다. 전부 상복차림새인 사람들뿐이라는 거다. 그들 사이에서 내 차림새는 생각보다 튀는 모양이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여자가 양복을 입은 것이 시선을 받을 정도의 일이라니, 원래도 면접과 미팅을 바지정장으로 다녔던 나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성별이 헷갈릴 만큼의 외형과 덩치는 아닌지라 양복을 입었어도 나를 남자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덕분에 옆 빈소 사람들, 장례식장 직원, 음료와 술을 배달하는 기사님들까지 수군거렸다. 남자처럼으로 시작하는 온갖 말들이 지나갔다. 화장실에서 다른 여성분을 놀라게 하지 않는 건 다행이었지만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남자로 보이는 게 나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는 남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상주를 하고 싶었던 것뿐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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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조문객, 내 조문객, 동생의 조문객들은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구분할 수 있었다.
중년의 아빠 조문객들, 여고-여대-여초회사 라인으로 인해 성별과 연령이 다소 편파적인 내 조문객들, 그리고 공대 대학원에 다니는 동생의 개성 넘치는 조문객들.
그냥 젊은 남자를 포함한 무리는 동생손님, 젊은 여자 무리는 다 내 손님이었다는 말이다.
언니의 눈으로 봐서 그런가 동생의 친구들은 어딘가 어설펐다. 특히 가장 먼저 왔던 친구들이 그랬다. 옷장에서 간신히 검은색을 찾아 꺼내 입은 차림새로 와서는 어설프게 눈치를 살펴가며 행동했다. 빈소에서 내게 어색하게 인사하고는 구석으로 가서 자기들끼리 속삭였다.
-근데 기독교도 절해?
-모르겠는데 그냥 하자.
짧게 대화한 후 얼렁뚱땅 절을 했다. 덕분에 조금 웃었다. 그 친구들에겐 나도 모르게 편안하게 말을 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랑 동갑이더라. 동생 필터가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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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는 옆동네 출신에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라 친구들이 많이 겹치는 편이었다. 엄마아빠의 친구들은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중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엄마를 애칭으로 불렀다. 엄마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할 때와 똑같이.
넋을 놓은 친구를 안은 채 사진 속 친구를 하염없이 보고 있던 그분들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네가 첫째구나, 했다. 나를 본 적이 없는 분들이지만 날 보자마자 알아차리셨다. 생김새는 엄마를 빼닮았고 하는 행동이 아빠와 똑같다고 했다.
나는 여태까지 엄마만 닮았다고 생각해 왔고, 그렇게 들어왔다. 피부색 말고는 아빠랑 닮은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모도 그렇지만 적성과 흥미도 그랬다. 아빠는 대단하신 한-양-공-대 출신으로, 인문계로 진학한 나를 끝까지 못마땅해했던 사람이다. 동생이 공대로 진학한 이후 우리 집은 종종 밥상머리에서 인문대와 공대의 신경전이 펼쳐지곤 했는데 주동자는 늘 아빠였다. 동생과 아빠는 이 은은한 신경전을 즐겼으나 나와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좋고 싫고, 잘하고 못하고 가 늘 반반 나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아빠는 늘 동생이랑만 같은 편이었다.
아빠가 없어지자 처음으로 아빠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