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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프로듀서 Nov 21. 2019

한국인의 얼이 된 이방인

대우국민차 티코-타국의 재료와 자동차, 한국인의 큰 기쁨이 되다

어린 시절 나는 늘 자동차와 함께했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자동차에 대한 기억이 많다.


자동차 마니아셨던 외할아버지의 '현대 엑셀'은 사람이 얼마나 자동차에 애정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낚시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와 함께 '현대 스타렉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요즘 말로 '차박'이라고 말하는 모토캠핑을 즐기면서 차로 떠나는 여행의 맛을 알게 되었으며

고성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답게 고속도로를 질주했던 이모의 '현대 엘란트라'는 강력한 엔진의 힘과 속도로

필자를 매료시켰다.


지금은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지만, 어머니의 '기아 프라이드'는 내 첫사랑이었다.

초등학교 때 첫 교통사고 때도 튼튼한 차체로 어머니와 날 지켜주었고

이후에도 잔고장 하나 없이 필자의 학창 시절을 쭉 함께했다.


프라이드와 함께 필자의 기억에 남은 차가 한대 더 있는데

필자에게는 친구의 어머니 차로 기억이 남아있는 차, 바로 이 글의 주인공, 작은 차 큰 기쁨 '티코'다.


그 시절 티코에 대한 기억이 있는 독자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8090년대생에게는 '부모님 차'로서, 6070년대생에게는 '첫차'로서, 그리고 유머의 소재로서

티코는 그야말로 '국민차'였고 한국 경차의 자부심이었다


일본에서 온 스즈키 씨

티코의 원형인 스즈키 알토

1980년대 말,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의 자동차를 공급하기 위해'국민차 사업'을 실시한다.


국민차 사업의 중점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200만 원대의 가격을 요구했고 사업자로 선정된 대우조선은 저렴한 상품을 물색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일본에서 저렴한 가격과 상품성으로 7080년대 일본의 경차 열풍을 일으키며 스즈키를 일본 자동차 업계의 거목으로 성장시킨 '스즈키 알토'가 대우조선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스즈키와의 협력으로, 1991년 대우국민차의 티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1991년 출시된 대우국민차의 티코

하지만 티코의 첫 등장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작은 차체에 제대로 된 옵션조차 없던 티코는 90년대 초반 한국차 시장에서는 찬밥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집보다 차가 더 중요한 시대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집을 먼저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던 시기였다.

아무리 티코가 저렴해도, 차를 사는 것보다 주택 구매를 위한 저축이 먼저였다.


이미 집과 차가 있는 중년층에게는 경차는 그저 부실하고 위험한 차였고, 티코가 노렸던 주 구매층인 젊은 층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고, 결혼 이후 가족이 늘었을 때는 탈만한 차가 아니라고 인식되었다.

1990년대 중반, 옵션이 추가되며 드디어 차다운 차가 된 티코

그러다 IMF 직전인 1990년대 중반, 드디어 티코가 빛을 보기 시작한다.

IMF 직전 거품경제로 국민들의 구매력이 어느 정도 늘어났고

1가구 2차량 중과세를 경차에게는 부과하지 않으면서, 드디어 한국에 '세컨드카'문화가 열리기 시작한다.

여기에 IMF가 터지면서 드디어 저렴한 가격이라는 장점이 두각을 나타내며, 티코의 시대가 시작된다.


티코는 과연 국민차인가?

티코가 한국의 경차시대와 세컨드카 문화를 개척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도 '정말로 티코가 국민차인가?'라는 주제로 수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뛰어난 완성도로 600만대라는 누적 판매량을 기록하며 한국차의 전설이 된 기아 프라이드나

패밀리카의 시대를 열며 한국 누적 판매량 1위를 기록한 현대 소나타와는 달리

티코는 출시 당시 별로 인기도 없었고, 많이 팔린 모델이긴 하나 프라이드와 비교하기엔 적은 판매량이다.


하지만, 국민차가 꼭 자동차의 완성도가 훌륭하고 판매량이 높아야 할까.

월남전에서 장병들이 가장 원한 건 김치였다

월남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의 존슨 대통령에게 "김치만이라도 하루빨리 우리 병사들이 먹을 수 있게 해 달라"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대한민국에서 김치통조림을 만들어 장병들에게 전투식량으로 보급했다는 이야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유명하다.


당시 한국의 통조림 기술력 부족으로 장병들은 온전한 김치가 아닌 김치 핏물과 녹물이 뒤섞인 통조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온전한 일본산 김치통조림을 먹느니, 한국의 김치통조림을 먹겠다는 애국심 하나만으로

장병들은 녹물이 섞인 김치 국물을 들이켰고, 통조림 값은 조국으로 보내져 한국의 근대화에 보탬이 되었다.

월남 배추(좌)와 양배추로 만들어진 김치는 장병들에게 귀한 반찬이였다

이런 열악한 곳에서 청춘을 보낸 참전용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맛있는 음식을 물어본다면

수많은 참천용사들이 '월남 배추나 양배추로 만든 김치'라고 말한다.


케레바50(MG50) 탄통에 현지에서 구한 양배추를 절여 만든 김치를 넣어두고 새콤하게 익으면 먹었다고 하는 양배추 김치는, 비록 탄통의 페인트가 섞였지만 김치통조림보다 신선하고 맛있는 장병들의 소울푸드였다.


양배추 김치가 배추가 아닌 양배추로 담갔다 해서, 김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 온 티코는 베트남의 장병들을 위로한 양배추 김치처럼

완벽한 맛은 아니었지만 IMF에서 허덕이는 국들의 힘이 되었고

오랫동안 많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을 위해 만들어져 한국인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김치처럼 티코도 당당히 한국의 국민차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티코가 그리워진다

2019년 지금 한국에서 생산 중인 경차인 모닝, 스파크, 레이

티코가 생산되던 1990년대와 달리, 지금의 한국 경차들은 1000cc의 엔진을 달고 티코보다 프라이드에 가까운 크기를 자랑하며 '경차'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2014년 출시한 8세대 스즈키 알토

그와 다르게 티코의 원형인 스즈키 알토는 여전히 660cc라는 엔진과 경차 규격의 한계를 밀어붙이며 자그마한 사이즈를 유지해 '경차'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티코가 단종된 지 1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경차를 무시하는 한국의 자동차 문화는 여전하다.

그런 문화를 조금이나마 벗기 위해서 한국의 경차는 점점 커지고 점점 화려해졌지만,

이런 차들을 과연 '경차'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바뀌여야 하는 것은 경차의 크기가 아니라 경차에 대한 인식이다.

진짜 한국의 경차이던 티코가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FIN-

글쓴이-쉐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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