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v페라리를 보기 전에 봐야 할 또 하나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필자는 아직도 '카3'를 극장에서 본 그날을 잊지 못한다.
"애들 만화가 뭐가 재미있나?"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카3는 평범한 자동차 만화가 아니었다.
카1이 나오고 11년이 지나서야 나온 카3.
맥퀸이 달려온 11년의 역사와 함께하며 이제 어른이 된 꼬맹이들에게, 카3는 전설의 아름다운 퇴장이었고 마음과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 충분했다.
마치 고인이 된 '폴 워커'를 떠나보내는 '분노의 질주 7'의 엔딩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대성통곡을 하며 울고 있던 필자의 모습을 보고
'저 오빠는 왜 울어?'라고 물어보던 꼬맹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이런 필자에게 '포드v페라리'의 개봉을 기다리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다.
하필 개봉 6개월 전부터 예고편을 올리면서 홍보하는 바람에
필자의 6개월은 거의 전역을 기다리는 이등병의 심정이었다.
자동차 영화, 특히 경쟁이 주요 중점인 모터스포츠 장르는
그저 감정적으로만 슬퍼지며 눈으로만 눈물을 흘리는 일반적인 감동 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데,
대량 생산하는 양산형 자동차나 뽑아내던 평범한 기업이 슈퍼카 기업을 때려잡는 영화 '포드 v페라리'
5단 기어를 제외한 모든 기어가 고장 난 상황에서 2등으로 경기를 마친 F1의 전설 '미하엘 슈마허'
너무 뛰어난 성적 때문에 핸디캡으로 무거운 대형 세단인 '기아 콩코드'로 경기를 출전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관우에게 적토마를 준 꼴이 되어 대회를 휩쓸어버린 '박정룡'
바로 모터스포츠는 언제나 '이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희열과 열정,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인고의 시간을 거치고 피어난 우승이라는 드라마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누가 이길지 뻔히 결과를 알고 있지만,
그 승리를 위한 과정이 너무나도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포드v페라리'를 기다리는 동안,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모터스포츠의 감동실화
'스카이라인 GT-R'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955년, 도요타자동차가 순수 기술로 '크라운'을 출시하며, 일본의 국민차 시대가 열린다.
비록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일본의 실패 상품으로 꼽힐 정도로 참패를 겪었지만
한국에서는 신진자동차를 통해 '신진 크라운'으로 수입되며 한국 자동차 시장의 고급차 시대를 개막하기도 한
일본의 대명사이던 자동차였다.
이런 거대기업 도요타를 기술력 하나로 따라잡은 중소기업이 있었는데,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프린스자동차공업'의 '스카이라인'이다.
스웨덴의 '사브'처럼 프린스자동차중공업(이하 프린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를 만들던 기술력으로 차량 제작을 시작한 기업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의 자동차는 하늘과 땅이 맞닿는 능선이라는 뜻의 '스카이라인'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프린스는 자그마한 자신들의 중소기업을 홍보하기 위해 1963년 처음으로 열린 일본의 모터레이스 '일본 그랑프리(GP)'에 도전장을 던지지만 아쉽게 8위라는 성적으로 경기가 마무리되고,
이후 그들은 좀 더 강력하고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스카이라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1964년, 일본은 외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규제를 풀게 되면서 자국 메이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의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처럼 소규모 자동차 메이커들을 대기업 메이커에 강제로 인수 합병시키기로 하였고, 중소기업이던 프린스 역시 닛산에 합병될 위기에 놓였다.
프린스는 반드시 일본 그랑프리를 우승해야만 했다.
150마력이라는 괴물 같은 엔진을 달고 나온 '스카이라인 2000GT'에게 적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반드시 우승을 해야 했던 스카이라인 앞에 새로운 최강의 적수인 포르쉐가 등장한다.
도요타나 닛산 같은 대기업의 자동차는 이길 수 있었지만, 이미 모터스포츠에서 수많은 혈전을 펼치며 이골이 나 있던 포르쉐의 기술력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1위를 포르쉐에게 넘겨준 프린스의 스카이라인은 2위로 경기를 마치며 우승이라는 꿈은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만다.
1964년 일본 그랑프리를 우승하지 못한 프린스.
닛산과의 합병이 결정이 된 상황인 프린스는 그야말로 절망의 늪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포기하지 못하는 단 하나의 꿈이 남아있었다.
포르쉐를 이기는 것.
괴물을 이기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포르쉐904의 미드쉽 엔진의 우수성을 본 프린스는 "우승을 위해서는 맞춤형 스포츠카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220마력의 GR-8 엔진을 뒤쪽에 두고 경량화된 알루미늄 바디로 무장한 R380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포르쉐도 마냥 승리에 취해있는 바보는 아니었다.
64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스카이라인에게 무서운 추격전을 당했기 때문이었을까, 포르쉐는 2년 전 904보다 한층 더 진화한 포르쉐 906으로 참전한다.
드디어 막이 오른 1966년 제3회 일본 그랑프리
최강자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포르쉐'
포르쉐를 잡기 위해 칼을 갈아온 '프린스'
프린스를 이기기 위해 더욱 진화한 '도요타'
그리고 자신들의 성능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일본 그랑프리에 참가한 '재규어' '포드' '로터스' 등등
경기장은 그야말로 괴물들의 전쟁터였다.
숙명의 라이벌 포르쉐 말고도, 수많은 거대기업들을 상대해야 하는 프린스의 마지막 레이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도망칠 곳도 없는 프린스의 영화 같은 전설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프린스의 R380은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가기 시작하고,
그 누구도 R380을 쫒아갈 수 있는 자동차는 없었다.
하지만 성능에서 더욱 높은 진화를 이루어낸 포르쉐의 906은 R380을 무섭게 추격해나가기 시작했고
경기는 순식간에 906과 R380, 두 숙명의 라이벌의 1대1경기로 바뀐다.
경기 중반에 R380은 906에게 추월당했지만, 프린스의 그 누구도 당황하지 않았다.
추월당한 프린스팀은 피트인 과정에서 가솔린 급유기를 높은 곳에 매달아서 중력의 힘으로 가솔린을 폭포수처럼 차량에 쏟아붓는 '중력식 가솔린 급유기'라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포르쉐가 1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급유 과정을 프린스는 무려 15초로 단축시키며 프린스는 순식간에 포르쉐와의 어마어마한 격차를 벌리며 선두로 치고 나가기 시작한다.
제 아무리 포르쉐라 하더라도, 이 어마어마한 시간의 격차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R380은 다른 대기업들의 차를 무려 3바퀴 차이나 따돌리는 독주 끝에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한다.
66년 일본 그랑프리의 우승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프린스는 이후 닛산으로 인수된다.
닛산은 프린스의 사원과 자동차 라인업까지 그대로 승계하면서 비록 프린스라는 이름은 사라졌어도
프린스의 열정의 결과물이었던 스카이라인은 닛산의 이름을 달고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후 닛산은 1969년 프린스 R380에 달렸던 GR-8 엔진을 양산형으로 개량하여
3세대 스카이라인이자 첫 번째 고성능 스카이라인인 '스카이라인 GT-R'을 출시한다.
포르쉐를 꺾은 기술력의 응집체인 스카이라인 GT-R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1972년 마쯔다의 RX-3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레이싱 통산 무려 49연승, 총 50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스카이라인 GT-R은 '불패신화'라는 전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1973년,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스카이라인 GT-R의 계보는 끊기게 된다.
아무도 막을 수 없던 전설은 규제의 틀 속에서 허망하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러다 1989년, 닛산은 스카이라인 8세대의 고성능 트림인 '스카이라인 GT-R R32'를 출시하는데,
이후 GT-R의 계보는 쭉 이어져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스카이라인 GT-R은 명실상부 일본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카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카로 인정받고 있다.
포르쉐는 딱히 인정하지 않고 피하려는 눈치지만, 여전히 스카이라인 GT-R이 노리는 상대는 포르쉐다.
비록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둘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지만,
이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끝나려면 아직도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닛산v포르쉐' 영화가 나오지 않은 것도 이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나저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하루라도 더 빨리 포드v페라리를 보고 싶은 심정이다.
-FIN-
글쓴이-쉐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