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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mzi Jun 28. 2023

우울증 중독

대학을 휴학하기 전, 마음은 텅 비어있고 늪에 빠져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 같던 그때, 공부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어두운 분위기의 공부용 asmr을 들으며 책상에 앉아있던 때가 많았다. 그런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는 나에게 언제나 위로가 되었었다.


생각해보니 우울증에 벗어나곤 그런 피폐한 분위기의 asmr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았는데, 왠지 도시의 어두운 분위기가 나는 하루키 무라카미의 1Q84라는 소설을 펼쳐보니 다시 한번 그런 분위기를 소리로도 느끼고 싶어 져 이어폰을 꼽았다. 원래는 위로를 위한 asmr으로 서울의 차갑고 지치는 그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위로가 되긴커녕, 정말 오랜만에 다시 우울증이 어땠는지 감회 하게 해 주었다.


어쩌면 다시 저 asmr을 듣게 된 것이 과거에 겪었던 우울 중독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울증을 언제부터 겪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3학년쯤 때부터였던 것은 확실하다. 명문 대학 합격이라는 평생 안고 있던 목표가 달성되고서부터 (지금 생각하면 왜 저딴 목표를 세웠는지 싶다) 목표가 사라지자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평생 지각도 안 하던 나는 지각과 결석을 일삼았다. 계획을 세워서 시험공부는 벼락치기와 교체되었다. 물론 그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 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 싶었다.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갔을 땐, 고3부터 스며든 나쁜 습관들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놨다는 것이 느껴졌다. 대학에 왔다고 확실한 목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악화된 정신상태는 안개가 낀듯했고, 그런 상태로는 공부에 집중도 못했다. 후엔 매일 술로 절어서 수업도 약 한 달 후엔 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학기 말에 F를 두 개 받았다. 2학기 땐 조금 정신을 차리고 술도 멀리하며 F는 면했지만, 고등학교 때의 높은 성적과는 비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진 2학년 때, 나는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 알바와 공부를 같이하게 되었다. 시험기간만 되면 돈이 없다고 오는 엄마의 전화와 필요한 것을 충족하지 못하는 삶에 지쳤다. 술 때문에 무너진 건강은 공부와 알바를 둘 다 뒷받침하지 못해 몸살과 불면증으로 하루하루를 지새웠다. 이때부터는 우울증이라 말할 수 있나 싶다. 24시간 동안 내가 느끼는 것은 아픈 감정보다 마음이 텅 비고 늪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는 까만색 구멍이 된 감정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서 몇 걸음만 가면 있는 화장실에 가기 힘들어 소변을 몇 시간 동안 참았다. 밥은 대부분 술 먹을 때 빼고 먹지 않았다. 식욕은 원래 엄청 왕성한 편인데 냉동실에 있는 냉동 망고를 몇 개 꺼내먹을 때도 있었다. 약속이 없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때 놓고 싶지 않았던 감정 중 하나는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물을 조금이나마 흘리게 하는 우울감뿐이었다. 이 감정이 내가 혼자 있을 때 살아가게 해 준 것 같다. 텅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우울감이 가장 극적인 감정이었다.


우울감은 항상 늦저녁부터 새벽 중에 찾아왔던 것 같다. 그 아픈 감정을 즐겼다. 특히나 여름에 베란다에서 바람을 맞으며 이 감정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 감정을 느끼기 위해 나도 모르게 나를 더욱 절벽으로 내몰았던 것 같다. 더 우울할 방법, 그것을 내 무의식이 쫓아가 내 행동을 바꿨다 (물론 무기력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렇게 된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더욱 나락으로 떨어져 나는 2학년 마지막 학기에는 시험도 보러 가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 이해가 안 가지만 죽어도 시험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마지막 학기의 결과는 하나같이 모두 F였다.


내가 이 우울감 중독에서 벗어난 지 정말 얼마 안 됐다. 약 한-두 달이 된듯하다. 어느 선가부터 텅 빈 그 느낌이 잦아들었고, 운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할 기회를 움켜쥐자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오늘 빼고 말이다.


우울증의 기억이 얽혀있어 다시 우울증을 유발한 것이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혹은 술을 마실 때 담배가 더욱 당기는 것처럼 우울증을 느낄 때 했던 행동을 다시 하다 보니 다시 우울감이 느껴졌고 나의 무의식은 그것을 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해를 왜 하는지 조금은 더 이해가 된다.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 본성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이지만 그들에게는 위로가 될 일인 것 같다. 내가 우울증에 중독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 것, 외롭고 혼자라고 생각 드는 나에겐 그중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우울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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