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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Aug 28. 2023

폼나는 '결심러'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책 리뷰> 러셀 로버츠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꽤 오래전이다.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은 tv프로그램 중에 'tv인생극장'이라는 게 있었다. 어떤 결정의 갈림길에서 두 가지의 선택지를 보여주고 어느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포맷이었고. 기억하기로는 이 선택지를 위해 외치는 주문이 바로 '그래! 결심했어'였다. 어떤 길로 걸어가든, 앞으로 어떤 생을 살게 되든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결심'에 의해서만 이뤄진다는 유의미한 가르침을 준 프로그램으로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프로그램의 성격 상 다소 희화화될 때도 있었지만 '그래, 결심했어'라는 주문만큼은 그 어떤 순간에도 생을 허투루 살지 않아야 한다는, 그리고 결심을 하고 경험을 해보기 전까지는 어떤 결심이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를 모른다는 교훈을 던져주기도 했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수많은 '결심'의 순간을 맞게 된다. '10분만 더 자고 일어날지 아니면 그냥 일어날지' 같은 작은 결심에서부터 업무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중차대한 순간까지, 그 결심은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늘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곤 한다. 축적된 경험치가 있고 실패의 순간이 각인돼 있어 동일한 실수를 할까 두려워하면서도, 왜 우리는 결심의 순간이 오면 여지없이 갈등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우매한 인간 이어서일까.


가끔은 이런 '결심'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려주거나, 조금 더 멋진 결심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으신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적어도 왜 우리가 뼘이라도 더 나은 결론에 다다르는 결심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될 테니.

세계사 신간/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저자 '러셀 로버츠'는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석학이다. 해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면 그의 학문적 배경을 기본적으로 신뢰하며 아주 약간은 지루해질 수도 있는 문법을 자박자박 잘 따라가야만 한다. 내 경우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의 제목처럼 '결심'이 필요한 순간을 맞닥뜨리곤 했으니까 말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지루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인내심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묵묵한 얼굴의 인내심.


책이 표방하고 있는 '망설이고 주저하지만 자기의 길을 걷고 싶은 지구여행자들을 위한 인생사용 설명서'라는 주제는 이 책의 곳곳에서 친절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령 수치화된 개념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자답게

p20' 답이 없는 어려운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측정하려고 노력하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최선을 다해 계량해 보는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한마디로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가늠자나 저울로 눈앞에 놓인 상황을 이리저리 재보고 무게도 달아보라는 것이다.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바는 이렇게 책 속의 전 문장들을 통해 일관성 있게 독자들을 설득해 나간다. 자! 책을 펼치는 순간, 인간은 '불확실성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결심의 근원을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숙제를 우리는 작가로부터 받아 들게 된다.


이에 저자는 좀 더 공신력 있고 흥미로울만한 소재들을 가져와 독자들을 자신의 논리에 조금씩 몰입시키려고 하는데, 그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실마리로  선택한 것이 '다윈의 딜레마'인 것도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내도 쉬 결심을 세울 수 없는 '결혼'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서른 살의 다윈을 떠올려보라. 아니 꼭 다윈이 아니면 어떤가.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아니면 싱글의 삶을 마지막까지 영위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한 번쯤 해보게 되는 고민으로부터 그것도 다윈이라는 대 학자의 프레임을 씌워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 결혼에 관한 딜레마는 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좋은 결심'은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는 그야말로 결정적인 '키워드'가 된다.


다윈이 결혼을 놓고 고민한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보는 순간, 왜 답이 없는 문제들은 측정을 거부하는지, 왜 인간은 운명의 볼모가 되지 않기 위해 늘 측정하고 비교하며 사안들을 견주게 되는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의 지점은 삶이 단순하지 않기에 늘 결정의 문턱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충분히 설명해주기도 한다.


저자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서도 우리는 이 사람이 휴머니즘의 정점에 있는 경제학자라는 걸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책의 곳곳에 포진해 있는 문장들이 하마터면 딱딱해질 수 있는 논조를 말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p88-'우리는 삶의 쾌락을 즐긴다. 고통은 피하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루하루 느끼는 쾌락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싶다면 소박한 만족을 한 번 떠올려보라'


p94-'우리는 어려움을 무릅쓰기 좋아한다. 사람들이 시를 쓰고 전쟁이 났는데 군에 입대하고,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곳을 산이 거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르고, 마라톤을 뛰고, 보수도 받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p121-'번쩍이고 밝은 길이 더 유혹적이다. 더 좋은 길은 그림자에 가려 있고 기억하기 어렵다'


p142-'어떤 인생문제들은 정답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실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다. 인생이란 지도 없이 지구를 행군하는 여행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장을 장식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문장, 궁극적으로 매 순간 결심의 기로에 서는 우리들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음속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하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답을 구하려 하지 말라.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어느 먼 미래에 자신도 모르게 당신은 그 답을 살고 있을 것이다.' 같은 문장들. 참 좋지 않은가.


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문장들이 곳곳에서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을 주저하게 만든다. '결혼'의 역설이 반복되고 다른 형태로 변주돼 챕터가 늘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어쩌면 저자는 이런 빛나는 문장들을 요소요소에 숨겨 놓고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은 아닐까 싶다. 그걸 노린 것이 맞다면 꽤나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음 직한, 혹은 품고 있는 사실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떤 명쾌한 해답보다는 방향만을 제시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로 문장수집을 즐겨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은 마치 전인미답의 탐사동굴 같다고나 할까. 그만큼 밑줄이 자연스레 그어지는 문장이 많다.


다만 책의 부제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이라는 데 착안해 너무 거기에 매몰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제시할 수도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많은 경험들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저 여러 갈래 길에서 차마 결심이 서지 않을 때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올바른 질문과 현명한 대답.' 그것의 반복이야말로 우리의 결심을 빛나게 할 자원이라는 걸 누구나 책을 덮을 때쯤엔 자연스레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전체를 통해 내게 가장 와닿았던 문장을 꼽으라면 단연 p175 상단에 자리한 문장이었다. 곱씹고 다시 곱씹어도 참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인생의 항해 중 방향키를 어디로 둬야 하는지 알려주는 문장인데 결심의 정수와도 닿아 있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소개해볼까 한다.


'삶이라는 합창단에서 디바가 되지 말라. 목소리를 낮추고 하모니를 즐기라. 삶이라는 댄스 플로어에서 남들이 춤출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라. 파트너가 빛나게 하라. 다 함께 하는 여행에서 주위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라.'


어떤가, 당신에게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가?


"그래, 결심했어! 러셀 로버츠의 말처럼 움츠리지 않고, 꽃 피우며, 삶의 여정을 통해 성장하고 내 안의 불길을 열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그래서 내 인생을 돌아볼 때 의미 있는 삶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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