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우진 May 12. 2023

전주와 영화와 글자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유람기

2023년 4월 30일부터 5월 1일까지...

너무 즐거워서 뭐라도 쓰고 싶어졌다.

내친김에 미루고 미루던 브런치 작가 신청까지 하기로 한다.

만일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합격되었다는 말씀.


시작; 어떤 포스터의 디자인

http://100films100posters.com

전주국제영화제의 100Films100posters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100편의 영화와 100명의 디자이너를 매칭하여 100장의 포스터를 만드는 기획으로 나는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운좋게 흥미로운 영화를 만나 즐겁게 작업했다. (늘 찾아헤매는) ‘새로운 느낌’까지 받았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사람은 관점이 줄면 늙는다. 관점은 새로운 느낌에서 생긴다. 그러니 새로운 느낌은 정서적 노화의 우물에서 나를 건져주는 동아줄이다. 새로운 디자인을 하려면 내부저항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새로운 느낌을 따라가면 엄마 손을 잡고 걷듯 아장아장 즐겁다. 작업 후기를 이렇게 남겼다.

100films100posters는 디자이너가 영화를 골라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다. 흥미로웠다. 선택에 앞서 제공받은 정보는 가벼운 시놉시스, 장르, 감독의 이름, 국적 정도였다. ‘사쿠라이 쇼지씨의 어떤 기념일’을 골랐다. 감독은 재일교포, 장르는 다큐멘터리였다. 궁금했다. 며칠 뒤 영화제측에서 공유해 주신 링크로 영화를 봤다. 도입부터 꾸준히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투명한 느낌의 다큐멘터리는 처음이다. 이걸 포스터로 어떻게 만들지? 결정한 것은 ‘내 손으로 그릴 것’이었다.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썼지만 펜과 지우개 기능만 썼다. 상당량의 디자인 방법론을 버리고 기본만 남긴 셈이다. 영화의 ‘투명함’에 걸맞은 방법이었다. 유리 화면 위를 지나는 플라스틱 펜촉이 너무 미끌거려, 작업하는 내내 얼음 위에서 뒤뚱거리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 주체할 수 없는 느낌은 붓을 다룰 때와 닮았다. 세상 내 맘대로 되는 일 하나 없어서... 즐겁고 고마웠다. 
그렇게 완성한 포스터
영화의 거리에 전시된 포스터들
 100Films100posters 전시장 풍경

디자인 과정

보통은 종이에 스케치로 시작하지만 이 포스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iPad mini + Procreate App + Apple Pencil만 썼다. 커다란 포스터를 손바닥만한 패드에 손으로 그리는 느낌이 신선했다.

측정에는 Timemator라는 앱을 쓴다

새로운 스타일로 작업할 때는 시간을 잰다. 스타일마다 비용(시간과 난이도)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업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수작업이니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도구가 좋아진 덕도 있으나 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소통과 수정이다. 혼자 하는 작업은 다양한 방법을 부담 없이 쓸 수 있어서 좋다.


영화 관람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044

1박 2일 동안 4편의 영화를 봤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역시 '비밀문자'였다. 여서(女書)라는 문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위키-여서문자에 의하면 여서는 중국 후난성 융저우시 장융현에서 쓰는 표음 음절 문자다. 사회생활 = 경제생활 = 문자생활을 하지 못했던 여성들이 여서를 전수하며 멍든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일종의 밀서였기 때문에 소수의 전승자만 있을 뿐 유물은 모두 불태워 남은 게 없다. 1983년 학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하니 여전히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자의 모양을 축약하거나 일부를 취해 표음문자로 만든 것은 신라의 구결이나 일본의 가나와 같다. 한글(특히 궁서), 가나 모두 여성이 기여한 바가 크다. 뒤집어 생각하면 여성이 한자(공식 문자)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니 여서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노래의 일부였다. 속상한 마음을 문자와 소리로 흘려보내는 예술이다. 영화 중에 여서의 전승을 위해 상업화 꿈꾸는 자들의 회의가 나온다. 다양한 상품과 연결 지어 마케팅을 하자는 의견에 '단순한 문양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한 여성의 의견이 인상 깊었다. 어떻게 결론이 났을까 궁금했다.


전주의 글자

조선왕조실록보전기적비
왼쪽 끝줄에 쓰신 분의 호와 성함이 새겨져 있다. "전면 강암송성용 후면 미산송하선"

전주 경기전 정전(全州 慶基殿 正殿)에는 '조선왕조실록보전기적비'가 있다.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는 1445년(세종 27)부터 춘추관사고, 충주사고, 성주사고, 전주사고 네 군데에 두었는데 전주사고를 빼고 모두 불탔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도 위험해지자 미리 다른 곳으로 옮긴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실록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태조 이성계의 본관인 전주에서 실록을 지켜냈으니 여러모로 뜻깊은 곳이다. 이 비석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을 모시는 경기전(慶基殿) 안의 전주사고 옆에 있다. 

가볍게 거닐다 걸음을 멈춘 이유는 비범한 글씨 때문이었다. 비문의 전면은 호남제일문의 현판을 쓴 강암 송성용(1913∼1999)의 글씨다. 옆면과 뒷면은 그의 조카인 미산 송하선(1938-)의 글씨다. 한자와 한글을 같은 서체로 섞어 쓴 글은 정말 드물기 때문에 참 고맙고 반가웠다. 우연히 멋진 글씨를 만났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자는 예서체고 한글은 고체(판본체)다. 한자의 전서나 예서는 고전, 권위를 상징한다. 현대, 삼성, 금성(LG)처럼 오래된 기업의 로고타입도 예서였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남부시장에 가다가 풍남문을 봤다. 전라감영(전라도 도청소재지)의 남문으로 현판에서 옹골찬 기운이 풍긴다. 1842년(헌종 8)에 전라도관찰사 서기순(徐箕淳, 1791∼1854)이 쓴 것이라고 한다. 현판의 글씨를 분석할 위인은 못되지만 틈날 때마다 감상하며 새로운 느낌을 얻는다. 글자의 기분은 스스로 탐색하는 맛이다. 門자의 삐침이 어마어마하다.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가는데 빌딩 사이로 말도 안 되는 크기의 현판이 보였다. 사진으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지만 대문짝만 한 크기로 쓴 기백 있는 초서가 일품이다. 멀리서도 위상이 느껴지는 풍패지관(豊沛之館)은 전주 관아를 찾은 관리나 사신들이 묵던 객사(客舍)다. 객사는 관아 시설 중 가장 서열이 놓은 곳이라고 한다. 풍패는 한고조의 고향으로 전주 이 씨인 이성계의 본관을 비유한 말이다.


회고

즐겁게 작업했고, 적당히 고른 영화도 하나같이 좋았고, 날씨도 5월 초의 시원스레 맑음이었다. 포스터 행사에서 반가운 얼굴도 많이 만났고 향긋한 커피도 마시며 지난날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틀 동안 20km를 넘게 걸었으니 산책도 많이 했다.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한옥마을에 볼만한 글자가 많다고 한다. 순간 아쉬웠으나 그것까지 봤다면 아마도 소화하지 못한 채 게워냈을 거다. 내년 초에 공사 중인 어진박물관도 개장한다니 다시 와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