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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 Aug 23. 2019

무면목/태공망전,모로호시 다이지로

상당히 제 취향인 만화입니다

요재지이, 동양 신화, 기담집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

그림체가 미형이 아니라도 읽을 수 있는 사람

실제 역사에 상상력을 불어넣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

에게 추천합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라는 만화가는,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평가한다고 해도 메이저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그렇습니다. 심지어 무면목/태공망전은 그의 대표작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마이너합니다. 하지만 어떤 책이 마이너하다고,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항상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무면목/태공망전 속 이야기는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적절하게 가미되어, 만화책을 다 읽고나면 한번 다시 읽어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듭니다.


무면목/태공망전은 무면목 편, 태공망 편, 이렇게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는 서로 독립적이지만, 무면목 편은 인간이 된 신(神)의 이야기, 태공망 편은 신이 되려고 하는 인간의 이야기로써 적절한 대칭을 이룹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창조한 세상에는 주술과 기이함이 묻어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인 서유요원전이나, 혹은 제괴지이처럼, 무면목/태공망전 역시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 작가인 그가 중국을 배경으로 선택한 것이 어떤 점에서는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중국의 절경을 보자면, 아, 어쩌면 여기에는 신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이 산 어딘가에는 신선이 살고 있어도 놀랍지 않을 것만 같다


비범하지 않은 표지. 스토리도 안에 든 철학도 다 재미있는데, 단 한 가지, 그림체의 장벽이 있다는 것이 표지에서도 바로 느껴진다

책의 첫 번째 이야기인 무면목 편은 한무제 시기의 기인이었던 동방삭(삼천갑자 동방삭의 그가 맞습니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신선 세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던 동방삭은 신선과 바둑-신선이 어떤 놀이를 한다면 그것은 바둑이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을 두다, 우주의 기원에 관한 의문을 풀기 위해 태초부터 존재한 얼굴 없는 신, 무면목을 찾아갑니다. 무면목은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없는 채, 명상을 하는 위대한 신인지라 동방삭과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재담꾼으로 그려지는 동방삭은 달걀귀신같은 무면목의 얼굴에 눈과 입과 코와 귀를 그려줍니다. 

눈코입귀가 없는 무면목에게
눈코입귀를 그려 줍니다

무면목은 태초부터 존재한 신인지라 초월적인 능력을 가졌던지, 동방삭이 붓으로 그린 눈코입귀는 실체를 가지게 됩니다. 눈코입귀가 생긴 무면목은 동방삭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준 다음, 동방삭이 묘사한 인간 세상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잠깐 인간 세상 구경을 하다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신의 하강. 

그렇게 태초부터 존재하던 명상의 신, 무면목은 한무제가 다스리는 세상으로 내려갑니다. 신의 하강, 자라투스트라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니체의 이야기 속 자라투스트라처럼 무면목 역시 생로병사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목도합니다. 


처음에는 웃는 것이 무엇인지, 밥을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신이었지만, 점차 세상에서 살며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그는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절묘하게 실존 인물들(위징, 곽거병, 강충, 이광리 등등등)과 한무제 시기에 벌어졌던 무고의 변이라던가, 태자를 폐한 일 따위의 실제 역사를 그의 이야기에 활용합니다. 마치 처음부터 권력을 탐하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처럼 무면목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적극적으로 인간들의 다툼에 끼어듭니다. 장자 응제왕편의 한 일화를 바탕으로 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이야기는 이윽고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한무제. 한때 케이블 TV에서 해주던 진보국 주연의 중드를 즐겁게 보았습니다. 

한무제의 시기는 실제로도 위징, 곽거병, 사마천, 이광 등의 영웅호걸들의 시대였습니다. 동시에 한고제로부터 내려오던 도가 사상이 중앙 정치에서 서서히 쇠하고 법가와 유가 사상이 자리를 굳건히 잡는 시기입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도가의 영향을 짙게 받은 동방삭은 다만 한무제의 재담꾼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도가보다 법가와 유가를 우위에 둔 한무제는 모순적이게도, 진시황만큼이나 불로불사라던가 신선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 

이러한 시기에 지상으로 내려온 무면목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실존인물들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펴보는 것이 무면목 편의 큰 흥미요소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인 태공망 편은 한무제보다 훨씬 앞, 상-주 교체기 때의 이야기입니다. 태공망 편은 앞의 무면목 편과 철학적으로 반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무면목 편이 하강과 쇠락의 이야기였다면, 태공망 편은 강족 노예인 강상의 상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나이 70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온 태공망 강상의 젊은 시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팔괘의 창시자이자, 도가의 어른으로 모셔지는 태공망은 주문왕을 만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강력한 상나라를 무너뜨릴 능력을 갖추었나, 하는 이야기를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태공망의 낚시에 관한 일화 등을 섞어서 설명합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상나라의 인신공양이나, 주지육림 등을 도구로 활용하며, 실제 역사와 마법적인 이야기를 정말로 그럴듯하게 서로 섞어서 하나로 만듭니다.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강상. 하지만 그의 고난은 이제 시작되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그린 역경과 시행착오를 겪는 강상의 젊은 시절은 사기에 나오는 대직약굴 도고위사(大直若詘 道固委蛇)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진실되게 곧은길은 굽은 것처럼 보이며, 원래 길(혹은 도-道)이라는 것은 굽은 것이다

하는 도가적인 말이 무면목 태공망 편을 다 읽고 난 다음 떠오른 것이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되어버린 신과, 신이 되려고 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나는지, 분명 마이너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면목/태공망 편은 일독해 볼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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