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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감미 Aug 25. 2021

혼자 위로하는 아무글

뉴스아님 미니 다섯번째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에게 얼마나 '몰입'할 수 있을까. 아니, '감정이입'이라고 해야되나. 등장인물이 곧 나이고, 내가 곧 등장인물이 되는, 마치 호접몽 상태가 될 정도의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근거1) 책을 한 챕터 이상 읽지 못하고 동물의 숲을 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근거2) 공부에 몰입하다가 잘 풀린다 싶으면 자만심이 밀려와 갑자기 동물의 숲을 킨다. 그렇다. 더 얘기하단 이야기의 논지를 흐릴 듯 하니 그만 예시를 들자. 어쨌든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책에, 혹은 영화 등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고 하는 "만약 저 상황에 처했다면 난 이렇게 할 텐데"라는 생각이 과연 맞을 것이냐는 말이다.



최근 두 달 간 난 나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게 되었다. 첫째로 나는 혼자 있을 때 두려움이나 무서움 등의 감정을 크게 느낀다는 것. 오해는 말자. 혼자 있을 때 막연히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얘기가 아니다. 몇 년 전 엄마랑 차를 타고 가다가 택시와 부딪혀 크게 사고가 난 적 이 있었다. 엄마가 운전을 하고 내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는 데 엄마가 꼬리물기*를 해 우회전을 했고, 대기하던 택시가 초록불이 되자마자 급작스럽게 패달을 밟아 우리 차 오른쪽에 들이받은 것이다. 다행히(?) 뒷좌석을 들이받아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내가 가격당하진 않았지만 우리 집 차가 십자가 모양 도로 한복판에서 오른쪽으로 한 바퀴 끼이익 대며 그대로 회전했다. 창문이 깨지거나 하진 않았으나 엄마랑 나는 정말 너무 놀라서 한동안 멈춰있었다. 중간은 기억이 안나지만 택시 아저씨가 너무 태연해서 어이가 없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아무튼 엄마가 특히 심하게 놀라 떨면서 보험사에 전화를 했는데, 보험회사 아저씨가 오시자 엄마는 놀래서 말을 못하고, 내가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내 옆을 들이받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었는 지 지금 생각해보면 좀 신기하긴 하다. 그랬던 내가 최근에 별일 아닌데도 두근두근 거렸던 일이 있었다.



올해 초 내 모습은 전형적으로 완전히 복학생 버프를 받아 잔뜩 쫄아있는, 두 학년이나 내려간 유급생이었다. 그렇다. 1년 휴학..1년 유급.. 아무튼 그래서 4월 초 내 생일 주간을 신나게 보낸 직후 부터 스터디 카페 정기권을 끊어 가기 싫을 때 빼고 거의 매일 가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다들 8주차 즈음 시험이 마무리 되는데 나는 9주차에 시험이 4개나 있어서 정말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 같이 으샤으샤 하면 되는 데 남들은 노는데 나만 꾸역꾸역하는 것 같아서 놀라울 정도로 서러웠다. 그러다 주말에 억지로 몸을 끌고 카페에 앉았는데, 1시간 정도 지났었나.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금방'의 범위를 벗어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멀뚱이 앉아 있던 나는 족히 20명은 되어보이는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나서자 쭐래쭐래 따라나갔다. 새벽 1시. 어안이 벙벙한 채로 계단으로 내려오는 데 갑자기 두근거리고 괜시리 왈칵대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나왔는데 고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대고 중간에 혼자 덩그러니 놓이자 더더욱 콩닥거리고 내지도 않는 목소리가 떨리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지나도 경보기는 꺼질 기미가 안보이고 너무 새벽이라 건물 관리자 및 스카 관리자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죄다 학생들이라 우왕좌왕만 할 뿐 들어갔다 나오기만을 반복했다. 이대로 가다간 상황도 정리가 되지 않고 화재가 난 거면 정말 큰일이기에 소방서와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건물을 다 보고, 화재경보기가 오작동인 것이 확인되고 나서야 다시 학생들이 우르르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여기서 더 공부하다간 안그래도 집중이 안되는데 불안하기까지 할 듯 해 퇴실처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면서 놀란 마음을 잠재우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그제서야 왈칵 눈물이 나왔다. 서러움을 뚝뚝 흘리며 걸어가는데 새벽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고등학생들은 멀쩡하고 정작 화재도 나지 않았던 그런 별거없는 상황에 내가 무서워했고, 두근거려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부끄러워져 눈물을 쏙 집어넣었다. 나중에 가서야 지금까지 큰일이 나도 덤덤했던 것이 주변에 아는 사람, 친구 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덤덤한 줄 알았던 나 자신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또 다시 나에 대해 알게 된 일이 최근에 있었다. 물론 이걸 왜 이제 알았나 싶지만 어찌되었건 마음으로 깊숙이 깨달은 것은 최근이다. 책임감이 큰 일을 맡으면 침착하게 리더쉽을 갖고 현명해져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조급하고 불안해해서 동동거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약간,이 아닌 대놓고 스포일러를 하자면 3월부터 차근차근 친구들과 함께 독립출판물을 준비해오고 있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글을 쓰고 있는데 예전부터 독립출판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여러가지 이유가 어떤 시기와 딱 겹쳐 결심하여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 포함 22명이 모였고, 마무리 단계에 있다. 물론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나 스스로도 우왕좌왕 했을 지도 모르겠으나 초고 마감 시기이후로 몇 주간 정말로 끊임없이 다급한 기분이 들었다. 한 명 한 명 꼼꼼히 피드백을 해주고 싶은데 계속 다음 사람이 기다릴 거 같고, 피드백을 하면서도 완벽하게 해야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또 그 와중에 공통으로 체크해야 할 것, 빼먹은 공지 등이 떠올라 아무렇게나 대충 공지들을 마구마구, 시도때도 없이 올려버렸다. 추가 사항이 생기면 미안해하며 또 올리고, 마지막에 수 많은 난잡한 공지사항들을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왔다. 얼마나 정신 없을까 하고.



부끄럽지만 그동안 난 항상 내가 리더로서 출중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욕심이 많기도 했지만 (사소한 거 빼고) 결정도 단호히 잘 내리고, 역할을 나누는 것도 잘하고, 남들한테 신뢰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벌린 일에 제대로 통수를 맞았을 뿐, 돌이켜 보면 계속해서 실수와 잘못의 길을 걸어왔던 것 같다. 누군가가 용서해주는 실수는 되려 스스로 안일해져버리고, 누군가가 용납하지 않는 부분은 엄청나게 자책하면서. 이런 내 모습 또한 자신만의 신념과 스스로에 대한 줏대 없이 타인의 기준과 평가에 나의 태도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맡겨버리는 듯해 하염없이 부끄러워진다. 차라리 스스로를 최고라고 생각하던 오만한 시절이 나았을까. 예전에는 '깡'이 있다고 불려졌던 내가 점점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위축대고 소극적이게 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도 더 어려워지고,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점검하게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 쌓이면서 이제는 아예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몇 가지 사실들을 깨닫고, 내가 깨달은 바를 곱씹어보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1) 나는 힘든 상황에 닥쳤을 때 혼자 이겨내는 것을 힘들어 한다. 2) 나는 부담이 크게 느껴지는 상황에 처했을 때 침착해하지 못한다. 이걸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싫어하는 모습이니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다행스러운 기분이 느껴졌다.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냥 문제에 빠져있으면서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실망을 반복했다면 나아가지 못했을 텐데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니 이렇게만 하면 다시 멋진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니 드라마에 나오는 동경하던 주인공들은 이런 유치해보이는 생각을 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머쓱한 생각이 스치긴 한다만은. 이번주는 또 다른 도전을 하는 한 주이다. 이렇게 깨달은 바를 어떻게 내일의, 내일모레의 내가 실천할 지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그 도전 끝에 나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칭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뉴스아님 #미니 #20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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