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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a Aug 23. 2021

너와의 3년, 3일, 그리고 3주 (4)

파리, 3년 전

아는 분이 비엔나에서 지내는 감상을 공유하시자 언젠가 발행취소하고 묵혀둔 (1) 에서 (3)이 생각나 다시 글을 올렸다. 처음에 쓸 때는 비엔나 3부, 파리 3부, 뉴욕 3부로 쓸 예정이었는데 글 쓸 손가락 힘은 너무 금방 빠진다.

10년이 넘어 쓰는 파리에서의 이야기는 지금의 그 희미한 기억에서 시작한다.



파리 공항에 도착한 내 목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다시는 못 올 줄 알았던 파리를 근 1년만에 다시 찾은 기쁨과 곧 다시 만날 친구들 때문에 며칠 휴가를 내 예정보다 이른 도착을 했다. 파도처럼 쏟아지는 관광객 사이에서 나는 왠지 제 2의 집으로 간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건 그 직전에 내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의 공포와는 정반대였다. 무엇보다 나는 프랑스인들/유럽인들 등쌀에 치이며 졸아들던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 1년만에 회사 초청으로 파리에 다시 온, 이제는 누구나가 아는 회사에 근무하는 대졸 직장인이었다. 중2병과 본질적으로는 같은 그 감상이다만 즐기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고작 1주일 있을 거면서 예전에 쓰던 휴대전화까지 가져와서 번호를 살렸다.


프랑스 시골의 가정식, 예전에 파리에서 살던 집과 같이 지내던 가족.. 그리고 라데팡스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유럽에 온다고 잔뜩 기대에 부푼 미국인들 한 무더기와 (1), 여남불문 존재감 대박인 이탈리아인들 (2), 덤덤한 다른 유럽인들 (3), 그리고 몇 되지 않는 + 대부분 홍콩 출신인 아시아인들이 (4) 있었다. 가장 똑똑해 보이는 아이들은 거긴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듯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그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의 정체를 알게 됐다 - 낙서 및 잡담.


비행기를 타면 꼭 양 팔걸이를 자기 것인양 쓰는 사람이 있다. 재수없다. 양쪽에 그런 미국인 남성 둘이 앉은 어느 날이었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1)과 (4)가 혼재한 그룹으로 파리 시내의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 그룹 활동을 하면서 자리를 바꿨는데 오른쪽의 팔걸이남과 또 같이 앉게 됐다. 무수한 낙서로 오후 시간을 이어가던 우리의 필담은 여기서 끝이 났다. 

"오늘 저녁엔 뭐해?"

- "저기 앞에 앉은 프랑스 애가 자기 대학 친구들이랑 밥 같이 먹자고 해서 시내 감"

"아 :( "

- "일찍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너네들 그때까지 밖에 있으면 연락해"


나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던, 음식과 대화 모두가 마법같았던 저녁이었다. 누구를 데려가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어떤 얘기도 흥미로워지는 자리였고, 가장 좋았던 부분은 청춘의 무게를 생면부지의 사람과도 진하게 나눌 수 있었던 공감대였다. 헤어질 때 날리던 볼키스는 모두의 술기운이 묻어 팡팡 터지는 별같이 느껴졌다. 전화기에 찍혀 있던 두 통의 부재중 전화는 호텔 로비에서야 발견했다. 호텔 전화기가 으레 그렇듯 방에서 걸어서 추적이 불가능한 대표번호였다. 당연히 리셉션에서도 누가 걸었는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회사전화기가 지급되지 않았으니 호텔 전화기를 쓴 건 현지 번호가 없는 미국인일테다. 누군지 알 것 같았고, 밤 11시가 가까워오던 그 시각 난 그 '누구'의 방 번호로 전화를 걸까 10분 정도 고민했다. 그런데 아니면 어떡해, 이미 시간이 지나 자고 있는거면 민폐 아닌가. 아니면 호텔에서 다른 일로 걸었을 수도 있지 않나.


너무 궁금했지만 이렇게 멀리 와서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내게 이 정도 미스터리 하나는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다음날이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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