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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a Aug 22. 2019

1863년 파리 살롱과 2014년 서울

카바넬과 마네

2014년 6월 5일

최근 미술비평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동기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릴 때 조금이라도 많이 보여주려 하셨고,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많이 유착돼있는 작품들을 만들어주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나는 아직 심미안도 식견도 없지만 세계 어디를 가든 미술관이 지루하지 않다고 느낄 정도의 art kiddo는 됐으면 좋겠고 그 정도로도 나의 예술인생은 충분하지 않을까 위안해본다.


2009년 미술사학과 전공수업을 청강하던 중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여러 사이트에 흩어져있던 내 발자취를 모으던 중 발견해 여기 붙일 생각을 하게 됐는데, 비단 미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갈 방향을 크게 고민하게 해서 지금 써도 좋을 것 같았다.


어릴 때, 집에 있는 명화 전집 중 (설명은 안 읽고)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는 것들만 내 방으로 가져와 잔뜩 쌓아뒀었는데 카바넬의 그림은 '누드화' 편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도 아름다운 비너스의 모습에 대조되는 천사들의 사악한(!) 눈빛은 어린 시절 경외심의 원천 그 자체였다. 저 중간 갈색머리 천사는 세부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예나 지금이나 반듯하고 깨끗한 그림을 좋아하는지라, 실제와 비슷하게 그린 예쁜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집착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불행하게도, 이 그림은 수업에서 연구 대상은 아니었고, 단지 마네가 살롱에서 낙선하고  '풀밭 위의 식사'를 그린 그 해 살롱 전의 당선작으로 소개되었다. 당시에 엄청난 찬탄을 받았지만 우리는 오늘날 카바넬보다 마네의 그림이 더 의미있다고 평가한다. 붓터치가 더 섬세하거나 주제가 더 적합하다는, 그림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법한 상식적인 이유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행동과 그를 표현한 그림들을 사조 몇 개로 뭉뚱그리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대를 따라 급격히 변하는 화풍을 보면 사조로 정의된 그림들이 인간 삶의 알 수 없는 부분을 꼭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초라한 사람들의 현실을 그린 사실주의 그림들이 등장했을 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의 신고전풍의 그림을 그렸을 어떤 (이름묻힌) 화가들 생각이 난다. 당시에는 찬탄을 받았을지언정 지금은....? 크게 소개되는 밀레, 쿠르베의 그림들에 비해, 혹은 자세히 연구되는 마네에 비해 그들은 '섬세하고 정확하다'는 한 마디로 졸아들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에 머물러 있는 인간에게 후대는 무관심하거나, 때로는 가혹하다. 지금 좋은 것이 100년 후에도 좋은 것일지 알기 위해서는 무지막지하게 동그란 눈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고요하고 우아하기만 할 것 같은 미술사를 조금 '제대로' 배우면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에 안주하지 않는 자신'이 되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하면 좋을지 매우 궁금하다. 내가 100년 후에 지금을 돌이켜 볼 순 없겠지만, 그 때 회고조로 바라보지 않으면 모를 것들을 지금 알고 싶다. 아님, 짐작으로라도 때려맞혀서 좀 보람있게 살고 싶다.


Wikipedia에 Cabanel그림 설명에 붙어 있던 한 마디.재미있어서 가져와봤다. 정말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인 듯 Cabanel's erotic imagery, cloaked in historicism, appealed to the propriety of the higher levels of society. Cabanel was a determined opponent of the Impressionists, especially Édouard Manet, although the refusal of the academic establishment to realize the importance of new ideas and sources of inspiration would eventually prove to be the undoing of the Academy




미술비평 수업을 왜 듣고 싶냐는 말에 나는 "취향을 차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나는 취향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입어서인지 아직도 내가 이러저러하다는 이유로 남을 이러저러하다고 이야기하는데에 너무도 조심스럽다. 비평가란, 작가의 취향과 본인의 취향과 관객의 취향과 (비평론)독자의 취향을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다루어야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부분에 있어 조금 더 능숙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미술사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된다면 그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강사분이 첫 시간부터 다룬 내용은 "좋은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였다. 긴 시간을 두고 변해온 예술에 대한 관점 차이에 대해 들으면서 , 2009년 어느 봄날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그 후로부터 몇 년 뒤, 나는 그 시대에 제일 잘나가는 직업에 관심이 있었고 큰 은혜를 입어 원하던 곳에 발을 딛게 되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내 인생의 undoing이었다는 것이 곧 밝혀졌고 나는 이런저런 상처와 씁쓸한 기억만을 안고 그 세계를 떠났다. 그 업종이 마네인지 카바넬인지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의 후대가 판단해줄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없는 끝자락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지. 그냥 어떤 길을 내가 버렸다는 사실에 대해 합리화를 하는 것인지. 카바넬로 살든 마네로 살든 모두가 의미있는 삶일테다. 단지, 방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선이 있고 옳은 것이 있다면 거기에 좀 더 가까운 선택을 하면 좋겠다 앞으로는.



2114년에야 그 객관적인 의미가 조금씩 밝혀질 2014년의 서울은 그래서인지 외롭고 갑갑하고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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