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건 내가 파리에서 처음 만나, 뉴욕에서 좋아했고 비엔나에서 끝낸 기묘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2014년에 기획한 나름의 시리즈였다. 알고 지냈던 3년 동안 (당시 기준으로) 누구보다 내 삶을 많이 바꾸었던 어떤 친구의 이야기이다.
실제 시간 순서는 파리+뉴욕, 그 사이의 시간 3년, 비엔나(3일)와 그 후의 3주로 이어지지만 비엔나 여행을 마치고 시작한 글이라 3일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비엔나 얘기를 겨우 마치고 파리로 갔던 순간 글 쓸 힘을 잃어버렸는데, 그게 2014년이다. 이 기회에 마무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2014년 3월의 이야기 (2014년 7월 작성)
Auf Wiedersehen, 내가 말했다.
No...... 그가 말했다.
다시 내가 말했다. I mean, literally, auf Wiedersehen.
Auf Wiedersehen은 프랑스어의 Au revoir처럼 "다시 만날 때(까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When will I see you again?
나는 쓴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3년 전에도 똑같이 했던 말이었다.
You will see me when I see you.
그리고 나는 오전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비엔나 공항으로 향했다.
지겨운 기억 끝에 달콤하게 재회했으나 결국은 돌아서야 했던 허망한 인연에 관한 이 이야기를 언젠가는 글로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구상이 잘 되지 않았다. 진짜 지긋지긋한 인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로 사람들이 꼽을 법한 세 군데에서 만났다. 파리, 뉴욕, 비엔나.
뉴욕 이후 3년 만에 그를 만난 곳이 비엔나였다. 비엔나에서의 3일 후 우리는 좀 더 긴 미래를 기약할 수 있으려나 했지만 그 믿음은 3주 만에 깨져버렸다. 삶에서 결국 중요한 세 가지는 how much you loved, how gently you lived, and how gracefully you let go of things not meant for you라고 했나. 앞의 두 가지는 모르겠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을 미련 없이 보냈다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이 생겼다. 덤으로, 그저 내 인생을 수놓을 어떤 이야깃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올해 2-3월, 나는 출장 차 헬싱키에 있었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그가 일하던 곳 근처로 가게 된 것이었기에 연락을 했다. 둘 다 유치한 사람들인 데다, 마침 날도 많이 추워 노르웨이 트롬쇠나 북부 스웨덴 어딘가에서 무모한 캠핑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말은 말뿐이었고, 아무도 비행기표를 사지 않았다. 서로 일에 바쁘고 지쳐서 잡담조차 시들해질 무렵, 내가 대뜸 던졌다.
"이런 얘기들, 혹시 오해는 하지 마. 우리는 그냥 친구잖아"
"아니, 넌 친구도 아니야. 우리는 그냥 전 직장 동료 (former coworker)라고 하자"
우리는 솔직한 사람들이었다. 좀 더 어릴 때 만났기에 때로는 f-word까지 써가며 서로를 격하게 놀려대고, 화가 나면 문제의 끝까지 뒤집어보고 두들겨 패서 풀었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예의를 차리기 위해 삼갔을 말도 마구 던져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게 이 친구와의 장점이라면, 그 뒤에 날아오는 무정제 무표백 돌직구를 감당하는 일도 완전히 내 몫으로 남겨진다는 것은 그 장점의 씁쓸한 반대급부였다. 어찌 되었든 적어도 피곤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가면 뒤에 숨어 할말을 고민하게 하고 심지어는 어떤 가면을 선택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남의 눈치를 보게 만들지 않는가. 저 정도의 직구는 한국에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치팅 (cheating) 변화구에 비해 훨씬 쉽고 재미있었다.
헬싱키를 떠나기 2주 전, 나는 엄청난 무력감에 지쳐 지챗을 열었다.
"야 나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주말엔 여기를 탈출해야겠어."
그는 비엔나에 출장을 와 있다고 했다. 주말엔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으니 와서 산책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3월 하순의 헬싱키 거리에는 여전히 눈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따뜻한 곳으로 떠난다는 사람들이 즐비했고 (핀란드에서 주말에 일정이 있는 대부분들의 동료들이 그러하듯) 나도 위켄더를 둘러메고 2시 반쯤 몰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친구가 특별히 부탁한 토베얀센 100주년 기념 스페셜 무민(Moomin) 인형이 가방에 잘 있나 확인했다. (그리고 혀를 끌끌 찼다. '그 나이에 무민이라니.... 유치한 녀석')
유럽에 여러 번 들렀지만 유달리 독일어권 국가와는 인연이 없어서, 오스트리아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볼 때도, 남들이 예쁘네 예쁘네 하고 찍은 사진을 볼 때도, 내가 언젠가 그 도시에 갈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비엔나에 간다는 사실 때문에 들뜨지도 않았다. 도심까지 17분 만에 간다는 공항열차가 기어이 연착에 기계 오작동으로 1시간 뒤에야 출발하자 나는 (비싼 전화요금에 이를 갈면서도) 전화를 걸었다. 미안 늦을 거 같아, 괜찮아, 그래 이따 봐, 응.
독일어답게 e가 4-5개는 들어가고 무척이나 이름이 긴 호텔에 도착했다. 헬싱키 공항에서부터 고민했던 주제가 갑자기 현실이 되어 나를 덮쳤다. 어떻게 인사를 할 것인가--처음 만난 파리에서처럼 양 뺨에 키스를 해야 하나, 미국식으로 가볍게 안아야 하나, 아니면 과거의 흑역사를 반영하여 그냥 악수만 하고 사무적으로 행동해야 하나.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고, 뭘 생각하기도 전에 눈이 마주쳤다. 너무 어색해서 가장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인사를 했다.
2번 가볍게 껴안기. 눈 마주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