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온 지 딱 1년이다.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곧장 한국에 돌아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정확하게 2년이 지나니 다시 해외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더라. 그 간절함이 커져 독하게 앞만 보고 준비한 결과 홍콩 이직에 성공했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홍콩인데 (실제로 오퍼를 받았을 때 너무 행복해서 방방 뛰며 눈물을 흘렀을 정도) 참 희한하게도 20대 초반의 에너지가 아니어서일까. 새로운 모임에 나가는 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혼자 밥 해 먹고 치우는 일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퇴근 후 집에 들어왔을 때 반겨주는 이가 없다는 게 굉장히 쓸쓸하다는 것을 매일 같이 느끼는 중이다. 나라는 사람이 안정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타지 살이를 다시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홍콩에 와서 배운 게 뭘까. 당연히 이 곳이 주는 기쁨도, 장점도 확실하다.
우선 한국에 비해 working culture 가 확연히 낫다. 저녁 7시 이후 퇴근한 게 손에 꼽고 주말엔 회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업무 특성상 클라이언트와 술을 마시는 일도 간혹 생기는데, 한국에선 월요일 밤 11시에 대기업 부장님들과 양미옥에서 소주 달리고 있었더라면 이 곳에선 깔끔하게 happy hour 하고 귀가한다. 지난 11개월 동안 클라이언트랑 술 마신 횟수도 5-6회 정도이다.
휴가가 자유롭다. 나는 공휴일에도 출근을 하는데 그 대신 그만큼의 보상을 받기 때문에 1년에 약 30일은 쉰다. 실제로 홍콩으로 옮겨온 이후 여행도 많이 다녔고 (홍콩이 동남아 여행하기 최적의 위치인 것도 한몫) 내가 쉬고 싶을 때 길게 쉬어도 전혀 눈치 안 보인다. 근데 생각해보면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인천공항을 매달 들락거렸던 것 같긴 하네. 아무쪼록 올해만 해도 치앙마이, 대만, 방콕, 포르투갈, 스페인을 다녀왔는데 연말에 2주 정도 한국에 가서 푹 쉴 예정이다. 이렇게 많이 쉬는데도 가끔 보스가 제발 휴가 좀 쓰란다... 어메이징.
제일 큰 장점일지도 모르겠는 pay. 한국에 비해 income tax 가 현저히 낮고 (최대 ~15% 떼이는 듯) 주관적인 기준으론 연봉 자체도 높다. 세후 금액으로 따지면 작년 이맘때 한국에서 받던 거에 비해 베이스가 대략 200% 뛰었으니... 말 다했다.
계속해서 커리어 관련 장점만 떠오르는데 덧 붙이자면 홍콩이 서울보다 '큰 물' 인건 부정할 수 없다. Regional hub 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고 서울에 있었더라면 말 한마디 섞지 못했을 MD 들이 내 뒷자리에 앉아있으니 한 없이 어려웠던 그들이 매일 농담 따먹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도 네트워킹 측면에선 너무나 훌륭하다. 그리고 회사 입장에선 당연히 눈에 보이는 애들부터 챙기기 마련. 홍콩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주니어들보단 더 recognize 받는 것 같다. 툭 까놓고 말해 금융업계에선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도 쉽게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자리이고, 그래서 entry 자체도 치열하고 힘들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뒤처지기 싫어 하루하루 더 잘하려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긴다. 이번에 써머 인턴들 보니 20명 중에 5명 오퍼 받았더라..
마지막으로 직구하기 너무 좋다. 하하... 난 옷부터 시작해서 샴푸까지 직구에 의존하는 사람이라 홍콩은 관세가 안 붙는 게 나에게는 아주 큰 장점이다.
다음 글엔 단점들에 대해 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