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디강 Cindy Kang Jul 20. 2022

왜 저를 그렇게 만지작 거리세요?

아시안을 향한 은은~한 인종차별

어젯밤 꿈을 한바탕 꾸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났다. 어제 차가운 겨울빛의 그림을 그리다가 보니 작년 겨울이 떠올랐다. 작년 겨울 한창 오미크론이 미국을 강타했을 때, 집에만 콕 박혀 지내다가 처음 나간 결혼식 나들이에서 나도 오미크론에 걸려버렸다. 다들 가볍게 지나간다더니 나는 제대로 고생하고 연말연초 약속을 모두 건너뛰고 집에 누워 있었다.


뉴욕 업스테이트에서의 결혼식, 주변 사람 중 결혼한 사람이 없다 보니 이게 첫 결혼식 방문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C와 깔맞춤을 하고 사진을 열심히도 찍어댔다. 평소에 입을 일이 전혀 없는 옷을 입고, 조명도 온도도 음악도 모든 게 완벽한 공간에 가니 그저 기분이 너무 좋았다. 




C의 첫 친구(first friend, 어린 시절 친구)의 결혼식이다 보니 C와 한참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아저씨 아주머니분들이 많이 오셨다. 다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느라 나는 곁에 서서 대화에 참여하진 못하고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쑥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악수? 아니면 뭐를 떨어뜨려서 주우라고 부르는 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의 속도에 맞추지도 못하고 손은 갑자기 더 훅 들어와서 내 손을 붙잡았다. 번쩍거리는 장신구를 두르고 있는 우아한 분위기의 백인 여성이었다. 내 손을 요리조리 만지고 굴려가면서(?) 내 손톱을 만지작 거리는 여성. 그날 결혼식을 위해서 손톱에 파츠를 얹고 갔는데,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갑자기 내 손을 휙 가져가 버리더니 한참을 만지작 거리는 거다. 


중고등학교 시절 겪은 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런 상황이 오면 "엑스큐즈메!" 외쳐대리라 했지만 난 또 굳어버렸다. C도 그제야 그걸 보더니 엇-하고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슬쩍 손을 빼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여자는 나에게 "큣 네일."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는 "네가 내 손톱도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라고 더했다.


기분이 더러운 건지 괜찮은 건지 모르는 상태로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결혼식을 잘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자고 다음날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던 그때, 그때가 되어서야 아 잠깐- 하고 깨달았다. 


바로 내가 기분이 요상하다고 느끼는 데 이게 기분 나빠도 되는 일일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나에게 화가 났다. 애초에 내가 나는 남에게 절대 하지 않을 일인데 말이다. 누군지 전혀 모르는 남 말이다. 누군가의 손을 내가 직접 뻗어서 가져온다? 그리고는 손톱을 만지작만지작 조물조물... 할머니가 반가운 손주에게 할 때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내 자식의 자식, 그런 소중하고 귀여운 아가 같은 존재에게 하는 굉장히 친근한 표현이 아닌가?


손톱을 만지작 대던 이 여성은 이어서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뷰티풀 헤어" 라며 칭찬했다. 그리고 윙크했다. 아니, 저기요 지금 뭐하시는 건지. 






아시안을 대하는 데 조심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굵직한 것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런 은은하게 냄새나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다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혼나고 넘어갈 생각인지 대화가 많이 되고 있지 않다. 


단순하게 칭찬받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남의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만지는 것처럼 사람을 강아지로 보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내가 똑같은 행동을 했으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갑자기 내가 손을 뻗어 구불구불 금발 언니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손톱을 만지면서 너무 예쁘네요-하면 어땠을까?


물론 차별임을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은 대상을 맞바꿨을 때 의미나 느낌이 바뀌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근데 몇몇 상황은 하나는 곧바로 차별을 알아차리지만 다른 하나는 "좀 익숙하지 않은 거지 괜찮은데?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건 더 큰 문제다. 같은 문제에 누군가는 왜 익숙하고, 누군 왜 익숙하지 않은 건지 생각해봐야 한다. 왜 금발 언니는 남에게 손을 뻗는 게 익숙한데 나는 아닐까? 왜 금발 언니는 머리카락 칭찬을 받는데 땡큐 하고 넘어갈 일이라 생각하고 동양인인 나는 그게 아닐까?






C와 이야기하면서 동양인은 백인이 키우는 강아지만큼의 취급을 못 받네 하고 농담했다. 여기서 남의 강아지 만지는 거 엄청 싫어하잖아. 당연히 견주에게 허락받아야 되고.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다 금방 숙연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