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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얘기하는 데 왜 돈 얘기가 나와요?

AI, 돈, 창작자의 대체불가한 가치에 대해

by 신디강 Cindy Kang

3년 전, 브런치에 일러스트 작가의 저작권 양도 계약에 대한 글을 썼다. 만약에 신인 작가인 내가 저작권 양도 계약으로 낸 돌고래 책이 출판 후 갑작스럽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대박을 터뜨려 버린다면? 더 이상 내 돌고래가 아닌 돌고래가 각종 굿즈가 되어 거리거리마다 판매가 된다면? 해외 매체에 '한국 여행 시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라며 온갖 쇼츠와 릴스에 내가 그린 돌고래 그림이 대문짝 하게 박혀 홍보가 되고 있다면?


... 꽤 괜찮은데?


라고 생각했다면 이다음을 고민해봐야 한다.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말할 수 없다면? 뭐, 때에 따라 출판사의 허락 하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저작권 양도를 했다는 건 간단히 말해 내가 만든 그림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어도 "그거, 제 인스타에 올려도 될까요?"라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이 초라함이 와닿지 않는다면 돈 얘기를 해야 한다. 나의 돌고래 책이 만들어낸 무수히 많은 굿즈들, 해외 관광객도 찾아오는 소문난 전시,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들어간 내 돌고래 테마의 노래- 이 모든 것들의 수익은 출판사에게만 들어간다. 작가에게 들어오는 돈은 0원. 작가가 받은 돈은 저작권을 양도하며 받은 작고 소중한 노동의 값이 전부다.


특히 신인 작가들에게 들어오는 일들은 기회라는 말이 잘 따라다닌다. 무급으로 들어오는 일들은 더 잔인하다.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과 재료비를 써가며 작업을 맡기면서 '더 노출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돈은 줄 수 없다며 말만 친절하게 하는 사람만큼 곤란한 사람이 없다. 작가들이 테크니션이라고 불리지 않는 이유는 작업 시간의 몇 백 배, 천 배의 시간만큼 연구하고 갈고닦고 온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이해해 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저희 예산이 많지 않아서...




저작권 양도를 정 해야 한다면 페이를 올릴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예산이 많지 않아서 페이도 못 올리고, 저작권도 양도를 꼭 해야 한다고 한다. 원래 다들 그렇게 한다고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 전 세계의 출판 업계가 모두 어렵다고 한다. 출판사는 늘 돈이 없고, 소비자는 돈이 있다면 책에 쓰지 않는다. 시간은 늘 없다. 시간이 갑자기 더 주어지면 책보단 비행기를 탈 거라고 말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현대인은 쉼이 필요해. 잠이 필요해. 그리고 10시부터 침대에 누워 볼 것은 없지만 OTT를 하염없이 스크롤하고, SNS에 들어가 모르는 사람들이 춤추는 영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다가 새벽을 맞이한다. 다음날은 퀭해진 얼굴로 피곤한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있는 뉴욕 맨해튼은 세계 출판시장 1위인 미국의 허브이며, 출판계를 빌리언달러 비즈니스로 꽃 피우는 곳이다. 경제, 금융, 부동산, 패션 등과 나란히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의 출판사들 역시 계속 예산이 없다. 작가가 없으면 책이 없으니 출판계는 특히 창작자들에게 의지하는데, 계속 예산이 모자라다고 하니 작가들도 늘 제 돈을 못 받는 경우가 많고 스타 작가가 아닌 이상 애매한 대우를 받는 일도 파다하다.


출판사들은 자기도 어려우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스타 작가는 바쁘거나 돈이 많이 들 거고, 신인 작가들에겐 리스크가 있다는 거다. 이때 출판사들은 신인작가한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돈 대신 말이다. 저작권 양도로 계약을 하면 출판사 측에서 까다롭게 저작권을 관리할 일이 적어지고, 홍보물이나 추가 인쇄, 한국의 경우에는 굿즈 등을 매번 작가의 라이센싱 허가 없이 만들 수 있으니 이렇게 해서 리스크를 줄이려 한다.



Illustration by Cindy Kang



그럼 여기서 생각해 볼 게 있다. 매번 허가를 받아야 하니 번거로워서? 돈 아끼려고? 회사 측에서 관리하기 쉬우려고 저작권 양도 계약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거라면, 작가의 입장은 누가 생각해 줄까? 내가 가장 경계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 "그래도 어떡해, 계약은 계약이잖아" 하나, "회사도 돈은 벌어야 할 거 아니야" 둘. 그 누구도 작가의 입장에서 그들이 불리한 계약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나, 그들도 돈 벌어야 하는 개인이란 걸 이해해주지 않는다. 왜 우리는 디폴트로 회사 편에 서있을까? 일해보니 법은 작가의 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 진실도 아니더라.


예전에 계약서에 대한 글을 썼을 때 귀찮으니 올인원으로 해결해 준다고 하는 계약은 의심해봐야 한다고 적었다. 창작자는 귀찮은 걸 해결하기 위해서 계약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게 저작권에 관련된 거라면 더욱이 귀찮아도 해결할 건 해결해야 한다. 내 새끼를 넘겨주는데 당연히 이게 어떻게 사용될지, 응당한 대우를 받게 되는지 알아야 할 저작자의 권리가 있다. 심지어 내 이름도 어딘가 크레디트에 달려서 세상에 나갈 텐데, 번거로워도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저작권자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계속해서 높여도 듣는 사람이 모자라 필요한 곳에 잘 닿지 않는다. 창작자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저작권을 위해 싸워왔다. 안타깝게도 내 지난 몇 년간의 경험 속에서도 계약서는 바뀌지 않았고 사람들의 태도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 창작자의 말에 큰 관심 없던 사람들이 이젠 AI를 두 팔 벌려 환영하기 시작했다.


AI는 더 무분별한 저작권 침해를 가져왔다. 챗지피티를 처음 사용해 보면서 "신디강이 누구야?" 하고 물었다. 챗지피티는 몇 초만에 내가 브런치에 적었던 모든 글들을 가져왔다. 내 그림에 대한 분석도 했다. 윤리적으로 어긋난다며 내 그림을 가공하는 일은 못하겠다고 말만 하던 챗지피티, 허락 없이 내 브런치 글을 잘도 긁어 가져가서 이건 괜찮은 것처럼 써먹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챗지피티가 결국 우리 세상을 반영해 보여주는 거라면, 나는 이제 우리 세상이 어떤 게 윤리적이고 비윤리적인지 구분 못할 지경이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그림이 몇 초면 뚝딱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비용 절감. 그리고 비용 절감을 위해 가장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생각된 것 첫 번째, 실제 인간 작가 섭외가 줄어들었다. 저작권을 중히 여기지 않고 경제적 효율만을 우선시한 우리 사회가 낳은 결과다. 회사는 비용 절감으로 몇 푼 더 아껴서 정말 더 큰 이득이 있었을까? 일단 작가들의 타격은 충분했다. 글을 쓰던 사람은 AI에 직업이 대체되기도 했고, 대학 강사였던 작가는 AI로 작성해 제출된 학생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심적으로 크게 고생했다. 전업 작가였던 일러스트레이터 여럿은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며 창작의 길을 포기하고 있다. 온갖 곳이 난장판이 됐다.


더 이상 저작권 양도 계약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젠 계약서를 쓰지도 못한다. 누가 내 거를 가져다 짜깁기해서 쓰는지 알 길이 없다. 플랫폼들이 허가 없이 창작물을 AI 학습에 사용해 가니, 어떤 AI가 내 그림을 가져다 다른 걸 생성했어도 누구를 상대로 화를 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AI? 찾을 수 없는 사용자? 아니면 원본의 주인인 나?


창의성은 짜깁기가 아니라 새로 만들어내는 거라는 걸 점점 잊어가고 있다. 돈이 되는 게 아닌 이상 사실상 무관심하다.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귀찮게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돈이 되는 결과물만 빠르게 만들고 싶어서, 그래서 창작자의 권리는 점점 자리를 잃어 간다.








얼마 전, 책 작업을 함께 하는 동료와 통화를 하는데 AI 때문에 아무래도 안 좋은 저작권 의식 앞으로 어떻게 하냐며 웃음 섞인 한탄을 했다. 한참을 얘기했는데 대화 끝에 우리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어차피 아는 사람은 알아요.



가장 나다운 것, 솔직한 걸 그리세요. 통화를 끝내고도 머릿속에서 그 말이 떠나질 않았다. 좋은 작품은 진심이 통하는 작품이다. 사람을 위한 글과 그림을 그리는 일은 짜깁기되어 만들어 내기엔 아직 한계가 있다. 깊이가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나, 그리고 내 목표를 응원하는 동료와 이야기하니 살짝 울컥했다. 이 험난한 창작자의 세계에서 존중을 받는 느낌은 참 귀하다. 작가들에겐 이런 게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어차피 그림책은 설명해 줘야 이해되는 게 아니고 경험하는 책이니, 이런 책을 만드는 전문가들은 요즘 변화의 한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업계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도 역시 가장 독창적이고 솔직하고 사람다운 것들을 만들고 싶어 하고, 결국 그런 게 더 소비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걸 안다. 정말, 어차피 알 사람은 안다. 그러기 위해서 진짜 사람 냄새나는 작가를 필요로 한다. 혹여나 AI로 책을 만들어낸다거나, 저작권 양도 계약만으로 작가들과 일하는 등 일회성 성격이 짙은 회사는 어느 순간 수익이든 평판으로든 소진되고 있는 게 나타난다.



Illustration by Cindy Kang



우린 창작물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시선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연구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고민하고, 깨닫고, 발전한다. 순간의 재미 너머에 더 오래 남는, 가치 있는 감정들을 함께 경험한다. 나는 내가 많은 창작자들의 작품으로 나 자신이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 다른 이들의 작품에 반응하고 감동하며 새로운 창작자인 지금의 내가 됐다. 더 이상 창작자가 존중받을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 새로운 작품들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 된다면, 우리 미래 세대는 내가 경험한 순수한 열정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온다.


끝이 보이는 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창작자들이 신선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걱정 없이 내가 만든 걸 세상에 공유할 수 있도록, 우린 계속해서 창작자의 권리와 존중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재밌는 걸 만들고 싶은 어린이가 설레는 꿈을 꾸며 어른이 되는 걸 기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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