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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강 Cindy Kang Apr 15. 2021

왜 하필 뉴욕인데? (3)

네 맘대로 해, 대신 네 책임이야.


일단 나는 살면서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평범한 상황에 자유가 없는 삶은 딱히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만약에 있었다면 학원 안 갈 자유,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자유, 놀고 싶은 만큼 놀고 자고 싶을 만큼 잘 자유, 통금을 지키지 않을 자유, 그리고, 그리고......


생각해보니 그냥 불만을 해결할 생각을 못했던 거지 나는 구멍 송송 난 스펀지 마냥 중간중간 비어있는 자유에 늘 목말라 있었다. 누군가 딱히 나를 옭아매고 있다고 할 수 없이 2n 년 간 부지런하게도 사회가, 그리고 나 자신이 나를 꽁꽁 누르고 있었다. 누군들 어떻게 알아서 애기 때부터 그 알을 깨부수고 밖으로 나올까. 어쨌든 난 늘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Illustration by Cindy Kang



집순이의 정석을 지키던 나는 미국으로 떠나 내 스케줄대로 내 맘대로 행동했다. 밤늦게까지 놀고, 하루에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다섯 번 이상의 외출을 (전혀 효율적이지 않지만) 한 적도 있고, 자체 휴강이라며 충동적으로 기차를 타고 멀리 나갔다가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룸메들이 있더라도 혼자 살고 있으니 고려해야 하는 것은 내 스케줄, 그뿐이다. 가족들이랑 지낼 때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출근하시는 아빠의 발걸음, 고막을 때리는 청소기 소리, 새벽 댓바람(아마 아니겠지만)부터 아파트 어딘가에서 들리는 분노가 가득한 드릴 소리... 방해 요소가 너무 많았는데 말이다.


더 어마어마한 사이렌 소리와 공사 소리가 난무하더라도 뉴욕에 오니 많은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듯한 이상한 심리적 안정이 왔다. 사람에 의한 소리는 또 다른 건가 보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알아서 편할 때 움직이고 밥 먹고 자고, 이렇게 마음 편한 삶이 없는 거다. 심지어 이런 생활적인 부분 말고도 내가 원하는 대로 개성 강한 옷을 입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고, 머리를 세기말 머리를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내 취향에 대해서도, 내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어디를 언제 가든, 내가 뭐를 먹든.






달콤한 게 많은 만큼 나를 유혹하는 게 많았다. 유혹이 강렬할수록 그 안에 사실 가시와 독이 숨겨져 있는 법이다. 나에게 모든 선택의 자유가 있는 만큼, 나에게 막중한 책임이 따랐다. 실수를 하거나 혹여나 재수가 없어서 일이 잘못되더라도 한국도 아니어서 어디 숨을 곳도 없다. 붙잡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누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가족들에게 설명한다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뉴욕에서 혹독하게 배운 레슨 하나는 독립심이다. 안전한 집에서 입 열면 밥이 들어오는(!) 삶을 살며 가끔 창 밖으로 하늘 보는 낙으로 살던 내가 책임감을 배운 곳. 기본적인 도시 청결을 포함해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 곳에서 나는 얼마나 조심하고 얼마나 도전해야 하는 지를 몸 던져 배웠다. 안전지대를 벗어나 정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무섭고 불안했지만 이런 오리알 챌린지를 통해서 조금은 레벨업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오리알..? Illustration by Cindy Kang



엄마 이거 어떻게 해? 시킨 대로 했는데 안되는데? 어떡해? 처음부터 다시 해?


기본적인 식재료 관리부터 햇반 몇 분 돌려야 하는지 뻔히 포장에 적혀 있는데도 바보같이 엄마에게 물어보곤 했었는데, 그 외에는 다짜고짜 엄마를 불러다 도와달라고 떼쓸 수가 없다. 슈퍼맨처럼 나타나 주는 내 보호자가 없다. 영어로 하나씩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고, 문제가 생기면 혹시 억울할지라도 야무지게 처리해야 하는 그런 서바이벌 같은 세상이다.


사실 모든 자취생이라면 한 번쯤 겪게 되는 그런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마 나도 한국에서 지내며 첫 자취를 하게 됐었어도 허둥지둥하며 어른으로서의 첫걸음을 뗐을 것 같다.


그렇지만 같은 땅덩어리에 있지 않다는 것, 전화 한 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거리에 있지 않다는 것, 서로의 생활환경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그래서 필요하더라도 도움을 줄 수 없는 것.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구속에서 벗어나 굉장히 (진짜, 엄청나게, 많이!) 자유롭지만 참 씁쓸하고 외로운 일이다.


어쨌든, 길었던 마지막 이유다. 뉴욕은 내가 위험천만한 곳에서 자유롭게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잔뜩 실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곳. 안정적이지 않은 곳에서 솟아나는 서바이벌 정신을 배운 곳이다. 이게 헝그리 정신인가...?



굳이 힘들 게 뻔한 걸 겪어봐야 아니? 어휴 그걸 굳이 그 먼 데까지 가서 알아야 하니?

넵.


자유로우니 책임져.

책임질 수 있으니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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