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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스 Feb 16. 2023

정말 최선을 다하는 게 최선일까?



  “자기야! 현서가 없어졌어.”

  여의도 도로 한복판에서 나는 아내에게 전화로 그렇게 말했다.

  “어디서? 어떻게 된 건데?” 놀랐는지 그녀 목소리는 한없이 올라갔다.

  “그게... 나도 모르겠어.”




  운전을 하면서 아무리 뒤를 돌아봐도 원래 카시트에 있어야 할 딸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바람에 뒤에서 다른 차들이 빵빵!! 정신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내 뒷자리에 있던 4살 딸이 사라졌으니까. 어떻게 된 거지? 혹시 차창 너머로 떨어진 건가? 아니면 그 짧은 사이에 누가 데려간 건가? 아무리 침착하려 해도 머릿속에 벌이 들어간 듯 세상이 윙윙 거리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수화기 너머로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일단 집으로 빨리 와봐.”

  “어. 알았어. 가면서 경찰서에 신고할게.”


  나는 집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그렇다고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도 못한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황색 신호등이 점멸하는데도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그렇게 5초 정도 지났을까?


  ‘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핸드폰을 내다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112 누른다는 게 그만 네이버 검색창에 우리 딸 이름을 검색하고 있었으니까. 충격을 받다 보니 사고 회로가 꼬여버렸나 보다. 이름을 지우는데  고여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 증발하다니... 그것도 내 차에서...'


  영화 속에서만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그 후 어떻게 운전했는지 모르겠다. 주변의 경적소리는 쿵쾅쿵쾅 심장소리와 하나가 되어 내 안에 울려 퍼졌고 내 시야는 경주마처럼 점점 좁아져만 갔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멀리서 정신없이 내게 달려오는 아내가 보였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신발은 짝짝이에 머리는 산발이 되어있었다. 감정에 북받쳐 부풀어 오르는 가슴에 손을 얹고 아내는 내게 물었다.

  “경찰서에 이야기해봤어?”

  “아직...”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건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 아니야..” 그럴 리 없었다. 어린이집 데려다주는 길에 사라진 거니까. 룸미러로 계속 지켜보던 딸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까.  

  “혹시 모르니까 내가 전화해 볼게.” 그러면서 아내는 어린이 집에 전화를 했다.


  나는 옆에서 마른세수를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했다. 운전 중에 사라진 것이다. 지금 도로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할까? 제발 다치지만 말아라! 누가 신고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두 손을 모으고 빌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아내 표정이 갑자기 싹 바뀌었다.

  “네? 현서 잘 있다고요? 정말로요?”

  “어.... 현서 어린이집에 있다고?” 내가 묻자 아내는 핸드폰을 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알고 보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집에서 KBS 어린이 집(본관)까지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현서를 어린이집에 잘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정신을 잃고 만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5분가량의 시간 동안 기억이 정말 하나도 없다. 분명 몸은 움직이고 있었는데... 의사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아무래도 ‘블랙아웃!’ 단기 기억 상실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어셈블리>라는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방송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나는 월화수 3일간을 꼴딱 밤새서 찍어야 했다. 운이 좋으면 하루에 2~3시간 자는 거고, 보통은 장소와 장소 사이를 이동할 때 연출 봉고에서 쪽잠 자는 게 전부였다. 부담감이 엄청났다. 왜냐? 남은 분량을 다 못 찍으면 100% ‘방송사고’니까. 무조건 다 소화해야 했다.


   그날도 그랬다. 60시간 연속 촬영을 하고 새벽 4시가 다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가까스로 다 찍어서일까? 속은 후련했지만 몸에 아직 남아있는 미열 때문일까?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뒤적거리다가 5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 떠보니 현서와 아내가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가게?”

  “엉.”

  그 소리에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내는 괜찮으니까 더 자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랜 습관 때문인가! 잠도 잘 안 왔고 게다가 둘이 대중교통 타고 가는 건 생각만으로 불편했다. (참고로 아내는 운전을 못한다) 게다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장 노릇 하나 싶었다. 촬영할 때는 거의 집에 없다 보니 남편 노릇, 아빠 노릇 제대로 못해준 게 늘 미안했다.


   ‘오늘은 촬영 없으니 돌아와서 다시 자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 운전하다가 말 그대로 기억을 잃고 만 것이었다.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어린이집 선생님이랑 인사도 했다면서.”

  “그래? 그랬... 어?” 기억은 되살려보려 애썼지만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영혼이 잠시 어디 나가있었나보다.

  “자기야. 병원에 한 번 가봐야겠다!”

  “어.. 그래야겠네.”


  아내는 그제야 다리가 풀렸는지 주저앉았고 나는 멍하니 서서 지하주차장 천장등만 올려다보았다. 그때 느꼈다. 너무 오버했다고. 내 상태도 살피지 않은 채 괜히 좋은 아빠 한 번 돼보려고 했다가 큰일 날 뻔한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대학 동기나 회사 선후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에피소드가 은근히 많았다. 어린이집 시간에 맞추려고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넘어져 피투성이 된 엄마도 있었고, 야근과 밤샘 육아에 지쳐 응급실에 실려 간 아빠도 있었다. 매일 아침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와 실랑이하며 가슴 아파하고, 밤이 되면 빨리 아이가 잠들기만 바라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어나간다. 확실한 것은...


   “요즘 어때? 잘 지내니?” 그 흔한 안부 인사에 쉽게 미소 짓는 사람은 없었다. 지쳤다고, 가끔은 버겁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근데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니야?”  


    맞다. 타고난 사람은 없다. 초보다 보니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그저 우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가정과 회사 사이를 잇는 가느다란 줄 위에 외발로 선 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내일을 위해 현재를 너무 희생하는 것은 아닐까? 가족을 짊어지느라 나 자신을 너무 던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지 가족 또한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가족과 직장에 충실할 수 있을까? 우리는 로봇이 아니니까. 피와 살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니까. 힘을 과하게 주다 보면 결국 부러지듯이 너무 잘하려고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 나는 것이다.


    그리고 괜히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안 했으면 좋겠다. 가끔 너무 힘들거나 지칠 때면 감내하고 말없이 이겨내는 대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먼저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엄마! 좀 지쳤어. 그러니 잠시만 쉬어가면 안 될까?”

   “아빠! 여행 좀 다녀올게.”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주지 않을까?      


   언론에서는 ‘알파 메일’ ‘슈퍼 우먼’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가정과 직장에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이들을 비춰주며 찬양했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된 인간처럼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압박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잃으면 안 될 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우리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요즘 어때? 잘 지내니?”라고 물었을 때, “그럼! 그럼! 요즘 나 이거 배운다. 진짜 재미있어.” 하며 행복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이는 우리가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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