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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시작, 관계 맺기

글쓰기 교실에 오세요 01

by 싱싱샘

작은 도서관에서 초등생 엄마를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제목은 ‘우리 아이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였다. 1회 강의니까 기본 정도 다룰 수 있겠는데 그 안에 의미까지 담아내는 건 쉽지 않다. 의미가 깊이 전달되어야 자그마한 변화라도 시작되니 그동안 특강을 했던 자료를 뒤적이며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뽑은 키워드가 ‘관계’ 그리고 ‘함께’다. 그중,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할까 한다.




3학년 여자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수업에 왔다. 사촌 언니들이 진작부터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이 아이는 한사코 거부했단다. 나는 처음 수업에 참여한 아이에게 특권을 준다. 한번 해보고 싫으면 안 하겠다고 수업을 끊을 권리. 보통 그러면 마음 편히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첫날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고심해서 쓴 아이의 글은 다음과 같았다.


학교 갔다가 와서 하루 종일 숙제한 날


어제는 학교에 갔다 와서 하루 종일 집에서 숙제를 했다. 어떤 숙제를 했냐면 바로 수학 숙제를 했다. 수학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학을 집에 와서 8시까지 한다. 내가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계산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온 시간부터 8시까지 아주아주 힘들게 계산을 해서 문제를 끝냈다. 두 자릿수 × 두 자릿수여서 그런지 너무 계산을 하기가 복잡했다. 그래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수학을 싫어하지만 수학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이 노력해야 한다. 내가 요즘에는 엄마한테 바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가끔은 마음이 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계산을 못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수학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수학을 잘해야 다음에도 수학과 계산 같은 걸 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한 일 중심으로 글을 쓴다. 그래서 별일 없으면 쓸 게 없는데 이 아이는 마음에 걸린 일, 힘든 일을 담았다. 나는 칭찬을 보따리로 해주었다. “너는 정말 글쓰기를 잘할 친구구나. 수학이 싫은 마음, 어렵고 힘든 상황을 솔직하게 쓸 수 있는 건 엄청 수준 높은 거고 대단한 거야.” 다음 주 엄마가 잠깐 들렀다. 안 가겠다던 아이가 첫 수업을 마치고 와서 다음 주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엄마에게 ‘당연히 가야지.’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었다.


어린이 글쓰기는 관계 맺기에서 시작된다. 좋은 글의 첫째 조건은 재미와 감동이 있는 글인데 그러려면 진정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마음에 담아두었던 걸 꺼내놓기만 해도 아이들의 글은 재미와 감동이 100퍼센트 보장된다. 문제는 마음에 담아두었던 걸 어떻게 꺼내게 하는가, 인데 그건 털어놓아도 되는 사람,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를 엄마 혹은 선생님이 어떻게 만드느냐, 와 맞닿아있다. 관계 맺기가 어린이 글쓰기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 그리고 관계 맺기의 출발은 칭찬이다. 요즘 아이들은 칭찬을 많이 받으면서 사는 것 같지만 스스로 비교에 시달린다. 칭찬을 받아도 비교로 다 까먹는 것이다. 비교를 덜 해서 마이너스를 줄이는 게 맞지만 쉽지 않다. 나는 칭찬을 부어주는 방법을 택한다. 자세히 살펴보고 사소한 것이라도 칭찬한다. 사소한 것보다 자세히 살피는 것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상대를 자세히 살피면 보이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다음 필요한 것은 관계 이어가기다.


관계는 어떻게 이어갈까. 어른의 관계는 참 복잡하고 까다롭다.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여 어른울렁증이 있다. 어른과 함께하면 왠지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버겁고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몹시 피곤한데 이상하게 긴 세월 아이들과 글공부하면서는 그런 게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무장해제가 되기도 했지만 관계를 잘 이어나갔다는 이야긴데 어제 받은 따끈따끈한 6학년 아이의 글에서 아이는 아이의 할 말을, 나는 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른에게


어른은 아이를 이해하지 않는다. 어른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을 아이는 한다. 어른이 바라는 것을 아이는 잘 알지만, 정작 어른은 아이가 바라는 것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어른은 당연히 아이가 이상하고 말썽만 피운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모르니까. (중략)


어른도 아이에게 무엇을 샀고, 엄마들과 무엇을 하고 왔고 등등 말하기 싫거나 숨기는 것이 있다. 아이가 물어보면 화를 내거나 버르장머리 없다는 등 뭐라고 하면서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한테 왜 말을 하지 않냐고 억지로 말하게 하면 아이는 어른의 바람 반대로 더욱더 말하기 싫고 부모님께 알려주고 싶어지는 것도 적어지는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억지로 그러지 말고 천천히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략)


아이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막 풀어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과 이제 아이가 혼자서 잘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자유를 주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어른은 어린이였다. 그러니 어릴 적 놀고 싶다, 맘대로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기억하고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부모님도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중략)


어른들이 아이들을 진정 사랑한다면 더욱 아이들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의 숨김 그리고 자유를 주어야 한다. 아이가 숨긴다고 해서 억지로 아이를 닦달하지 말고 아이가 아직 준비가 안 돼서 못 하는 말이라면 직접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 이해하고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도 정말로 어른들을 잘 따르게 될 것이다.



읽고 현장에서 정말 빵 터졌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도 정말로 어른들을 잘 따르게 될 것이다.

아이의 말이 구구절절 옳다. 아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려는 일, 말해줄 때까지의 기다림, 자신도 지난날 아이였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아이가 어른을 따르게 하는 일이라니.


좋은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에서 선생인 나는 아이 자체를 이해해 보려고 했고, 작은 그들이 세상을 향해 크게 외쳐줄 말들을 기다렸다. 나도 모르게 한 이해와 기다림의 노력은 관계를 부작용 없이 이어가게 해주었다. 거기서 우리들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강의에서 만난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부모라면, 내 아이가 글을 잘 쓰길 바란다. 쓰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기표현을 잘했으면 좋겠다. 읽고 쓰는 건 성적과도 관련이 있으니 그렇기도 하지만 글을 쓰며 스스로를 알아가길 바란다. 아이들과 관계부터 맺자. 아이와의 관계의 기본이 이해와 기다림에 있다는 6학년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나는 그런 말을 해주는 우리 아이들이 좋다. 그런 우리 아이들의 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글쓰기의 출발점은 관계 맺기다.

이해와 기다림, 그 두 가지가 아이의 문장을 여는 열쇠다.

그리고 그 열쇠를 손에 쥔 어른이 바로 글쓰기의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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