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교실에 오세요 02
‘쓸 게 없어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글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의 호소다. 글감이 없다는 이야기다. 글감은 글의 내용이 되는, 재료다. 나는 글감 모으기에 공을 들인다. 심지어 새로 만들어지는 반의 숙제가 글감 모으기일 정도. 싱싱한 글감이 있다면 좋은 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 글감을 찾아낼 줄 안다면 글의 생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글감이 없다고 생각할까?
학교 가고 학원 가고 숙제하고 자고 먹고 조금 노는 일상이 반복된다. 매일이 같다고 생각한다. 쓸 만한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지점을 깨는 게 내 일이다. 어른으로, 선생으로 비슷한 일상을 살게 하는 건 미안하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니까 접어두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뭐야, 일주일 내내 시체였던 거야?”
죽은 게 아니었다면 움직이고, 느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마디 덧붙인다. ‘심지어 좀비도 뭔가 한다고오!’ 움직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 글감이 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거기까지 나간 김에 어떤 것이 글감이 될지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한 것 / 본 것 / 들은 것 / 말한 것 / 느낀 것 / 생각한 것…
나만 알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글감이 된다. 세상에 아직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내놓은 사람이 주인이고 작가다. 나는 그것을 강조해서 자신의 삶을 쓰는 어린이 작가(?)를 양성하고 있다. 글감은 너무 많아, 알고 나면 너무 많아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괴로울 정도가 될걸. 한 판 너스레까지 떨고 나면 아이들은 글감을 쏟아낸다. 한 주에 한 가지 생각하는 건 너무 쉽다.
영어마을에 다녀와서 / 재미난 안네의 일기, 제인 에어, 로미오와 줄리엣 책 / 엄마가 새로 사준 필통 / 처음 먹어본 음식/ 보석 / 수학은 쉽다 / 젤리 만드는 방법 (젤리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동심 파괴) / 이번 주 월요일에 글쓰기 대회에 나간 일 / 친구들과 협동하여 인권선언문을 외운 일 / 최악의 수학 점수를 받은 일 / 영화 보고 온 일 / 자전거 타고 싶다 / 나는 오빠랑 빨리 같이 글쓰기를 하고 같이 나아지고 싶다 / 친구와 인라인을 오랜만에 탄 날 / 빨리 토요일이 되면 좋겠다 / 킥보드를 탔다 / 하루 종일 핸드폰 한 일 / 컴퓨터 게임 오래 한 일 / 동생 친구 생일 파티 / 금요일에 신나는 아나바다 시장 / 학교에서 산신령님에게 소원을 빌었는데 꼭 이루어지면 좋겠어! / 어제 직업 역할에서 선생님을 맡은 일
이 글감이 다 어디서 났을까. 생활에서 왔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집에서 왔다. 무엇인가 보고 듣고 말하며 일주일 살았기 때문에 반드시 생각하고 느낀 것이 있는데 붙잡지 않아서 스쳐 지나간 일이 된 것이다. 없는 일처럼 되었다. 그것을 붙드는 일이 글쓰기다. 내 마음을 움직인 ‘무엇’ 하나를 붙들어 쓰면서 의미를 깨닫게 된다. 크고 작은 의미를 만든다. 그 ‘무엇’이 글감이라고 나는 아이들에게 설명해 준다. 3학년 남자아이는 이렇게 썼다.
알약 잘 먹을 수 있을까?
수요일 밤, 알약을 먹을 시간이다.
알약의 크기는 ‘○, O, o’ 이었다. 잘은 먹을 수 있긴 하지만 먹기가 싫다.
“약 빨리 먹어!”
“조금만 있다가요.”
“안 돼. 빨리 먹어.”
“네.”
이런 대화를 하고 결국 먹었다. 잘은 먹을 자신이 있는데 왜 그런지 먹기가 싫어진다. 그래도 기침과 코가 막히거나 콧물을 푸는 것 등을 생각하며 먹으니 다 나았을 때가 생각난다. ‘빨리 나아라.’ ‘빨리 나아라.’ 진짜로 엄청나게 빨리 나으면 좋겠다. ‘빨리! 빨리! 빨리빨리! 더 빨리 나아라!’ ‘제발! 제발! 제발제발! 더욱 빨리 나아라.’
약을 먹으니까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약은 한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수요일 밤에는 원래 양과 똑같이 봉투에 들어가 있는 세 알을 먹었다.
와! 다 나은 것 같다!
약 먹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나. 아이도 안다. 잘 먹을 자신이 있어도 먹기는 싫다. 그래도 나았을 때를 생각하며 먹는다. 한번에 먹으면 부작용이 있으니 정량대로 먹는 것까지 생각한다. 알약 먹은 일 하나로도 글이 된다. 쓸 건 널렸지. 무엇을 쓸까 잘 고르는 게 문제지. 선생님 말 거짓말 아니지? 확인시켜 준다.
이렇게 글감 공부한 날은 글쓰기 노트에 다 같이 적는다.
※ 숙제: 글감 모으기
※ 방법: 자세히 보고 보고 보고 또 봅니다.
일주일 동안 나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을,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내 마음을 잘 관찰하라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추가하여 이렇게 쓰고 집에 갔다.
1. 내가 한 일 - 당연하고!
2. 최근 재미있었던 일, 기억에 남는 일 - 너무 좋고!
3. 어떤 일을 하면서 느낀 것, 생각한 것 - 이건 진짜 최고!
4. 잠들기 전 다음 날, 다음 주의 가장 기다려지는 일까지, 무엇이든! 써도 된다!
글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눈앞의 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새로움은 있다. 그걸 자세히 보고 보고 또 보는 일, 바로 관찰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아이들이 적어 내려간 문장들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살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이 곧 글감이고 쓰기의 시작이다.
글감은 멀리 있지 않다.
하루가 곧 글이 된다.
하루를 보는 눈, 그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