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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사는 아이들

글쓰기 교실에 오세요 03

by 싱싱샘

나날이 추워진다. 서울에 첫눈도 내렸다. 어른들의 단톡방은 눈 내린 사진에 대한 댓글로 북적북적했다. 아이들 카톡방엔 어떤 말과 영상이 오갈까 궁금하던 터,


“선생님, 이번 주 쓸 게 없어요.”

“에이, 나도 없어. 자, 가만 보자. 어? 이번 주에 눈 왔잖아? (모르는 척) 언제였지?”




매주 글쓰기 수업은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주 지내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나는 어떨 때 가장 즐거운가, 헤아려 보도록 한다.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누구인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열함으로써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건 또 써봐야 분명해지기 때문에 나는 늘 먼저 수다처럼 이야기 푸는 시간을 갖는다. 두 주에 걸친 수업에서 몇 아이가 첫눈의 기억을 소환했다.


눈싸움, 1학년


눈싸움을 했다. 편을 나누고 했는데 어떤 남자가 방해를 했다. 그래서 화가 나서 잡으러 갔다가 또 우리 반 남자아이들을 만났다. 그래서 주위를 살폈는데 그사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 옷에 눈을 넣었다. 근데 또 누군가, 친구의 얼굴에 얼음을 던졌다. 그래서 던진 친구가 나한테 던진 걸 수도 있다. 그날부터 눈싸움을 하기 싫어졌다. 얼음은 싫지만 그래도 눈은 아직도 나의 인생이다. 엄마한테도 선생님도 별거 아니라고 하셔서 그냥 마음의 분노를 끝냈다. 하지만 마음이 폭발했다. 나는 내 마음이 폭발하기 전에 나를 괴롭혔던 범인을 알면 잡아줄 거다.


학교에서 눈싸움 한 일, 3학년


어제 학교에서 3교시 때 운동장에서였다. 눈이 쌓여서 눈싸움을 했는데 장갑이 없었다. 왜냐하면 집에서 내가 가져오라고 하라니까 엄마가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도 눈은 만졌다. 근데 손이 시려서 눈을 발로 찼다. 어떤 아이가 자꾸 나대서 얼음으로 칼을 만들어서 걔를 찔렀다. 근데 그 얼음칼이 부러졌다. 그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그리고 눈덩이로 내가 제일 친한 친구를 때렸다. 그래서 미안했다. 그리고 끝났고 점심 먹고 피구를 했다. 손이 시려 그냥 공을 발로 찼다.



저런, 어쩌나. 얼음은 싫지만 눈은 인생인 아이들. 장갑이 없어 손이 시릴 것을 알면서도 하는 눈싸움의 재미. 한 친구는 눈싸움 때문에 마음이 폭발했고 한 친구는 눈덩이를 던진 친구에게 미안했다고 쓴다. 나는 더 이상 눈싸움을 하지 않는 어른이다. 그래도 눈은 좋다. 베란다 창으로 내리는 눈을 볼 수 있다면 아주 좋다. 아이들은 눈이 인생이라고 썼다. 눈이 왔으니 맨손으로 얼음칼 만드느라 바쁘다. 엄마가 가져오지 않은 장갑 따위는 그 순간에 중요하지 않다. 피구를 해야 하는데 손이 시리다. 그럴 땐 공을 발로 차면 된다. 현재의 아쉬움으로 과거를 불러내지 않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지 않는, 그저 현재형으로 사는 아이의 글이 예뻤다. 와, 눈 오네. 녹으면 지저분하고 길 막히고 복잡하고 얼어서 미끄러지면 위험해서 어째, 한다면 아이의 마음에서 많이 멀어진 건 아닐까.


아이의 마음에서 멀어져 아이를 못 읽지 않도록 나는 늘 그들의 글을 세심히 본다. 한 문장 한 문장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는다. 그렇게 읽으면 때렸다, 를 지나 미안했다, 가 읽힌다. 마음이 폭발하기 전 범인(?)을 잡고 싶고 손이 시리니 피구 공을 발로 차는, 그럼에도 피구는 하고 싶은 아이의 글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친구의 글도 그렇게 봐야 한다고 가르친다.


눈이 내리는 밤, 4학년


약 2주 전쯤 나는 길거리에 쌓인 눈을 보며 학교에 갔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적은 오랜만이다. 나는 이렇게 많이 쌓인 눈이 신기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간다. 요즘 이렇게 추운 것을 보니 겨울인 것 같다. 나는 감탄을 하면서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어떤 교과서를 준비해야 되는지 궁금하여 시간표를 보았다. 그런데 첫 교시는 창체였다. 나는 무엇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고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나의 담임선생님께서 밖에 나가자고 하였다. 우리는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일단 밖에 나간다는 생각에 나와 친구들은 들떠 있었다. 선생님은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자고 하였다. 우리는 장갑도 없는 상황에서 눈사람을 만들다가 손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친구들은 반으로 들어온 뒤 춥다며 화장실에 있는 뜨거운 물에 손을 넣었다. 물론 나도 같이 넣었다.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종이 생각보다 빨리 쳤다. 그래서 우리는 막 달려가서 수업을 했다. 그리고 나는 학교가 끝난 뒤 나는 길을 걸으며 집에 가는 중에 눈을 보니 많이 녹아 있었다.


그 뒤로도 눈이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쌓이지는 못하였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실망하였다. 하지만 며칠 뒤 눈이 많이 쌓였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재미있게 눈사람을 만들고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갔다. 눈은 그 뒤에도 많이 왔다. 모두 전과 같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모두 아름다웠다.



마지막 문장을 듣는 순간 정말이지 나 역시 눈을 본 아이처럼 감탄사를 안 내뱉을 수가 없었다. 글쓰기 교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뭔가 설명하는 글쓰기만 했던 아이의 마음을 움직인 건 내가 아니라 눈이었다. 눈을 만진 후 얼어버린 손을 녹였던 온수의 행복감이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무한대의 칭찬뿐이다. 선생님이 아이 마음을 움직일 차례. 우리 교실에서 최고의 칭찬은 그 아이의 글을 인원수만큼 복사해 나누어주는 일이다. 선생님이 네 글 보기글로 필요해. 가져가도 되겠어? 이야기 주는 방법도 있다. 다음 수업에 아이가 낭독하고 모두 복사된 글을 보고 들으며 박수를 친다. 나는 내가 느꼈던 감동을 담은 문장을 골라 칭찬한다. 이번엔 단연 이 문장. ‘모두 전과 같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모두 아름다웠다.’ 오늘 수업에서 쓴 아이들의 글도 모두 아름다웠다.




우리 교실에선 글감을 직접 고른다. 학교에서는 주제를 정해 쓰게 하기도 하지만 나는 글감을 고르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감을 고르자면 내 삶을, 일상을, 작게는 바로 지금을 멈추어 생각해야 한다. 잠시 멈춤, 그것이 글쓰기의 첫 호흡이니 포기할 수 없다. 주제 주시면 안 돼요? 절대 응하지 않는다. 대체 제가 무엇을 써야 한단 말입니끄아, 코미디를 조금 섞어 ‘다른 거 안 해도 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오늘의 할 일’이라고 웃겨준다.


먼저 1, 2, 3 숫자를 쓰고 글감을 하나씩 떠올려 쓴다. 가능한 최근에 내 마음에 남았던 일이 좋다. 하나 쓰고 돌아가며 말하고 또 하나 쓰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궁금하다, 듣고 싶다, 이야기가 나온다. 못 썼던 아이도 슥 하나를 골라 쓴다. 그리고 오늘 쓸 글감을 골라 동그라미 친다. 글감을 고르는 기준은 두 가지 정도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 친구들과 나눌 만한 이야기. 일기와 달리 독자가 있다는 것이 기본값이고 독자가 있으므로 나만 알고 있는 기본 정보가 충실히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것을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만 말해주어도 금세 감을 잡는다. 골라진 글감은 가장 먼저 쓴 1번일 것 같지만 의외로 2번도 많다. 새로운 반이 구성되면 글감을 정하는 것부터 공을 들이게 한다. 함께 쓰기의 힘이 보태진다.


글감에 공을 들이는 단계에서는 수업 내내 무엇을 쓸 것인가에 집중한다. 아이들은 제가 하는 이야기가 원석인 줄 모른다. 툭 떨구고 가버린다. 나는 그럴 때 보석상이 되어 가치를 알아보고 얼른 주워준다. ‘오! 그거 딱 좋은 글감이다.’ 친구들이 고른 글감과 다시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글감을 보며 서서히 나만의 글감을 찾아간다.







아이들의 글에는 꾸밈없이 현재를 사는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다.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읽어내는 일, 그것이 글쓰기다.

순간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낼 때, 글감은 자연스럽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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