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교실에 오세요 07
“오늘은 특별 수업이야. 칠판에 나와 각자 한 문장씩 써볼 텐데. (시계 보며) 우리가 만난 지금 시각 이전까지 내가 한 일 가운데 딱 하나만 써보는 거야.”
아빠가 9시쯤부터 아침을 만들었다.
나는 오전 10시에 수학 숙제를 하고 만두를 먹었다.
나는 오후 12시 54분부터 2시 13분까지 친구와 띄엄띄엄 카톡을 했다.
나는 1시부터 2시 50분까지 낮잠을 잤다.
나는 오후 3시 SBS 방송국 앞을 지나갔다.
...
내가 한 일을 쓰라고 했는데 아빠가 한 일을 쓴 친구가 있어 ‘나’로 주어만 바꾸었다. (아이들은 보드마카를 손에 쥐면 뭔가 그리고 싶어 하고 심지어 쓰는 일이라 해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칠판을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자,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한 가지씩 한 일을 이제 합체! 우리 한 사람이 되어보는 거다.” 킥킥 소리가 들린다. 칠판에 쓰인 문장을 시간별로 정리했더니, 9시엔 요리를, 10시에는 숙제하고 만두를 먹었고, 카톡을 하다 낮잠 자고 글쓰기 교실에 왔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런 글이 있다면 어떨까? 질문했더니 동생이 쓴 글 같다, 딱딱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의견은 - 나는 나는 나는, 이 반복된다, 재미가 없다, 읽을 가치가 없는 것 같다는 데에 이르고 어디선가 한 아이가 “그럼 있었던 모든 일을 다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묻는다. 옆 아이는 “그건 아니지.”라고 답해준다.
나는 여기서 다시 등장.
한 일만으로 글을 쓴다면 이런 느낌이 들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느낌과 생각을 써야 해요.”
“소감을 넣어요.”
3, 4학년만 되어도 느낌을 써라, 소감을 넣어라, 수도 없이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질문한다. 느낌과 생각만 넣는다고 좋은 글이 될까? 아이들은 이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한 일’의 문제를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선생님이 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양철북) 속 아다치 선생님이다. 책에는 선생님이 2학년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는 장면이 있다. 수업을 참관하는 선생님이 열 명이나 되는데도 다년간 연구 끝에 얻은 위대한 방법이라고 약장수처럼 말한다. 아다치 선생님이 칠판에 쓴다.
- 한 것 ×
- 본 것 ○
- 느낀 것 ○
- 생각한 것 ○
- 말한 것 ○
- 들은 것 ○
- 기타
그리고 한 것 위에 × 표시를 하고 나머지는 모두 ○ 표시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것은 나쁜 녀석이다. 왜일까. 한 일은 아이들 글쓰기에서 자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역으로 한 일이 없으면 아이들은 아예 쓸 게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다치 선생님이 한 아이를 시켜 읽게 한 글을 다시 보아도 한 일은 나쁜 녀석임에 틀림없다.
아침 7시에 일어났습니다.
날마다 운동회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습니다.
아버지가 8시 30분에 돌아오셨습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잤습니다.
아다치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그제야 한 일 뿐 아니라 보고 듣고 말한 것, 느끼고 생각한 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해한다. 나는 ‘나쁜 녀석’이라는 표현 대신 ‘욕심쟁이, 한 일’라고 가르친다. 추가해 과거의 그 자리로 돌아가 그 장면을 생생하게 살려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저절로 느낀 것과 생각한 것을 적을 수 있게 된다고.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등으로 시야를 확장한다.
참새 발자국, 3학년
엄마와 나는 글쓰기 가는 길에 참새 발자국을 보았다. 눈까지 와서 선명하게 보였다. 엄마가 말했다.
“바퀴 자국이 아닐까?”
“바퀴 자국이 왜 이 구석길에 있겠어요.”
“스읍, 참새 발자국인가?”
“아니에요! 비둘기 발자국 아닐까!요?”
“아니야, 아까 참새가 더 많았어.”
“그런가?”
그래도 내 눈에는 비둘기 발자국처럼 보였다.
‘다시 봐도 분명 참새는 아닌 것 같은데...’
발자국이 끊겼다. 동시에 참새들의 발자국이 아예 사라졌다. 엄마는 새로 생긴 자전거 대여소를 보면서 “봄에 저거 대여해도 괜찮겠다.” 말했다. 참새 발자국이 다시 생겨났다. (중략) 엄마가 “참새가 그렇게 놀라워?”라고 하더니 사진을 찍어 아빠한테 보냈다. 아빠는 100% 이런 것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반전. 갑자기 아빠가 엄마과가 되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을 아빠가 해낸 것. 참새 발자국이 보기 힘든 것이라고 문자로 엄지척 이모티콘을 보냈다. 아빠의 반전매력을 참새 발자국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덕분에 5분이나 지각했지만.
한 일은 필요하다. 아다치 선생님은 나쁜 녀석이 있기 때문에 좋은 녀석이 돋보인다고 했다. 나쁜 녀석과 좋은 녀석을 싹싹 끼워 넣어야 맛있는 글이 된다고도 했다.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일(그때의 상황)을 오감으로 살리고, 그 일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잘 다는 일이다.
글쓰기는 깊이 혹은 멀리 가보는 경험이다. 깊이 들어가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멀리 나아가 내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그 과정을 해내야 한다. 그러려면 대강의 한 일을 정리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을 썼느냐보다 ‘어떻게’ 썼느냐가 중요하다. 제대로 표현하게 되면서, “아, 그거였구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이해하게 된다. 한 일은 촛불을 켜는 라이터가 되고, 나만의 해석을 하는 순간 환해진 불빛으로 공간 전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글쓰기는 아다치 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쁜 녀석 찾기 놀이 같기도 하다. 보기엔 사소하고 시시한 문장들 속에 좋은 녀석이 반드시 숨어 있을 테니, 글을 쓰며 그걸 찾아내려고 마음먹으면 된다. 한 일을 쓴다는 건 시작일 뿐, 그 일을 다시 잘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