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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Sep 23. 2019

책으로 산책하는 연남동 서점 여행

마포에 살며 마포를 여행하는 이야기 003


나는 장을 보러 나선 참이었다. 

연남동 주민들이 장을 보는 슈퍼마켓은 대개 코오롱아파트 사거리에 있는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연남동주민센터 근처의 서민할인마트, 동진시장 부근의 하모니마트인데 그날 나는 벚꽃길을 따라 서민할인마트에서 게스트들을 위한 아침식사 재료를 샀다. 그리고 연희동 방향으로 동네산책을 나섰다가 우연히 '어쩌다집' 맞은편 건물 이층에 걸린 '여행책방 사이에'라는 간판을 보게 되었다. 어쩜, 이렇게나 깊고 한적한 골목에 책방이 다 있다니, 하고 짐짓 놀라고 반가웠다. 그때만 해도 동진시장 부근의 '피노키오책방(지금의 '사슴책방'자리), '헬로인디북스' 말고는 이렇게도 연남동 한가운데로 쑥 들어온 동네책방은 없었으니 말이다. 어쩐지 동지애가 느껴졌고(동네서점이 잘 살아남아주길 바라는 전 편집자의 심정으로), 여행책방이라 반가웠고(나 역시 여행을 워낙 좋아하므로), 오래오래 부디 잘 살아남아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여행책방 사이에



경의선숲길공원 연남동 구간이 완성되자 사람들이 연남동으로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하루가 다르게 잔디밭을 점령해가는 그들을 보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그즈음 연남동의 오래된 집들은 하나둘씩 낡은 옷을 벗고 새옷으로 갈아입느라 분주했다. 벚꽃길 근처의 집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시민슈퍼(예전에 '웃어라 동해야'에 나왔었다지)와 서민할인마트 사이, 작은 단독주택 한 채가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집은 벚꽃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예쁜 집이 되었고, 이후 드라마 촬영장소('욱씨남정기')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 집의 1층에는 네다섯 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 있어서 나는 그 길을 오갈 때마다 이곳엔 어떤 가게가 들어올까 늘 궁금했는데, 예상 밖으로 꽤나 오랫동안 빈 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공간에 피아노가 들어왔다.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 음반이 채워졌다. 그리고 이런 간판이 걸렸다. '라이너 노트'. 그래서 나는 아마도 어느 피아니스트나 재지스트의 음악연습실인가보다, 생각했다. 가끔 공연을 하겠구나, 가끔 클래스를 열겠구나, 종종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겠구나 생각했다. 싱그러운 여름날 문을 활짝 열고 벚꽃길을 바라보며 재즈 공연을 해준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무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음악. 서점].


라이너노트의 맞은편 코너에 자리한 '서점리스본'을 알게 된 것은 늘 높다랗던 담장이 어느샌가 무너져 없어지고 예쁜 마당이 드러난 뒤였다. 코너집이어서 뭔가 이곳에 예쁜 가게들이 생기면 좋을 텐데 하고 항상 아쉬워하던 차에 꽃집과 서점과 찻집이 나란히 들어서다니, 감격했다. 집 주변이 이렇게 예쁜 공간으로 하나둘씩 채워지면 주민은 기쁜 법이다. 서점리스본에서는 가끔 사장님의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독립서점 헬로인디북스



이번에 제안하는 연남동 여행은 '서점 여행'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곳들은 나의 최애 연남동 공간들이다. 나는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쯤은 로컬가이드가 되어 '연남동 서점여행'을 희망하는 여행자들과 함께 이곳들을 방문한다. 여행이 끝난 뒤 여행자들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가장 인상깊었던 서점을 하나씩 꼽으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연남동을 그렇게 많이 와봤지만 서점을 이제서야 들어가봤어요!" "연남동 골목골목에 이렇게 매력적인 공간이 숨어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궁금하지만 혼자서는 차마 들어가보지 못했던 소심한 여행자들은 때로 마을여행 가이드를 필요로 한다.


홍대입구역 3번출구로 나와 경의선숲길공원을 지나 라디오작가가 운영하는 '문학' 서점 리스본, '여행' 책방 사이에, '음악'서점 라이너노트 그리고 동진시장 옆 '독립'책방 헬로인디북스까지 돌아보자. 연남동은 아니지만 경의선책거리(서교동)의 '도시인문학서점' 책방연희까지 돌아본다면 금상첨화. 아쉬운 소식 하나. 라이너노트는 현재 이사를 준비중이며, 10월에 새로운 곳에서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2시간의 마을여행으로 내 인생의 책 한 권을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인생에 정답이 필요하다면 그 답을 서점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만약 서점을 둘러봐도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정 자신이 없다면 책방 사장님께 추천을 부탁드려보자. 의외의 선택이 때론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소요시간 3시간

홍대입구역 3번출구 - 서점리스본 - 라이너노트 - 여행책방 사이에 - 헬로인디북스 - 책방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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