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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Sep 27. 2019

예술가의 공간, 연남동 공방 여행

마포에 살며 마포를 여행하는 이야기 007


책을 만들던 시절 책의 제목을 짓는 일, 최고의 카피를 떠올리는 일, 신간을 알리는 일, 새로운 시리즈의 기획 등 늘 정신노동에 시달렸다.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집중을 해도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참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대개는 밖으로 뛰쳐나가 찬 바람을  달달한 커피를 한잔 하곤 했다. 때로는 잠시 걷기도 했다. 그저 왔다갔다 하며 걷기만 해도 어느 순간 생각이 정리되며 해결책이 쑥 하고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무념무상으로 택배 포장 같은 단순노동을 삼사십 분쯤 하는 것이었다.


도피처랄까, 내겐 낮시간 동안 받는 스트레스를 상쇄시켜줄 밤의 취미가 필요했는데 내가 선택한 방법은 노래와 공예였다. 일주일에 하루는 직장인들의 합창 연습에 참가해 목청껏 소리높여 노래했고, 일주일에 이틀은 가죽공방에 가서 조용히 도면을 그리고 바느질을 해댔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공방에서 나만의 가방을 만들었다



가죽공예를 하다보니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는데, 아주 작은 소품에서 커다란 여행 가방까지 모든 작업이 모눈종이의 완벽한 설계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 모눈종이와 가죽의 원피는 평면이지만 우리의 목표인 완성품은 입체라는 것 그리고 그 입체 가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세심한 입체 레이어를 하나씩 하나씩 정교하게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죽가방을 만드는 일은 집을 짓는 일과 흡사하다. 순서를 정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데, 단 한 번이라도 순서를 바꿔 작업을 했다간 가방을 완전히 망치는 일도 생긴다. 패턴을 떠서 제작한다는 점에서는 패션과 같지만, 옷과 달리 가죽은 짱짱하게 잡아주기 위해 보강도 해야 하고, 본드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다. 가죽 원피가 상당히 고가이므로 칼질 한 번, 본드칠 한 번 잘못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이 영 서툰 나는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완성하기 위해 가방 제작 순서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적어도 스무 번쯤은 해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수강생들은 보통 나같은 문학 전공자보단 미술이나 의상, 건축 전공자가 훨씬 많았다. 평면을 입체로 척척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좌절하기를 몇 번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죽공예에 매력을 느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서 편집의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가죽과 저 가죽의 조합 여기에 이 금속으로 장식한 뒤 터프한 느낌을 주기 위해 5호날로 펀칭을 하고 초사로 바느질을 하겠다, 하는 저마다의 편집이 가능하다.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도, 재봉이 아닌 손으로 모든 것을 만들수 있는 공예라는 것 또한 내겐 큰 매력이었다(나는 상당한 기계치다). 만약 선택의 폭이 매우 넓었다면 나는 아마 시작도 하기 전에 질려버렸을지 모른다. 만약 옷처럼 반드시 재봉을 이용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면 나는 아예 시작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한땀 한땀 손수 만든 가방들은 예쁘던 그렇지 않던 내게는 하나같이 소중했다. 가방을 만들고부터, 나는 그동안 한푼두푼 모아 장만해 두었던 명품가방들을 모두 정리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십 만 원짜리 가방이 명품숍에서 구매한 백만 원짜리 가방보다 더 애착이 갔다. 이런 나의 경험을 나누고싶어 내가 매일 사용할 데일리숄더백 정도는 직접 만들어보는 데일리클래스를  언젠가는 열어볼 생각이다.


 

연남동 플리마켓에서 만난 주얼리 공방 작가의 테이블



연남동 집을 리모델링 하는 동안 잠시 투룸 월세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근처에 예쁜 가죽공방이 있었다. 이름이 예뻐 오며가며 늘 바라보게 되는 공간이었다. 대여섯 평 되는 작고 아담한 공방 안에 멋진 가방들이 유리벽 가득 전시되어 있었고 언제나 몇명의 수강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연남동에는 많은 가죽공방이 있다. 그리고 도자공방, 유리공방, 금속공방, 비누 공방, 캔들 공방, 향수 공방도 있다. 무엇이 아티스트들을 연남동으로 불러들이는 걸까. 흔히들 태국의 치앙마이나 발리의 우붓을 연남동과 비교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조금은 느긋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 동네,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은 플리마켓이 열리는 동네, 공예작가와 예술가들이 함께 연대하기 좋은 동네, 늘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동네, 숲과 실개천이 있어 산책하기 좋은 동네, 그래서 한번쯤 공방을 열고싶은 동네. 연남동에 그런 매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나 역시 연남동에 공방을 내고 싶다.



*오늘의 추천코스는 연남동의 거의 모든 가죽공방


올라까삐딴 (연남동 375-112)

젠트호프16(연남동 240-53)

슬로우 오브젝트 (연남동 366-22)

치를로 (연남동 487-126)

슈에뜨앤(연남동 487-136)

펠리즈 (연남동 561-4)

레더쿡(연남동 566-64)

리본레더스튜디오 (연남동 260-23)

소공원(연남동 385-3)

모멍 (연남동 48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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