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이 내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 보는 걸 좋아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도 내려놓기 전 “엄마 배고파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내가 워낙에 촌스러운 사람이라 특별한 것도 없는 주전부리들이었는데도, 아이들은 엄지 속 가락을 척! 들어 올리며 참 맛있게도 먹어 주었다. 그 모습이 예뻐 먹는 모습을 한 참 바라보고 있으니, 친정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예쁘냐?”
“그럼~. 내 새끼 먹는 거만 봐도 배부르지~.”
“너 니 새끼 보니 예쁘지? 너도 내 새끼여. 너 먹는 거 보면 나도 좋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갑자기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해. 엄마가 해줄께. 너 먹고 싶은 건 다 해주지!”
“그럼 난 김치수제비, 그거 해줘. 난 가끔 그게 먹고 싶은데 딴사람들은 안 좋아하니까 나 혼자 먹자고 해지지는 않더라구.”하며 나는 웃었다.
“겨우 그거여? 그려. 한 시간 정도만 있다가 건너와 잉?”
친정엄마는 대단한 거라도 나오길 기다리셨는지, 김치수제비라는 말에 살짝 허탈한 미소를 지으시며, ‘그까짓 거 금방 하지’하는 얼굴로 근처 엄마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생각해도 입맛 한번 저렴하다. 김치 수제비가 뭐야.’ 혼자 생각했다. 흔하고 친숙해서 자주 먹던 음식이기도 하지만,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이 새참으로 즐겨 먹던 것이어서 나에게는 더 익숙한 음식이었다.
오라는 시간을 못 기다리고 먼저 엄마 집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 자 마가 매콤하고 칼칼한 김치 육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묵은지 끓일 때 나는 칼칼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좋았다. 냄비에는 김치, 멸치가 언제부터 끓기 시작했는지 모르게 보글보글 한참 끓고 있는 중이었다.
“냉장고에 반죽해 놓은 거 있지, 그거 꺼내서 뚝뚝 떼어 넣어.” 우리 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반죽을 했는지, 냉장고를 여니 하얀 애기 엉덩이 같은 반죽이 있었다.
손으로 한 움큼 집어 들어 손바닥에 반죽을 올리고, 손가락을 이용해 최대한 얇게 폈다. 반죽을 얇게 펴서 하면, 흐물흐물 부드러운 밀가루에 김치 육수가 배어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좋았다. 똑똑 떼어 넣은 반죽이 냄비 바닥을 찍고 올라오면 원인모를 쾌감이 있었다.
리듬을 타듯이 넣으면, 퐁당하고, 올라오고- 넣으면, 퐁당하고, 올라온다. 반죽을 다 넣을 때 즈음이면 냄비 안은 둥둥 떠오른 익은 수제비 덩어리들과 김치가 어우러지고, 어느새 냄새도 맛있는 냄새로 바뀌어 있다. 원래 촌스러운 음식이니, 다른 음식과 달리 화려한 치장이나, 예쁘게 담을 고민도 필요 없다. 파나 양파 따위를 넣을 필요 없이 그냥 김치 맛이면 충분했다. 단지 담기 전 냄비 뚜껑을 닫아 1~2분 뜸을 들이고, 그 모습 그대로 투박한 대접에 먹을 만큼 담아내면 됐다.
“맛있냐?”
“응, 먹고 싶었어서 그런지, 더 맛있는 거 같애.”
한 그릇으로 부족해서 두 번째 그릇을 비우며, 배가 터질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나를 바라보며 뿌듯해하시는 친정엄마 얼굴에 두 배는 배불른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 순간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마터면 없을 수도 있는 지금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경기도 이주 후 얼마 되지 않아, 잘못된 임신으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만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둘 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임신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나라에서 낙태금지법이 통과됐던 시기라, 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치료받는 것 말고는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 조금 나아지면 집에 가고, 출혈이 갑자기 심해지면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오고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기억이 없다. 단지 자식이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는 친정엄마의 얼굴만 또렷이 기억할 뿐이었다.
내가 분당 차병원으로 실려 가고,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김없이 엄마가 옆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할 때는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 퇴원도 하지 못하고 병실과 응급실을 오갔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병실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응급실 내에서만 있게 되었다.
침대 밑에 놓인 실내화를 보며 내가 엄마에게 말했었다.
“내가 저 실내화를 또 신을 수 있을까?”
그간 아픈 자식 보는 심정을 헤아려서 친정엄마 앞에서는 아무 내색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그 말이 나와 버렸다.
‘···’. 평소 같으면 내 등짝을 내리치고도 남을 소리인데 엄마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 없이 살아갈 내 아이들을 걱정했고, 엄마는 한창나이에 아픈 엄마 자식을 걱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살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친정엄마는 옆에서 뭐가 먹고 싶냐고 계속 물었다. 잘 먹어야 빨리 좋아진다며. 그때도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 음식이 김치수제비였다. 문득 머릿속에 생각났었다. 나는 몸보다는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좋아하긴 하지만 자주 먹지는 않는다. 아껴 두었다가 위로가 필요할 때 친정엄마한테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