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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Feb 01. 2022

좀비생태학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창업지원사업, 어디까지 해봤니?










웹툰 코멘터리: 창업지원사업에 뛰어드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이 웹툰을 그렸던 시점은 2021년 5월쯤인데, 바로 지난주에 예비창업패키지 예산집행이 마감되었다. 최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의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단 한 사이클은 돈 것이다. 반년 남짓 하는 기간 동안 창업과 창업지원사업을 동시에 하면서(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두 가지는 매우 다른 것이다) 오만가지 희로애락을 연달아 느껴야 했다.


창업지원사업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두 번 밖에는 지원하지 못하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뭘 조심해야 하는지는 사전에 알기가 어렵고, 알만할 때가 되면 더 이상 창업지원사업을 하지 않게 되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창업지원사업에 참여할 다른 창업자 혹은 일 년 전의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시점에서 간략하게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죽을 판은 쳐다보지도 말고, 살 판에 들어갈 것


지원사업은 마치 대학입시와도 같아서,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경쟁자들이 너무 세면 소용이 없다. 금액이 너무 크거나 조건이 너무 좋으면 수백, 수천 대 일의 경쟁률에 달하는 사업들도 있다. 어떤 지원사업이건 신청서를 내는 것만으로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신경쓰고 공들여야 하는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게다가 한번 떨어지면 사기와 의욕도 상당히 저하되기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너무 경쟁률이 세거나 심사를 까다롭게 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서류와 심사를 요구하는 사업은 아예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위토피아도 창업 초기 지원금이 꽤 많고 조건도 좋았던 사업에 응모했다가 떨어졌는데, 나중에 주관기관에 물어본 결과 경쟁률이 600:1이었다는 말을 듣고 애초에 하지를 말걸 하고 후회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사업으로,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할 것


우리의 본업은 창업이지, 지원금 헌팅이 아니다. 그런데 공돈의 유혹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는다. 어떻게든 이 돈을 따내고 싶다는 마음에 심사에 잘 통과할 것 같은 사업모델로 계획서를 쓰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방식으로 나 자신을 부풀려 포장한다. 다 소용없는 짓이다. 심사위원들은 많을 때는 하루에만 수백 개의 사업계획서와 수십 개의 발표를 본다. 지원자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쉬는 숨소리만 들어도 대충 감을 잡아버리는 양반들인데 그 앞에서 블러핑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다가 지원사업은 보통 1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아무리 빨라도 3월, 심하면 8~9월에 시작해서 12월에 집행을 모두 마쳐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원래 하고 있던 것을 꾸준히 하면서 지원금을 받는 것이 아니고서야 새로운 아이템을 그때 개발해서 훌륭한 성과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원래 하려고 했던 사업, 나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지원사업을 통해 최대한의 부스트를 얻어내는 것이 가장 좋다.   



심사위원이 전능한 존재는 아니며 내 사업은 내가 가장 잘 안다.


심사위원의 인적사항은 지원자에게 알려주지 않게 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원래 무엇을 하던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지원사업 심사를 할 정도면 교수직을 맡고 있거나,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수백, 수천 건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안목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심사위원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일 뿐,  창업하는 사람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도 아니다. 게다가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 시장에서 그 경쟁력이 검증되지 않은 경우, 혹은 심사위원이 관심을 두지 않는 영역일 경우 그들도 우리의 사업모델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내가 만나본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자기 일에 진지하고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지원금이 공익적 차원으로 잘 쓰이도록 기여하는 데에 나름의 사명감을 가진 분들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황당한 경우도 있었는데, 위토피아 창업 전 내일학교에서 참여했던 지원사업에서는 어떤 심사위원이 매우 진지한 얼굴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제가 좀비에 대해서 좀 잘 아는데요. 좀비는 뛰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그런데 왜 이 영상에서는 좀비가 뛰죠? 드라마 '킹덤'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하셨네요. 그리고 좀비가 너무 혐오스러운데요.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워딩이 저랬다. 자칭 좀비생태학 전문가 앞에서 나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아 그렇군요 좀비는 뛰지 않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군요. 저희가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좀비1로 출연했는데 혐오감을 드렸다니 정말 송구합니다 뭐 이런 말을 하면서 빨리 그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도했던 것 같다.   



나랏돈 잘못 쓰면 쇠고랑 찬다. 1원까지 클린하게


국가지원사업에서 일부러 작정하고 돈을 빼돌리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규정을 잘 모르고 회계가 어렵고 일하느라 바빠서 뭔가를 깜빡한 나머지 실수를 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을 보완하기 위해 모든 지원사업에는 매니저가 있고 우리의 문서를 검토하며 문제가 될 부분들을 사전에 알려준다.


하지만 매니저도 사람이므로 실수를 할 수 있는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나보다도 사업에 대해 더 모르는 신입 매니저가 중간에 갑자기 배정되는 경우도 있다. (a.k.a. 전임자가 인수인계도 안 하고 퇴사했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매니저는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실수에 따르는 책임을 대신 져 주지 않는다. 한 다리 건너서 들은 이야기로는 한 사업에서 감사 도중 문제 행위가 발견되자 지난 5년간 해당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을 전수 조사하여 비슷한 사례를 십수 건 적발하여 관련자들이 모조리 형사재판에 회부되었다든지, 지원금 집행을 잘못했다가 전액 환수 처리되어 회사가 망했다든지 하는, 공포스러운 지원사업 스토리도 있었다.


사람은 욕망의 동물인 만큼 내 통장에 일단 돈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즐거운 일과 살 수 있는 멋진 물건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닐지 모르겠지만... 모든 규정에는 이유가 있고 나랏돈은 단돈 1원에도 근거와 증빙이 필요하며 이 절차를 무시했다가는 내 앞전에 창의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실천했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생 종 치기 십상이다. 그냥 매니저가 하라는 대로, 운영지침이 시키는 대로, 소탐대실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 모르면 알 때까지 물어보고, 왜 안 되는지 알았으면 포기하는 게 낫다.   



일정은 체크하고 체크하고 또 체크한다.


대부분의 지원사업은 그 해 안에 집행이 끝나야 한다. 더러 해를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1월을 넘기지 않는 것 같다. 이 사업에는 각종 마감이 존재하는데, 국가기관이 하는 일이니만큼 마감을 어겼다가는 크나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출 마감시한과 발표심사일이다. 요즘은 온라인 접수를 하기 때문에 마감시간 정각이면 접수가 막힌다. 회원가입은 미리미리, 부속서류는 일주일 전에 발급해놓고, 사업계획서는 적어도 마감 하루 전에 완료한 후 여유 있게 지원하는 것이 좋다.


일단 선정된다면 각종 교육일정이 있는데 이 교육을 빼먹으면 ‘제재, 환수, 처벌’과 같이 무시무시한 단어가 들어간 메일과 카톡을 받게 된다. 그냥 내가 받는 돈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일정을 잘 챙겨야 한다. 각종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 마감일도 당연히 챙겨야 한다. 얼핏 보면 국가지원사업이 대학교 과제 발표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건 실전이라 봐주질 않는다. 꼭 좋은 평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마지노선은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짜 중요한 일정은 ‘예산 변경 마감일’이다. 지원사업을 하다 보면 최초에 제출한 대로 예산을 쓸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업체를 못 찾기도 하고, 계획할 땐 좋을 것 같았는데 찾아보니 말도 안 되는 영역에 예산을 할당한 경우도 있고, 사려고 했던 물건의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거나, 인건비를 지급했는데 4대 보험 계산을 잘못해서 금액이 남는다거나 모자란다거나 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따라서 사업계획서, 특히 예산서를 수정해야 하는 시점이 오는데 대개의 사업들이 예산 변경의 횟수와 방법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해두고 있다. 사전에 승인된 사업계획서를 수정하는 것이니만큼,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부분에서는 '유도리'가 있을지 몰라도, 이 사업계획서 변경 마감일을 놓치면 도리가 없다. 잘못했다가는 필요도 없는 곳에 돈을 써버리거나 쓰지도 못해서 남은 돈을 반납해야 하는 매우 슬픈 상황이 될 수 있으므로 매우 큰 달력을 사다가 눈에 띄는 곳에 걸어놓고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여러 개 쳐 놓도록 하자.



과욕은 무욕 못하다, 중복만은 피할 것


모든 국가지원사업 관련법과 규정은 한 가지 사업에 둘 이상의 지원금을 수령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것이 전산화된 지금, 지자체 공무원들은 정기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이중으로 지원금을 수령하지 않은지 체크하는 절차가 존재한다.


문제는 중복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는 시간이 꽤 지난 후이고, 사업도 상당 부분 진행되었을 경우(=돈을 썼을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개인 혹은 법인이 지원금 자체를 복수로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같은 아이템으로 의심되거나, 같은 사람에게 들어가는 인건비가 중복될 경우에는 반드시 환수를 하게 되어 있다. 이 경우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의를 가지고 세금을 훔쳐가려 했다기보다는, 뭘 모르는 상태에서 의욕이 넘친 나머지 여러 사업에 도전하다가 문제가 생긴 것일 터이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려면 사전에 운영지침을 꼼꼼히 읽고, 지원사업을 하는 ‘양쪽 모두’의 매니저에게 해당 사업이 중복될 여지가 없는지 사전에 물어보아야 한다. 매니저에 따라서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잘 알아보지 않고 ‘안 될 거예요. 하지 마세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충분히 시간을 들여 설득해서 매니저로 하여금 상급기관에 문의해서 책임 있는 답변을 듣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모든 질문과 답변은 메일로 주고받아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일자리지원금과 두루누리지원금과 같은, 직원 고용 시 자동으로 신청되는 서류들과 인건비 지원이 겹치는 경우라고 한다. 특히 두루누리 지원금은 4대 보험과 연동되어 있는 데다가 선지출 후지원이라서 산출근거와 계산방법을 이해하려면 거의 수능 수학 문제를 풀 수준의 인내와 노력을 발휘해야 한다. 내가 권하는 방법은, 국가지원사업으로 인건비 지원을 받을 때는 그냥 일자리지원금과 두루누리 지원금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돈 문제 이전에 중복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페이퍼워크(사유서라고 쓰고 반성문이라고 읽는다)에 머리칼이 한 움큼 빠지고 멀쩡했던 이빨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 외에 소소한 것들


선지원 후창업

창업지원사업 중 상당수는 창업 그 자체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창업을 해버렸을 경우 도전할 수 있는 선택지가 확 줄어든다는 뜻이다. 기관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만큼 세금을 써서 창업을 시켰고 그 업체가 매출을 이러저러하게 냈어요'라고 상급기관에 보고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지원을 신청하지 말고, 지원사업에 선정된 뒤에 사업자등록을 해야 한다.


쓰면 반드시 떨어지는 마법의 단어

4차 산업혁명, AI, 광고수익모델, 자연스러운 입소문 등 왠지 쓰면 좋을 것 같지만 썼다간 필패하는 단어들이 있다. 주로 당시에 과도하게 유행하거나 (=남들도 같은 얘기 주구창창 하고있어서 심사위원 귀에 딱지가 앉았음) 실현만 되면 엄청나게 좋겠지만 실현하기가 대단히 어렵거나 하는 주제들이다. 내가 그 분야에 인생을 바친 전문가가 아니라면 있어 보이는 단어라서 괜히 넣는 짓은 되도록 안 하는 게 좋다.


운영지침=바이블

이상하게 모집공고문에는 중요한 사항이 잘 안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국가지원사업은 매년 반복되기 때문에 대개 구글에 검색해보면 전년도에 나온 해당 사업의 운영지침이 hwp 파일로 올라와있게 마련이다. 검색으로 안 나오면 주관기관에 전화해서 요청하면 보내준다. 이 운영지침, 특히 사업비 관련 항목 및 제재사항, 환수요건, 참가 제한 사항을 사전에 꼼꼼히 읽어서 내가 이 사업의 조건에서 애초에 배제되는 존재는 아닌지, 사업비 제약이 너무 엄격해서 이 돈 쓰다가는 화병을 얻을 것 같은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자잘한 건 그냥 내돈내산

처음 지원사업을 하게 되면 그동안 필요했던 오만가지 것들을 다 넣어서 사려고 하는데... 주문 한 건당 챙겨야 하는 서류가 농담 안 하고 최소 6개에서 10개가 넘는다. 사용승인요청서, 지급요청서, 지출결의서, 견적서, 비교견적서, 사업자등록증, 통장사본, 세금계산서, 검수조서, 거래명세서, 사진대지와 같은 증빙을 매 건마다 출력하여 풀로 붙여서(!) 내라는 경우도 있었다. A4 용지 같은 건 그냥 지원금 말고 내돈내산 하는 게 낫다. 어떤 지원사업은 오픈마켓 구매를 금지하거나 아예 인터넷 구매를 불허하므로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사야 할 수도 있다. 지원금은 그냥 덩어리가 큰 목돈으로 지출하는 것이 들어가는 노동력 대비 효과로 보면 가장 나은 듯하다.




글 & 웹툰콘티: 김가람

그림: 첼시(권지민)



창업지원사업에 뛰어들게 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상세하게 정리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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