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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Apr 15. 2023

회를 먹으러 갔을 뿐인데 요트선수가 되다니

몸치인 내가 요트에 입문하게 된 사연

내가 요트선수가 된 황당한 사건은, 울진에 회를 먹으러 간 날 시작되었다.


나는 원체 스포츠와는 대단히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일단 공을 싫어한다. 그놈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몸도 뻣뻣하고,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는 것을 그리 즐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2021년의 어느 여름날, 밤낮없이 후아 MVP를 만드느라 피폐해진 상태에서 누군가 던진, ‘회나 먹으러 갈까?’라는 제안에 냉큼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사는 봉화에서 울진으로 가려면 원래 두 시간 정도 걸려서, 동네 마실 나가듯 가기엔 좀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그런데 얼마 전 새로 도로가 뚫렸고, 바다가 한 시간 거리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깡시골에 살지만 라이프스타일은 미국식이다. 차로 한 시간이면 그냥 옆동네다. 마트에 가든 영화를 보든 고속버스를 타든 뭐든 하려면 한 시간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은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다. 차는 막히지 않았고, 날씨도 좋았으며, 바이럴 마케팅의 지뢰를 피해 찾아낸 횟집은 정말 괜찮았고, 처음 먹어본 물곰탕이라는 것은 식감이 요상했지만 꽤 맛있었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소화도 시킬 겸 바닷가 산책이라도 하자고 돌아다니다가 문득 길가에 있는 새 건물이 눈에 띄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울진군요트학교’


울진의 특산물은 대게와 요트학교라고 합니다



울진에 요트학교가 있다고?


예전부터 우리는 요트에 관심이 있었다. 2005년 춘천에서 처음 대안학교를 시작할 때, 내일학교 설립자 민영주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요트를 가르쳐서 대양을 항해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를 배우게 하려 했다. 그러려면 욕조만한 크기에 작은 돛이 달린, 1인승 딩기부터 배워야 했다. 그때는 부산 수영만에서만 딩기 교육을 했고, 그래서 당시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부산까지 데려가서 함께 무수히 물에 빠져가면서 딩기를 배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별로 좋지가 않다. 남들이 안 하는 교육만 골라서 하는 우리를 고깝게 본 강원도교육청에서 요트 교육을 한다는 말을 듣고는 무슨 러시아의 대부호가 타는 호화 요트라도 상상했는지, ‘귀족 교육을 한다’며 탄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양반들이 딩기를 한번 보기라도 했다면 귀족은커녕 ‘15소년 표류기’의 비주얼에 더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았을텐데. 그렇게 요트를 활용한 우리의 교육적 시도는 끝이 났다. 하긴, 그 노무현 대통령도 변호사 시절 부산 앞바다에서 딩기를 배우다가 호화 요트 탄다고 욕을 먹었는데, 우리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호화 요트라니... 연회장은 고사하고 화장실도 없다고요 (출처: Flickr)


아무튼 떠올리기만 해도 입맛이 씁쓰름해지는 그 결말 이후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는 회를 먹으러 갔다가 울진군 요트학교에 발을 들였고, 사무실로 들어가 물었다. ‘여기에서 요트타는 걸 가르쳐 주나요?’


나중에 들었지만 그때 우리를 맞아주었던 손병욱 본부장님은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왜냐면 우리는 오랜만에 바다에 간다는 기분에 들떠서 몸빼 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대충 끌고 나왔을뿐더러, 혁신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외모라도 해봐야 한다는 취지로 다들 머리색깔이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대화를 나눠보자 본부장님은 우리가 지나가던 폭주족이 아니라 진짜로 요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지하게 안내를 해 주었다.


혁신을 하려면 이정도는 해야... by 헤어컬러 디자이너 민진하


요트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1~2인승 딩기는 카약이나 자전거 같은 무동력 탈것이지만, 4~5인승 킬보트가 되면 5마력쯤 되는 작은 엔진이 붙는다. 바다나 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까만 구명보트 혹은 작은 고깃배와 비슷한 크기다. 그보다 커지면 선내에 엔진이 들어가는데, 일종의 캠핑카 같은 느낌으로 배 안에 침실과 화장실, 주방이 있고 10명 정도 탈 수 있다.


그 위로는 점점 커질수록 대중이 없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들은 돛은 안 올리고 엔진으로만 가는 ‘파워요트’를 선호하는 것 같은데 데크가 넓어서 일광욕이나 선상파티를 할 수 있는 배도 있고, 배 길이만 100미터쯤 되는 대형 크루즈 요트는 객실과 연회장과 당구장과 수영장이 딸려 있어 바다 위를 떠다니는 호텔 수준이다. 호화 요트라고 칭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배들을 ‘요트’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묶는 것이 매우 부조리하게 느껴지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이런 배와


이런 배가 같은 명칭을 쓴다니 말이 되는가 (출처: Wikimedia commons)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진정한 ‘요알못’이었기 때문에, 요트를 타려면 꼭 면허가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사실 요트를 운전하는 선장인 ‘스키퍼’만 면허가 있으면 되고, 엔진이 없는 딩기의 경우 아예 면허가 필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요트 면허를 따거나 면제교육을 받는 것으로 요트에 입문하는 것 같았다. 요트 면허의 정식 명칭은 ‘수상동력레저기구 요트조종면허’인데 엔진 달린 탈 것의 운전면허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12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요트로 시험을 본다.


실제로 우리가 울진에서 요트면허 면제교육을 받을 때 탔던 40피트짜리 세일링 요트


울진군요트학교는 요트 면허시험을 대신하는 면제교육을 시행하는 곳이고, 한 달에 2~3회, 한 번에 10~20명 가량의 사람들이 교육을 수료하고 있었다. 그날 함께 갔던 멤버들은 전부 MBTI가 P성향이었던 것 같다. 다짜고짜 언제 교육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울진군 요트학교는 매우 인기 있는 면제교육기관이라 두어 달은 기다려야 했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후 실망하고 돌아서는 우리가 안되어 보였는지, 본부장님은 ‘다음 주에 딩기 교육이 있는데 그걸 받아보겠냐’고 물었다.


2005년 당시 너무 어려서 딩기를 못 탔던 민진하는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공은 싫어하지만 뭔가를 타는 것은 좋아하기에 하겠다고 말했다. 원래 바다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던 이현도 손을 얹었다. 그날 회를 안 먹으러 갔던 민진영은 나중에 얘기를 듣더니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나섰다.


그래서 우리는 회를 먹으러 울진에 갔다가 발적으로 요트를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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