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를 처음 시작할 때 무엇부터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나 같은 일반인은 ‘요트면허부터 따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요트선수로서 경력을 시작한 선수 출신(줄여서 ‘선출’이라고들 한다)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요트를 배우려면 딩기부터 시작해야지!"
딩기dinghy란 돛이 달린 1~2인승 배로, 피노키오에서 제페토 할아버지가 고래 뱃속으로 타고 들어갔던 손바닥만한 돛배가 바로 딩기다. 작은 딩기는 길이가 2.3m부터 시작하는데 몸무게가 30~50kg 정도 되는 유소년이 타는 ‘옵티미스트Optimist’가 이 크기다. 그보다 무거운 사람들은 ‘레이저Laser’ 급을 타며 세일(돛)의 크기도 그에 비례해서 커진다. 세일이 커진다는 것은 더 많은 바람을 받는다는 것이고, 그 바람의 무게를 내 팔힘으로 콘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올림픽에 나가려면 이런 요트를 타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 배운 딩기는 ‘피코Pico’와 ‘토파즈Topaz’로 이것은 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입문용으로 접근하기 쉽게 간소화된 버전이다. 배 사이즈는 레이저와 비슷하지만 세일이 더 작고 구조가 간단하다. 배 자체도 더 무거워서 다소 둔탁하고 느리게 간다. 뭐든 느린 것보단 빨리 가는 게 좋지 않겠냐 싶겠지만 바다 위에서 배를 마음대로 조종하지 못했다간 말 그대로 생명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레이저를 타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처음 딩기를 탔을 때 당황스러운 부분은, 바다 위에서는 한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종류의 탈 것은 어떻게 할 줄 모르면 적어도 그냥 멈춰 있을 수는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바람을 동력원 삼아 움직이는 딩기는 그럴 수가 없다. 제대로 배를 조종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바다로 나가면, 마치 허리케인에 휩쓸린 도로시라도 된 것처럼 바람이 내키는 대로 속절없이 끌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딩기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뒤집힌 배를 세우는 법’부터 시작했다. 그래야 물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배가 뒤집힌다고? 그렇다. 딩기는 아주 작은 배라서, 조금만 돌풍이 불거나 조종하는 사람이 아차 실수를 하면 배가 뒤집힐 수 있다. 물론 순식간에 배가 홱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어… 어… 하는 사이에 배가 스윽 기울어져서 90도로 수면과 평행이 되며 누웠다가, 그대로 두면 세일이 수면 아래로 들어가면서 배가 밑면을 벌러덩 드러낸 채 180도로 뒤집혀버린다. 이것을 ‘캡사이즈capsize’라고 한다. 180도로 뒤집힌 것이 ‘완캡’, 90도는 ‘반캡’이라고들 말한다.
배 좀 뒤집어졌다고 세상 안 무너집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캡사이즈는 처음 보면 배가 침몰하는 듯한 비주얼이 좀 무시무시하긴 하지만, 일단 딩기는 자체 부력이 있어서 가라앉지 않는다. 그리고 뒤집힌 배를 복원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모든 요트는 바람을 받는 세일의 반대쪽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주기 위한 ‘킬keel’이라는 무게추가 배 밑면에 달려 있다. 배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배 무게의 절반 이상을 킬이 차지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 킬 때문에 요트는 바람을 받으면 약간씩 기울어졌다가 이내 오뚝이처럼 다시 복원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딩기는 가벼운 배라서 캡사이즈가 되지만, 사실 전장이 10m 이상 되는 배들은 태풍이라도 불지 않는 한 뒤집히는 일이 거의 없다(그리고 태풍이 불 때는 항해하면 안 된다!).
아무튼 딩기에도 킬 역할을 하는 ‘대거보드daggerboard’라는 것이 있는데, 뒤집힌 배를 원상복구하기 위해서는 배의 밑면에 툭 튀어나온 대거보드를 잡은 채 내 몸무게를 전부 싣고 매달려 있으면 물에 빠졌던 배가 서서히 일어난다. 그 상태에서 다시 배로 기어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몸무게가 무거울수록 복원에 유리하다는 것은 안 비밀.. (출처: flickr-Michael Storer)
원리는 간단하지만 바다 한복판에서 배가 뒤집혀 물에 빠졌는데 당황하지 않고 배를 복원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트학교에서는 먼저 우리를 물이 허리 정도까지 차오르는 요트 진입용 경사로, ‘슬립웨이slipway’에서 캡사이즈 훈련을 시켰다. 딩기를 90도로 쓰러뜨려 놓고, 대거보드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얼마만큼의 시간과 힘을 들여야 딩기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오는지 체험하게 한 것이다.
이 시간이 생각보다 꽤 오래 걸리는데, 세일이 물에 젖어서 표면장력 때문에 저항을 받기 때문이다. 대거보드에 매달린 채 한 5초에서 10초쯤 버티면 내 몸무게가 표면장력을 이기면서 배가 스윽하고 올라온다. 이 타이밍을 모르면 당황한 나머지 바닷속에서 패닉에 빠질 수 있다. 얕은 곳에서 몇 번 해 보니 감이 생겼고, 실제로 딩기를 타며 캡사이즈 복원을 못해서 문제가 된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캡사이즈 복원을 익힌 후아 멤버들은 각자 한 대씩 딩기를 몰고 바다를 향해 떠났다. 그때까지는 미처 몰랐다. 내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망망대해 위에서 좌절과 분노에 휩싸인 채 허공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