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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May 01. 2023

제가 요트면허 있는 사람입니다

요트면허 면제교육과정으로 요트 배우기

딩기를 타고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바람과 사투를 벌이 여름이 지나갈 즈음, 예약해두었던 요트 면허 면제교육 일정이 다가왔다. 알고 보니 한국의 여름은 바람이 없어서, 바람을 동력원 삼아야 하는 세일링 요트를 타기에 썩 좋지는 않다고 한다. 봄과 가을이 세일링을 배우기엔 최적의 시기였다.


Photo by Markos Mant(unsplash)


전부 이수하면 요트면허증을 발급해 주는 면제교육은 총 5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하루에 8시간이나 풀타임으로 해야 하기에 만만찮은 과정이었다. 주중에 월-금 5일 연속으로 배우는 과정도 있었지만 우리는 금토일, 토일 이렇게 2주간 배울 수 있는 주말반을 신청했다.


첫 시간에는 우리가 딩기를 배우기 전에 먼저 알아야 했을 요트의 각 부위 명칭과 기초 항해이론을 배웠다. 지금이야 배들이 다 엔진으로 항해하지만,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전 대부분의 배는 바람으로 항해를 했다. 그래서인지 용어들이 오래되었고, 그래서인지 스펠링도 요상했다. 킬keel이니, 클루clew니, 러프luff니, 헬리어드halyard니 하는 식인데 찾아보면 유래가 있긴 하지만 대항해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았다. 아무튼 전부 영어인데 이걸 다 알지 못하면 배 위에서 소통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일단 다 외워야 했다.


왜 외우냐구요? 명칭을 모르면 없어 보이거든요...


요트 항해 이론의 기본, 세일을 조종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한 Point of Sail(Wind Clock) 배웠음은 물론이다. 이걸 모르면 바람을 읽고 돛sail으로 배를 움직이는, '세일링sailing'의 시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윈드클락.. 좋아하세요?



윈드클락의 핵심은 이것이다. 바람이 불며 만들어내는 직선(풍축)과, 내 배가 가려는 방향이 만들어내는 각이 있다. 그 각이 30-45도면 크로스 홀드Close hauled, 90도면 빔 리치Beam reach, 135도면 브로드 리치Broad reach, 180도면 러닝 Running이라고 한다. 이것이 코스다.



크로스 홀드: 오늘도 45도로 돛에 바람이 스치운다



그렇다면 그 코스로 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늘에서 배를 내려다봤을 때, 각 코스마다 세일이 배 밖으로 나가는 정도가 정해져 있다. 크로스 홀드의 경우 메인 세일의 뾰족한 꼭짓점이 배의 한쪽 선미와 일치하고, 러닝 코스 때는 세일과 배가 거의 90도쯤 되는 식이다. 배가 커지고 세일의 개수가 늘어나면 좀 더 복잡해지지만, 어느 배든 크로스 홀드 - 빔 리치 - 브로드 리치 - 러닝의 순서대로 세일이 점점 더 배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같다.



바람은 왼쪽 45도에서 부는데 왜 배가 앞으로 가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Photo by Kontaktabzug(flickr)


크로스 홀드를 제대로 탄 배는 바람의 반대쪽으로 요트 전체가 기울어진다. 이것을 힐heel 됐다고 하는데, 당장이라도 배가 침몰할 듯한 무서운 비주얼과 달리 이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다. 바람이 심할 때는 세일이 바다에 닿을 것처럼 기울기도 하는데, 킬이 무게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에 웬간해서는 배가 넘어가진 않는다. 다만 속도가 느려지는데, 이럴 땐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이 세일의 반대쪽으로 가서 무게를 실어주면 배가 다시 스윽하고 일어나며 속도가 빨라진다. 이것을 '힐 잡는다'라고 표현한다. 요트대회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무슨 빨래처럼 배 가장자리에 널려 있다. 이것을 '하이크 아웃hike out'이라고 하며, 배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테크닉이다.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열심히 경기중인 요트선수들 Photo by Jennifer Firmenich


코스가 바뀔 때마다 크루들은 세일에 연결된 시트를 풀거나 당겨서 세일을 적당한 위치에 고정시킨다. 그리고 틸러나 헬름으로 방향을 조정하면 배는 내가 의도한 방향대로 가게 된다. 세일이 적당한 위치에 있지 않으면 바람을 받지 못해 배가 멈추거나, 과도하게 바람을 받아 배가 옆으로 기울어지는 식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풍상으로 갈 때에는 똑바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지그재그로 가야 한다. 풍상에서 한 방향으로 가다가 90도로 선회하는 것을 택킹tacking이라고 한다. 택킹 전에 세일이 오른쪽에 있었다면 택킹을 하면서 왼쪽으로 가게 하고, 그에 따라서 사람들도 배 반대편으로 움직여야 한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한번 보시는 게 낫겠지요...?



바람이 불어 가는 방향, 풍하로 갈 때 '데드 런dead run' 코스라고 해서 완전히 90도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 코스보다는 15도에서 45도가량 틀어진 '브로드 리치broad reach'가 더 빠르고 안정성도 높다. 그래서 풍하로 갈 때도 이따금씩 90도 선회를 해야 하는데, 이것을 자이빙Gybing이라고 한다.




자이빙을 할 때는 메인 세일을 고정하는 '붐boom'이라는 가로로 된 파이프가 느닷없이 휙 하고 사람들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가는데, 이때 꼿꼿하게 서 있다가는 붐에 머리를 부딪힐 수 있고 심할 경우 기절하거나 바다로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크루들은 스키퍼의 자이빙 사인에 따라 몸을 푹 숙이고 붐이 넘어가는 것을 본 후 움직여야 한다.


실제로 항해를 할 때에는 택킹과 자이빙을 반복하는 것이 세일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러 사람이 손발을 맞추어야 하는 것도, 이때 배 위에 탄 사람들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배가 제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바다 위에서 배를 타는 활동이니만큼 안전교육도 중요했다. 조난당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연막탄이나 조명기구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에 빠지면 뭐부터 해야 하는지와 CPR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배웠다. 원래는 무선통신시스템을 이용해서 구난신호("메이데이! 메이데이!")를 보내야 하지만, 사실 요즘엔 그냥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게 가장 빠르다고 한다. 웬만한 근해에서는 핸드폰이 뻥뻥 잘 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핸드폰을 방수팩에 넣어서 구명조끼에 가지고 다니면 마음이 놓인다.


‘매듭법’도 빼놓을 수 없다. 요트를 보면 저 줄들이 뭐에 다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열몇 가지의 시트가 배 여기저기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 시트를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서 사람과 배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기 때문에, 매듭법은 꽤 중요했다. 면제교육에서는 다섯 가지의 매듭을 배우는데 팔자매듭처쉬운 것도 있지만 바우라인bowline이나 클로브히치clove hitch 같은 매듭은 아무리 설명을 듣고 영상을 봐도 직접 해보며 손으로 익히기 전까지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같은 매듭도 배 안쪽에서 맬 때와 정박한 배 바깥쪽에서 맬 때, 세일을 아래에 둔 채로 묶을 때와 세일을 머리 위에 둔 채로 묶을 때처럼 제각각 다른 상황에서 자유자재로 줄 알아야 했다.


이런 걸 다 했던 것을 보면 해적들도 머리가 좋았음에 틀림없다.


실기는 역시 연습이 최고다. 우리는 매듭법을 배운 후 운동화끈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무 데서나 매듭을 묶어보곤 했다. 그런데 배를 정박할 때 쓰는 크로스비트crossbit 매듭과 클리트 히치cleat hitch는 아무 데서나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요트학교에서는 두 매듭을 연습하기 위한 판이 있었는데, 우리 요트용품 쇼핑몰에서 크로스비트와 클리트를 산 후 똑같이 만들어 집에서 틈틈이 연습했다.


저희가 이렇게나 요트에 진심입니다...


하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기대되는 것은 실제로 배를 타고 움직여보는 요트 실습이었다. 실습을 하기 전 무슨 포지션이 있는지, 각 포지션은 무슨 역할을 하는지를 먼저 배웠다. 요트는 팀워크의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여러 명이  몸처럼 움직여야 비로소 배가 람을 타고 움직일 수 있다. 사실 후아팀이 요트를 배우게 된 것도 스타트업의 알파이자 오메가, '팀워크'를 몸으로 익히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흔히 선장이라고 말하는 배의 리더는 스키퍼skipper라고 한다. 배를 움직이는 헬름이나 러더(틸러)를 쥐고 있으면서, 크루들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은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말을 안 듣는다고 스키퍼가 크루를 바닷속으로 던져버릴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배 위에서 스키퍼의 명령은 절대적이다(다만 경기 중에 스키퍼가 자꾸 삽질을 하면 크루들이 항의의 의미로 배 갑판을 쾅쾅 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것이 헬름. 마도로스의 헬름.


7미터 이상의 킬보트에는 보통 메인세일main sail과 집세일jib sail이라는 두 개의 돛이 달려 있다. 이중 메인 세일을 조종하는 사람을 메인 트리머main trimmer, 집 세일을 조종하는 사람 집 트리머jib trimmer라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집 트리머를 윈치맨winchman이라고도 한다.  시트를 감아두는 원통형의 부속을 '윈치'라고 하기 때문에 그런 명칭을 쓰는데, 역할이나 부속을 가리킬 때 미국 명칭과 영국 명칭도 조금씩 호칭이 다 때가 있다고 한다.


이것이 윈치. 안에 기어가 있기 때문에 적은 힘을 들이고도 세일을 조종할 수 있다.


요트가 크면 돛이 스키퍼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배 앞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바우맨bowman이라는 역할이 있다. 이 사람은 바우(bow, 배 앞머리) 서서 바다 위에 부표나 폐그물 같은 장애물이 없는지, 멀리서 접근하는 배가 있는지, 현재 바람의 상태는 어떠한지관찰하고 스키퍼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일단 스키퍼, 메인 트리머, 집 트리머, 바우맨 이렇게 4명이 있으면 메인 세일과 집 세일 두 개만 써서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 작은 배일 경우에는 스키퍼가 메인 트리머를 겸하므로 3명끼리도 가능하다.


그 외에도 피트맨pitman이니, 마스트맨mastman이니, 택티션tactician이니, 스트레터지스트strategist니, 헬름스맨helmsman이니, 힐맨heelman이니 하는 여러 역할이 있지만, 면제교육을 받는 생초짜 시점에서는  역할까지는 해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면제교육을 받은 후 몇달 뒤 실제로 각 역할들을 해보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쨌든 우리는 돌아가면서 이 역할을 해보고, 스키퍼로서 배를 계류석에 넣었다 뺐다 주차를 해 보고, 엔진으로 항해하는 ‘기주’를 하다가 돛을 펴서 항해하는 ‘범주’도 해보는 식으로 요트 운항의 ‘맛보기’를 했다.


그렇다. ‘맛보기’였다. 면제교육은 시간을 채우면 되는 거긴 하지만 요트학교에서는 교육생들이 좀 더 긴장하고 열심히 하라는 취지로 마지막날 이론과 실기시험을 봤기 때문에 열심히 외우고 공부해서 시험에 통과했다. 그러나 5일의 교육만으로 문외한이 짠 하고 요티yachtie로 거듭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여러 역할과 다양한 날씨, 많은 바다와 이런저런 상황 등에서 경험을 해 보아야 비로소 어느 요트를 타더라도 한 사람 역할을 하는 크루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트를 타기 위해 국가기관이 면허를 주는 이 시스템은 참으로 한국적인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국가공인 요트면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은 역사와 전통이 200년쯤 있는 요트 클럽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몇 달에서 몇 년간 차근차근 배우면서 서서히 경험 있는 요티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면제교육을 받은 끝에 국가가 인정하는 수상동력레저기구 요트조종면허를 취득했다. 면제교육을 이수하면 요트면허 시험장에서 테스트를 통과한 것과 같은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운전면허증 비슷하게 생긴 요트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요트면허를 딴 사람들이 그다음부터 무엇을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은 마치 각본을 짠 것처럼 정해진 수순으로, 다음에는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요트면허를 딴 뒤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써 보겠다.





* 참고하세요: 이 글에서 다룬 요트면허 면제교육 내용은 2021년 울진군 요트학교에서 진행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현재 시행되는 요트학교들의 면제교육 내용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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