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매년 천여 명의 사람이 수상동력레저기구 요트조종면허를 취득한다. 자료에 나와있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만 해도 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면허를 취득했다. 이 사람들이 전부 요트를 타고 있다면 지금쯤 동해바다에 서퍼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처럼 마리나마다 요트와 요티가 넘쳐나야 할 텐데… 그 많던 요트면허 보유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by Tony Pham
이제 막 면허를 딴 초보가 차를 운전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폐차 직전의 중고차를 사서 여기저기 긁어가며 연습할 수도 있고, 미친 척 부모님 차를 몰고 가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다음에 운전의 오의를 깨달을 수도 있으며, 연수기관에 돈을 주고 훈련을 한 다음 서서히 실력을 키워갈 수 있다. 물론 여유가 된다면 곧바로 새 차를 뽑아서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요트라는 것은 차와 달리 새것이든 중고든 구하기가 힘들뿐더러, 혼자서는 운행할 수도 없고, 요트조종면허를 땄다고 해서 바로 배를 몰고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요트면허를 딴 후 꿈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난관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자.
요트를 샀는데 왜 타지를 못하니
요트면허를 딴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가, 면허를 따자마자 배를 사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꽤 많다. 운전면허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면허를 땄으니 이제 배를 사면 되겠지?'라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요트라고 해도 종류가 천차만별이라, 나에게 어떤 요트가 맞을지는 타봐야 안다. 대회 출전을 목표로 딩기를 배울지, 롤러코스터 저리 가라 할 다이나믹한 킬보트 세일링을 할지, 여유롭게 배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바다 위의 캠핑과 비슷한 연근해 세일링을 즐길지, 아니면 혼자서 세계일주라도 할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종류의 배가 필요하다.
by Ludomił Sawicki(좌) & Michael Held(우)
게다가 딩기를 타보니 물에 빠지는 게 생각보다두렵거나, 작은 배는 괜찮은데 큰 배만 타면 멀미를 하거나, 너무 다이나믹한 배를 탔더니 몸이 힘들거나 할 수도 있어서 배를 사기 전에는 꼭 다양한 날씨에서 다양한 요트를 충분히 타 봐야 한다.
보통 요트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로망’은 원거리 항해를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선실도 갖춰져 있으며, 10명은 너끈히 탈 수 있을만한 배를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규모의 배는 관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중고로 샀을 경우 어딘가 문제가 있거나 곧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중고로 거래되는 대부분의 요트는 일본에서 건조된 지 20년이 지나 행정적으로 폐선처분을 받은 배인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법적으로 20년이 지난 요트를 폐기처분하게 되어 있는데, 한국은 그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이런 배들의 상당수가 한국으로 들어온다. 관리만 잘했다면 20년이 지나도 괜찮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엔진에 문제가 있거나 선실에서 비가 새거나 변기가 막히거나 너무 오래되어서 부품이 단종되었거나 하는 식이다. 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중고차를 샀다가 침수차나 사고차량을 사기도 하고 바가지를 쓰기도 쉬운 것처럼, 요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 역시 중고를 살 경우 제대로 된 가격에 괜찮은 요트를 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거울아 거울아, 어떤 요트가 쓸만한 요트니? (by Jeriden Villegas)
멀쩡하게 잘 굴러가는 요트를 샀다 하더라도, 엔진 달린 탈 것이란 타다 보면 언젠가는 뭔가 문제가 생긴다. 문제는 요트가 자동차처럼 지역별로 정비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 해도 그 정비회사가 내 요트에 대해 잘 알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트는 타는 사람들이 직접 고쳐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트의 기종이 천차만별이기도 하고, 바다 위에서 항해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자가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본업이 따로 있는 동호인이 배를 고치는데 들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요트를 샀는데 수리하느라 1~2년씩 제대로 배를 타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누구와 탈 것인가
함께 요트를 탄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전부 함께 발을 묶고 이인삼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차를 탈 때는 운전자만 잘하면 되지만, 요트는 여러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여서 배의 각 부분을 일사불란하게 다루어야 한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의사소통도 잘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나이와 무관하게) 스키퍼의 명령에 따르면서 다른 팀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런 거 잘하는 한국사람 많이 아시는 분…?
이 사람들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면, 구성원의 절반 이상은 베테랑이면서, 한두 사람이 초보라서 배워가면서 할 수 있는 경우다. 그리고 스키퍼는 경험이 풍부하면서도 통솔력이 있고, 크루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게 지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배 위에서 크루는 자기가 맡은 역할에 따라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을 제시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스키퍼의 말을 따라야 한다. 사공이 여럿일 때 배가 산으로 가면 차라리 다행이지, 잘못하면 사람이 다치고 배가깨진다.
스키퍼를 항상 같은 사람이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역할을 교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스키퍼에 대한 복종이 어떤 개인의 말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역할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스타 트렉’을 보면 선장이 뭔가 위험한 일을 하러 떠날 때 선실에 있는 크루의 어깨를 짚으며 ‘이제 네가 캡틴이다’ 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걸 만든 사람들이 해양 민족의 후손이라 그런 장면을 그렸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트에서는 이런 식으로 스키퍼가 교체되는 일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필요하다면 그래야 한다.
모처럼 팀을 잘 꾸려서 호흡을 맞춰보았더라도, 각자 생업이 있는 만큼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훈련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킬보트는 최소한 3명, 가능하면 5인이 타야 안정적으로 운항을 할 수 있으므로 각 역할별로 적어도 한 명씩은 백업이 필요하다. 그러니 동호인으로서 5인승 요트를 안정적으로 타려면 훈련된 크루 10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요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서로 코드가 맞고 안정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크루'의 존재여부다. 그래서 쌩쌩하게 잘 달리는 배가 있더라도 팀워크의 문제로 인해 요트를 타지 못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꽤 많은 것 같다.
요트를 더 잘 타는 법은 어디서 배우지?
베테랑 요티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이 100이라면, 면제교육에서 배우는 것은 5~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0은 어디서 어떻게 배울 것인가? 외국의 요트 클럽들은 클럽에서 자체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신입들을 가르치는 시스템을 백여 년 간 운영해 왔다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면제교육 이후 요트를 타기 위한 교육을 시행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일단 면제교육기관은 면제교육만 하는 것도 꽤 바쁘다. 게다가 국내의 요트 전문가들은 대부분 엘리트 체육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요트를 배운 선수들이 대부분인데, 이 선수들의 전문분야는 5인승 이상의 킬보트가 아니라 1인승 또는 2인승 딩기다. 전국체전과 아시안게임, 올림픽에 종목이 있는 요트는 1~2인승뿐이기 때문이다.
2012년 올림픽 요트종목 클래스(일부는 다른 기종으로 대체되거나 사라졌다)
딩기 선수라고 해도 물론 일반인보다는 요트에 대해 전문가임은 분명하지만, 경기를 잘 하는 것과 교육을 잘 하는 것은 좀 다른 종류의 재능이다.게다가어린 선수를 가르치는 것과 중장년층 일반인을 가르치는 것은 각각 매우 다른 스킬이 필요하다. 요트선수들이 일반인을 가르칠 수 있도록 지도자로서 훈련시켜 주는 기관이 없어서인지,아니면 1~2인승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인지, 면제교육을 받은 이후 더 고급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5인승 킬보트를 가르쳐주는 곳은 국내에 많지 않은 것 같다(이따금씩 요트학교마다 부정기적으로 공지가 올라오기는 하고, 우리가 한 것처럼 독선생을 모시고 배우는 경우도 있다).
요트 타는 게 생각보다 고생스럽다!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 또는 할리우드 파티 피플 때문이겠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요트’라고 하면 우아하게 드레스를 차려입고 와인을 마시거나 살을 많이 드러낸 사람들이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요트를 타는 것이 매우 편안하고 쉬운 것이라고 오해하고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실제로 요트를 제대로 타보면 이 환상은 5분 만에 와장창 깨진다. 일단 이놈의 배가 바람을 제대로 받으면 선체가 수면과 평행을 이루지도 않고 15도쯤 기울어져서 가는 데다가 그 배 기울어진 것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서 내 뱃살이 찢어지도록 가장자리에 매달려야 하며, 세일을 조종하기 위해 시트를 당기는 것은 무슨 헬스장 근력운동을 몇 시간 내내 하는 수준이고, 바람이 셀 때는 클라이밍을 하는 각도로 배 위를 기어올라가야 하는 데다가, 그러다가발을 헛디디면 데크 위를 데굴데굴 굴러서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피멍이 든다.
뿐만 아니라 항해를 할 때마다집채만 한 돛을 펴야 하고, 항해 끝나면 그 돛을 씻어서 말린 후 접어야 하고, 갑판을 닦아야 하고, 줄도 정리해야 하고, 선체도 씻어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요트를 타고나면 얼굴은 까맣게 타고 손발은 거칠어져서 귀족이나 재벌이라기보다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선원들과 생김새가 좀 비슷해진다.
요트의 이상과 실제 (by Quan Nguyen & Wikimedia commons)
요트 가지고 뭘 하지?
기적적으로 좋은 배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요트를 탈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치자. 혹은 혼자서도 조종이 가능하도록 자동화된 신형 요트가 있다면 나 홀로 항해인 '싱글 핸디드 세일링'도 가능하다. 그런데... 요트를 타고 뭘 하면 좋을까? 세계일주?
김승진 선장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세계일주를 목표로 한 사람들은 외항을 몇 번 다녀오고 나면 원양항해라는 것이 엄청나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에 따라서 그런 고독이나 지루함을 즐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 그런 사례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업이 있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서 항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근해의 섬을 투어하거나, 바람도 쐴 겸 가까운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는 것도 가끔 하면 꽤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도 반복되다 보면 지루해진다. 사람이 목표가 없으면 쉽게 흥미를 잃을 수 있다. 게다가 요트는 바람이 너무 없거나 너무 세면 아예 항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으며, 배 관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 요트가 주는 즐거움과 목적성이 뚜렷하지 않으면 항해의 전후에 부가되는 수많은 일들이 고역이 될 수도 있다.
좋은 크루 = 일 잘하는 크루
그런데... 요트는 부자들만 타는 거겠죠?
사람들이 요트를 아예 시도조차 안 하는 이유가 '비용'임을 고려해 보면 사실 의외로 이 부분은 넘기 쉽다. 어떤 요트를 타느냐가 문제일 뿐이지, 꼭 수억 원씩 하는 요트를 타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딩기를 탄다면 요트학교 등에서 빌려주는 곳도 많고, 그보다 큰 킬보트도 몇천만 원대로 접근 가능하며, 중고가 되면 가격은 더 떨어진다. 혼자 사려 한다면 당연히 큰 금액이지만 어차피 요트는 여럿이 타는 배이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물론 이렇게 되면 나중에 서로 마음이 맞지 않더라도 헤어지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큰 요트의 경우 자동차처럼 할부금융을 제공하는 곳도 있고, 사업자 명의로 구입할 경우 부가세 환급도 되고 배로 수익사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구매하거나 개인사업자를 내는 경우도 있다. 꼭 배를 사지 않더라도 요트면허가 있으면 배를 차터해주는 곳도 있고, 크루로서 다른 사람의 배를 함께 탈 수도 있다.
완벽한 대안이란 없겠지만...
우리는 사전에 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요트에 입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운이 좋았다. 우연히 여러 가지 조건들이 갖춰져서 우리는 초보 요티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피해 길을 찾다 보니 요트선수까지 되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