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여부 : 기혼 O
경력 9년 차 웹디자이너. 사실 몇 연차인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5번째 회사를 구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결혼하고 5개월 지났으니 백수 5개월 차 열심히 이력서를 쓴다.
그동안 이직을 하며 단 한 번도 생각 안 해 본 결혼 여부, 그런데 요새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이력서에 쓰는 칸이 없다. ‘오호... 뭐지? 나 거짓말쟁이 된 거 같은 이 기분?’
뭐 규칙이 그러하니 따라야지!
그동안 나름 오랜 경력으로 고생하는 곳에서 버틴 대가인지 나이가 30대 중반을 향해가지만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참 많이 온다. 기분이 좋다. 그동안 내가 해온 게 헛되지 않았음을 열심히 살았음을 증명하는 거 같다.
하루에 2-3개 정도의 인터뷰가 잡히고, 이제 면접 따위 떨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제 할 말도 하고 나올 수 있는 멘탈 갑 디자이너라 오히려 면접은 재밌다. 이제 당당히 “야근 싫어요. 주말출근하기 싫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면접 중반부터 뭔가 삐걱 된다. 초반에는 간단한 소개와 그동안 나의 이력과 내가 만든 포트폴리오를 보며 설명과 대부분 면접을 하는 회사들은 나의 포트폴리오가 맘에 들기에 칭찬도 가미된다.
그러다 자연스레 “결혼 계획 있나요?”, “결혼하셨나요?” 가 자연스레 나온다.
“네! 5달 전에 했습니다.”
이 대답과 동시에 질문이 바뀐다. 그동안 나의 스킬과 업무태도에 알고 싶었다면 이제는 오로지 나를 ‘유부녀가 회사 다니면서 준수할 사항’에 대입하기 시작한다.
내가 받아본 질문을 토대로 추리자면
유부녀가 회사 다니면서 준수할 사항
1. 야근이 잦은데 야근해도 되나요? 왜 결혼하면 야근하는 것도 싫어하고 그러잖아요
(아니.. 결혼 안 해도 야근은 싫은데??? 싫다고 하면 안 시킬 거야?)
2. 주말에 출근할 때도 있는데 할 수 있나요? 남편분이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다닐 회사를 고르는데 내 남편은 뭔 상관? 그나저나 돈 더 안 주고 주말 출근시킬 생각 왜 하지?)
3. 남편분 뭐하세요? 야근 많나요? 야근하면 아기는 누가 돌봐요?
(애기도 없고 아직 계획도 없는데... 이런 거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내가 모르는 나의 2세가 있는 건가?)
4. 애기 계획 있나요?
(있지도 않은 애기 계획을 모두가 물어봤다. 아니 있다고 한들 처음 보는 면접관에게 말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면접관님 사실 전 지금 신혼을 즐기느라 피임을 하지만 1-2년 지나면 자연피임을 해보려고요. 그러고 생기면 감사하고 안 생기면 어쩔까요?)
5. 결혼하면 편하고 싶을 텐데 광고회사 힘든 거 알고 왜 지원했어요?
(힘들다고 회사 안 다니면... 나 어디서 일해? 결혼하면 다 그런 거야? 어? 그래서 넌 노처녀니?)
초반엔 정말 초롱초롱한 눈으로 회사를 어필하던 면접관들도 눈빛이 바뀐다. 마치 나를 결혼하고 임신하고 금방 회사 떠날 여자로 만든다.
씁쓸하다... 날 그냥 이력서 그대로. 기혼 여부가 빠진 이력서 그대로, 포트폴리오를 보고 판단하길 바라는데 모든 판단은 결혼으로 갈린다. 수많은 면접을 보면서 도대체 이력서에서 결혼 여부는 왜 없앤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없으면 면접 진행하면서 노골적으로 물어볼 거면서...
아! 기혼이라고 체크하면 면접도 못 보게 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