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16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은 대체로 미덕에 가깝습니다. 대체로 그렇다는건, 예외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직장에서 하는 업무 대부분은 어떠한 형태로든 다른 사람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오롯이 혼자서만 하는 일은 드뭅니다. 일정 규모를 넘어서는 프로젝트에는 여러 사람이 들러붙기 마련입니다. 지원부서에서 근무한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타 부서와 연관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조직에 속해서 업무를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옆의 직원이 되었든, 내 상사가 되었든, 아니면 다른 부서가 되었든 간에 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냄으로써 지구 온난화에 악영향을 주는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직장인이란 단지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자세는 올바른 것이고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지나쳐서 업무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그건 앞뒤가 안 맞는 일입니다. 내가 필연적으로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야만 제대로 된 직장인입니다.
그럼에도 타인에게 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심하면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 마디조차 못하게 되죠. 좋지 않은 일입니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다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면 언어도단이죠. 직장인은 일을 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 존재니만큼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고, 동시에 다른 누군가도 나에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건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민폐를 끼치되,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어떻게 갚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득이하게 폐를 끼치게 된다면 하다못해 커피라도 한 잔 사들고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좋습니다. 내가 좋아서 폐를 끼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상대도 압니다. 하지만 짜증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업무상 부탁을 받으면 번거롭기 마련입니다. 주말에 출근해서 남의 일을 도와야 한다면 당연히 화가 치밀어오르겠죠. 그러니만큼 최소한 예의는 갖추어야 합니다. 메신저 따위로 부탁하는 것보다는 전화로 이야기하는 게 낫고, 그보다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게 좋습니다. 일이란 인간이 하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그런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리고 폐를 끼쳤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었다가 반드시 갚아주어야 합니다. 예컨대 내가 담당인 행사 때문에 타 팀 직원 여럿을 주말에 동원했다고 해 봅시다. 그럼 다음에 그 팀의 행사가 있으면 나도 당연히 도와주러 가야지요. 마치 품앗이처럼 말입니다. 아니면 간식이나 맛있는 밥 따위로 갚는 방법도 있습니다. 갚는다는 말이 좀 거시기하면 답례한다고 표현해도 좋습니다. 요점은 '내가 당신에게 폐를 끼쳤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고, 미안함을 느끼고 있으며,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는 마음을 확실하게 드러내라는 겁니다.
물론 직장에서 민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면야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 결과적으로 더 큰 민폐덩어리를 만들어내는 일조차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니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데로 놓아두고,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