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17
부서장이 특정 직원을 편애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부서장이 어떤 직원을 유별나게 좋아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러면 편애를 드러내는 행동은 어떤 것일까요? 물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층위도 다를 겁니다. 대체로 부서장이 특정한 직원의 일을 덜어서 남에게 주거나, 어떤 직원과 유독 친밀하게 대화를 나눈다거나, 어떤 직원에게 근무성적평정을 높게 준다거나, 어떤 직원을 승진시켜 주려 한다거나 등등. 여하튼 특정한 직원을 남들보다 더 아끼는 티가 난다면 사람들은 대체로 그 직원을 편애한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편애란 나쁜 것으로 여겨지지요.
이제는 중간관리자의 입장에서 말해보겠습니다.
부서장으로서 곰과장의 눈에 들어오는 직원이 있습니다. 이 직원은 무척 어렵고 부담감이 심한 일을 맡았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의 뛰어난 능력과 근성으로 잘 해 내고 있지요. 헌데 그 일의 업무량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도저히 무리였지요. 곰과장은 상반기 인사에 맞추어 그 직원이 속한 팀의 업무를 재편함으로써 해당 직원의 업무 일부를 다른 직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누군가는 생각했을 겁니다. 부서장이 그 직원을 편애하기에 그 직원이 해야 할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떠넘겼다고.
부서장으로서 곰과장은 특정한 직원과 유달리 대화를 자주 나눕니다. 그 팀에서 의사결정권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려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 일이 잘못된다면 부서 전체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기에 곰과장은 해당 업무를 특별하게 챙기고, 직원이나 그 팀장과도 자주 의견을 교환합니다. 어느 정도 실수는 곰과장이 직접 수습해 줍니다.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때로는 커피도 사주고 밥도 삽니다.
누군가는 생각했을 겁니다. 부서장이 그 직원을 편애하기에 유독 그 직원과만 어울려 다닌다고.
부서장으로서 곰과장은 이번 인사에서 특정한 직원에게 높은 근무성적 평정을 부여했습니다. 공무원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다소 과할 정도로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곰과장에게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누차 강조했다시피 누군가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건 다른 누군가에게 낮은 점수를 부여한다는 의미니까요. 하지만 곰과장은 그 직원이 죽도록 고생한 보답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누군가는 생각했을 겁니다. 부서장이 그 직원을 편애하기에 연공서열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후한 평가를 내렸다고.
부서장으로서 곰과장은 한 직원을 승진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승진 명부에 들어간 직원은 여럿 있었습니다만,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했을 때 정말로 가능성이 있는 직원은 하나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던가요. 곰과장은 가용가능한 각종 수단을 통해 그 직원의 성과를 어필하고자 노력했고 그게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 직원은 승진했습니다.
누군가는 생각했을 겁니다. 부서장이 그 직원을 편애하기에 다른 사람은 무시한 채 그 직원만 승진시키려 했다고.
위의 사례들은 물론 곰과장의 시선에서 쓰여진 겁니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서술했다고는 할 수 없죠. 누군가에게는 변명이나 자기합리화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알 게 뭡니까.
곰과장은 편애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곰과장은 일 년에 두 차례씩 아랫사람들의 성과에 순위를 매겨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의 성과란 객관화시키기 어렵기에 평정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무척 크게 작용합니다. 거기에 '편애'라는 요소가 더해진다면 자칫 부서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은 일하는 곳이고 결국 가정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에컨대 부모가 자녀들의 성적을 근거로 특정한 자녀만을 편애한다면 그건 분명 옳지 않은 일입니다. 부모에게 자식 간의 순위를 매겨야 할 의무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면 직장에서 부서장에게 주어진 의무 중 하나는 인사 평가라는 체계를 통해 직원들의 순위를 매기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1등이라는 순위를 주어야 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꼴지라는 순위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곰과장은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저 위의 사례들을 편애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부서장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편애라고. 누군가가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편애라고. 그러니 자신은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