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39
우울증으로 병가를 냈다가 직장으로 복귀한 지도 거진 1년이 지났습니다. 이 한 해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아주 큰 문제는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스스로가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고, 또 의도적으로 과거의 자신과는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만 의외로 바뀌기도 하더군요.
직장에서 저는 제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딱히 숨기지 않았습니다. 굳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감추려 들지도 않았지요.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이 딱히 부끄러운 건 아니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당혹스러울 때가 가끔 있습니다. 바로 직장 사람들에게 이제는 괜찮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입니다.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대개 어색하고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저도 어색하고 난처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두 마디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거든요.
괜찮다는 말의 뜻이 우울증으로 한참 고생할 때보다 나아졌느냐는 의미라면, 제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지금의 저는 적어도 암흑 속에 처박혀 있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울면서 눈을 뜨는 경우도 없고, 스스로 목을 메달까봐 두려워 샤워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이젠 없습니다. 물론 늘 그랬듯이 자주 스트레스를 받고, 종종 짜증을 내고, 때로는 좌절도 하지만, 그건 어쩌면 너무나 일상적인 삶에 가까울 겁니다. 그런 부정적 감정들이 제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영역에까지 도달하지는 않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의 뜻이 우울증에 걸리기 전의 몸과 마음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이냐는 의미라면,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습니다. 아파서 드러누울 정도의 질환이라면 낫고 나서도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한 번 다리가 부러진 사람은 회복되더라도 걸음걸이가 예전만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적인 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골절 같은 외상과는 달리, 정신건강의학과 소관의 병환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두개골 안쪽의 어딘가를 가르고 지나간 깊은 상처가 남긴 흔적을 여전히 생생하게 느낍니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입니다만 동시에 분명 실존하는 흉터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흔적이 꽤나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동안 그곳에 남아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압니다. 마치 배를 가르고 수술한 자국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렇게 길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래서 누군가가 제게 괜찮냐고 물을 때, 요즘은 그냥 이렇게 대답합니다.
"버틸 만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대체로 괜찮고 가끔씩은 괜찮지 않을 겁니다. 우울증이라는 상처 위에는 이미 딱지가 앉았지만,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그 딱지가 떼어지고 다시 상처가 노출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상처에 약을 바르는 법을 압니다. 그 위에 반창고를 잘 붙이는 법도 알지요. 그러니 똑같은 일이 반복되더라도 과거보다는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버틸 만하다는 말의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