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를 보고
2019년 여름, 영화 ‘벌새’가 개봉했다. 벌새는 독립영화로는 쉽지 않은 14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그 흥행의 중심에는 벌새의 팬덤인 ‘벌새단’을 비롯해 많은 여성 관객들의 응원과 홍보가 있었다. 벌새를 본 여성들은 ‘은희의 이야기가 꼭 자신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고 이야기했다. 재미있는 것은 은희와 같은 시기에 유년기를 보 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해 현재 20대를 보내고 있는 많은 여성들 또한 은희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은 기존의 세대 담론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즉, 여성들이 벌새에 보여준 공감은 생물학적 세대 개념이 유의미하다는 기존의 담론에 반기를 들고 ‘주관적’인 의식과 감정이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벌새에 공감을 표한 여성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경험’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경험’은 비주류로써의 삶을 의미한다. 오랜 시간 동안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텍스트는 남성 청(소)년의 이야기에만 주목했다. 영화 ‘스물’과 비슷하게 ‘철없는’ 남성과 그의 친구들이 우여곡 절 끝에 교훈이나 성취를 얻는다는 식의 이야기는 그 재미와 별개로 자본과 사회의 환호를 받아왔다. 이러한 텍스트들은 당연하게도, 여성들의 삶을 포함하지 못한다. 하지만 은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다르다. 벌새를 본 여성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했다. 나의 경우에는 남성 가족 구성원으로부터의 가정 폭력이, 어른 여성을 동경하는 감정이, 우정에 성애적 감정이 섞인 미묘한 관계가 그랬다. 나는 벌새를 통해 나의 삶이 ‘비주류’가 아니게 된 경험을 했고 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에게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다. 공동체는 주관적인 의식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러한 공동체는 세대 공동체보다 더 강한 유대감을 가진다.
한편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경험’은 특정한 ‘감각’이기도 하다. 씨네21의 송경원은 벌새가 기억으로써 의 ‘사건’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감각’을 다루는 영화라고 이야기한다. 이 때의 ‘감각’이란 칼만하임이 이야기 한 ‘감정’과 비슷한 것이다. 은희가 경험하는 감정은 그의 삶 뿐만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각이다. 먼저 계속해서 폭력을 마주해야하는 것이 그렇다. 은희는 오빠인 대훈에게 가정폭력을 당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강남역 사건, 이수역 사건, n번방 사건 등 수많은 폭력을 마주하며 살아 간다. 은희의 감정을 수희와 영지만이 이해하듯 여성들의 감정은 여성들만이 이해한다. 대훈에게 폭력을 당한 은희를 말 없이 바라보는 수희와 더 이상 오빠에게 맞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영지는 그 자체로 시대와 세대와 상관 없이 여성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위로 그리고 연대와 꼭 닮아있다. 은희나 수희가 느끼는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듯한 불안 그리고 초조함과 같은 감각 또한 그렇다. 은희에게 영지는 살아남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 몇 년간 이야기되었던 자기계발식의 담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감각을 느끼고 그것을 기억하며 생존하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이 또한 지금의 여성들이 서로에게 ‘살아남자’ 고 이야기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어쩌면 벌새에 공감을 표한 여성들이 발견한 것은 은희와 영지에게 투영된,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 연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지가 은희에게 말한대로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나쁜 일들이 닥치 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이 중요하다. 2021년을 살아가는 영지와 은희들은 담론 밖에서 그렇게 또 하루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