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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건반검은건반 Mar 17. 2023

엄마는 속상해도 너를 위해 티 내지 않을게

고등 육아는 힘들어(1)

"엄마, 너무 힘들어." 

학교를 다녀온 딸이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어떤 게 힘드냐고 물어보니 다 힘들다고 했다.


학교 수업도 어렵고, 수업 시간에 자꾸 잠이 와서 힘들고

뒤에서 노래를 불러대는 친구 목소리도 듣기 싫어서 힘들고

쉬는 시간에 자고 있는데 일어나 보라며 자꾸 깨우는 친구들에게도 화가 나고

학원에 가니, 같은 클래스 친구들보다 자기가 너무 못하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한다고 했다.


원래 고등학생이 되면 힘이 들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다.


"엄마, 나 그동안 너무 편하게 살았나 봐. 공부 양이 적응이 안돼.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친구들은 천천히 등산을 하는데 나는 헬리콥터 가고 날아 올라가고 싶어 발버둥 치는 느낌이야."


"나는 고등학교 가면 공부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영어학원에서 친구들이 대답하는 내용을 들으니

나만 모르고 있는 거야. 나 그동안 뭐 했지? 싶어서 눈물이 났어."


우리 딸이 공부를 안 하지는 않았다. 중학교 때도 열심히 했다.

다만 학원에 가지 않고 혼자 해서 느긋하게 공부를 했고, 테스트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본인이 못하는지 몰랐다.


벚꽃이 피면 벚꽃을 보러 갔고, 스우파 스맨파 콘서트가 있으면 나와 함께 보러 갔으며, 놀이동산 투어를 위해 서울 여행을 했고, 작년에 제주도를 2주 정도 가서 실컷 물놀이를 했다.


우리 딸은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전환점에 있기에 아이에게, 

"엄마는 25살에는 네가 경제적으로 독립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아이는 이 말을 듣고는 갑자기 공부를 해야겠다며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8-9시간씩 자더니 갑자기 6-7시간으로 줄였고,


지금은, 줄인 시간이 익숙하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있다.


"엄마, 잠을 실컷 자고 싶어."

"엄마, 그렇게 놀러 다닐게 아니었나 봐. 내가 노는 동안 친구들은 다 열심히 했나 봐."


"지금부터가 시작인데 뭘 그래~ 고등학교는 누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는가가 중요한 싸움이야. 3년 동안 시작하는 발걸음을 떼는데 벌써부터 지치면 안 돼~~"


이제 고등학생이 되고 3월, 첫 모의고사도 치르지 않았는데, 오늘 우리 딸은 너무 지쳐있었다.


"엄마, 나는 내가 1등급이 될 수 있을 줄 알았거든? 주변 친구들 실력을 보니 지금은 2등급도 자신 없어. 3등급은 할 수 있을까?"


나도 어렸을 때부터 똑똑했던 우리 딸이 1-2등급은 할 줄 알았다. 여기는 지방이고 일부러 인원도 400명이나 되는 곳을 보냈다. 그리고 딸은 엉덩이 힘이 좋아 오래오래 잘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딸이 공부가 자신이 없다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젯밤 아이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속상한 마음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이의 짜증이 더 올라 있었다.

"몸무게가 더 늘었어. 짜증이 나."

아이의 감정을 보듬어주는 것도 내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아~ 우리 아이 더 귀여워졌음."

딸은 위로가 되지 않는가 보다.

"스트레스 풀 수 있는 게 먹는 거밖에 없는데. 이것도 맘대로 못 한다니 속상해."

"피곤해서 그런 거야. 

고등학교 생활에 곧 적응할 거야. 이제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걸?"


"학교 가기가 너무 싫어. 내가 얼마나 그동안 열심히 공부를 안 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내용이 어려워."


공부를 적당히 하고,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실컷 그리렴.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니, 엄마는 정말 속상하구나. 


아이를 학교 근처에 내려 주고, 출근하는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다시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딸, 많이 힘들어?"

"아냐, 엄마! 엄마한테 어리광 피운 거야. 학교에서 열심히 하고 올게!"

"우리 딸 대견하다. 오늘도 파이팅, 엄마가 너 좋아하는 싸이버거 사들고 응원 갈게!"



내가 요즘 제일 힘든 것은 아이의 이 마음을 듣고 속상한 것을 티 내지 않으며 아이를 다독이는 일이다.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하는데, 중학교 때 열심히 하지 않아서 실력이 부족한 것 같다며 속상해하는데

학원을 보내지 않은 내 탓 같아서 미안하기만 하다. 걸어가는 아이들 틈에서 뛰어가느라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우리 아이는 그렇게 못하지 않는다. 

우리의 욕심이 좋은 등급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우리 아이의 성적이 나온다면, 나는 거기에 아이가 좌절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속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고등학교에서의 공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란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야."


우리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아이는 지금 힘든 순간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속상해하지 말자.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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